youtube music에서 warlock을 듣다. youtube muisc을 무심코 눌렀다.
그리고 멍하니 먼 산 하늘을 바라볼 때,
워락의 all we are가 울려퍼졌다.
- 1987 4집 발표곡
사람마다 매체를 대하는 자세가 틀리다.
내게
[글은 "업무의 도구" 이다]
검증이 되어야 하고
가치있는 글이어야 한다.
목적없는 글은 내겐 큰 의미가 없다.
고객이 내게 돈을 주고 의뢰한다면
정성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량적인 분석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생각을 분석하는 도구"이다]
그림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할 때
어떤 목적을 가진 적이 없다.
심연의 흐름대로
그리거나 즐기거나 한다.
그러다보면
나도 몰랐던 내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가 있다.
[게임은 "삶의 도구"이다]
7살때 이모부를 따라 을지로 3가에서
게임을 접하고나서부터 인생은 결정되었다.
그 이후 45년간
나는 꾸준히 게임을 해왔고
한 번도 게임을 멀리 해 본적이 없다.
수 년전, 여행자 메신저로 서비스하는
스타트업과 함께 했을 때,
그들에게 "늙은영감"같은 멘토, 고문이라는 호칭대신
"게이머"라는 공식호칭으로 수년간 불렸을 정도로
게임은 내게 정체성을 말해주는 매체이다.
[음악은 "추억의 도구"이다.]
유일하게 감정을 소모할 수 있는 매체이고
그로 인해 심연에 숨겨졌던
기억을 소환해낼 수 있다.
핸드폰에서 유튜브 뮤직을 실행했다.
워락(80년대 독일 해비메탈그룹)의 all we are가 들린다.
보컬누나의 카리스마가 나의 영혼을 공명시킨다.
추억이 호출된다.
1987년의 추억
내 방에 있던 Apple IIe
수험생임을 망각한 밤샘게임들
where is carmen sandiago
elite
가라데카
그리고 우연히 시청에서 본, 1987년 넥타이 부대
1987년에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바램은
우리나라를 떠나
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었다.
편견과 억압, 역사와 전통을 강요하는 사람들.
무엇하나 논리적이지 못한 일들을
자기진영 식대로 "우리"를 강요하며
세뇌시키는 시대였다.
그런 불만에 대한 배설구가 게임, 음악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이 땅을 떠나리를 꿈꾸었다.
...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대의 기득권이었던 혈족과 지인들은
지금 외국에 나가살고 있고
그 시대나 지금이나
기득권과 거리가 먼 나는
아직도 이 땅에서 살고 있다.
...
그런와중 우리나라도 많이 변했다.
유튜브를 보면 타인에 대한
너그러워짐이 느껴진다.
그리고 프랑스의 똘레랑스 정도는 아니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교육이 기본이 되었다.
어찌보면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땅은
편견과 아집이 넘치고 있고
내가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땅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
이런 것을 느낄때마다
인생은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