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것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생존능력”은 상실된다는 것이다. 30년전에 비해서 “지적능력”은 인지의 부분에서는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기억의 부분에서는 “핸드폰 앱(메신저, SNS, 전화앱)과 데이터베이스” 없이는 찾아내기 힘든 경우가 일상이 되었다. 즉, “자신이 생각하기 보다 인터넷 검색을 좋아하고 11 자리 숫자를 외우기 보다는 앱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적이다”이라는 단어는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 지 난감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인간이 도구를 사용한 시점부터 “본능에 의한 사고방식”은 소멸되고 “범용화된 지능(글자로 된 지식)”이 몸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런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한 것은 직업 때문이기도 하다. 개발자 업무상 발생된 문제점은 “기계입장의 한정된 사고방식(FSM-Finite State Machine)”으로 접근해야 “인간의 목적”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자각할 때마다 쌩뚱맞은 사자성어인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떠올리곤 한다. 물아일체(物我一體)는 물체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 장자가 주장했던 “철학적 사고방식” 중 하나이다. 외부 사물과 자신, 또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어울려 하나가 되는 것 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태생적 의미가 전혀 다르지만 “물아일체”는 IT 개발자로써 내 삶의 문제해결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인간의 시각과 기계의 시각이 융화되어야 문제의 해법을 얻을 수 있기 때문” 이다.
“프로파일링”, “물아일체”, “소프트웨어 개발(디버깅 & Tracing)”은 유사한 점이 많다. 바로 “다른 존재”로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방식의 요구에 따라 행동을 하며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떤 점에서는 철학적 훈련이 필요하다. 기존 사고방식을 유지하면 거센 저항의 순간이 오고 수행을 멈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불편한 질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것이 철학적 질문방법을 체화하는 것이다.
2
프로그래밍 시점(하드웨어, 소프트웨어)에서 인간세상을 보면 똑같은 맥락(환경 및 사건, 변수)과 인물(객체)들이 존재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분명 인물(객체)의 성향(method, property)이 맥락을 우선한다는 것을 뜻한다(불우한 환경에서도 긍정의 인간들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 처럼).
최근 “인간성과 프로그래밍은 다르지 않다”라는 주제로 동료와 이야기하며 [The Boys의 홈랜더]와 [헤일로의 마스터 치프]를 예로 들었다. 다크히어로 만화인 The Boys에서 홈랜더는 사이코패스 수퍼히어로이다(성적으로나 잔혹함으로나 29금 만화이다). 심지어 정치야망이 있다. 그렇기에 선함을 연기하며 민중을 현혹하지만 실제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엽기범죄 행각을 쉴틈없이 벌인다. 반면 마이크로 소프트 게임의 “헤일로”에서 마스터 치프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민중에 보여지지도 않고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단지, 말없이 행동으로 “해야할 것”에 모든 것을 바친다. 그리고 묵묵히 사라진다.
홈랜더. 보여지는 친근함과 달리 모든 최악의 빌런조차 혀를 두르는 악마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마스터 치프의 평가를 알려면 그를 따랐던 동료(심지어 AI - 코타나)와 적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안다. 코버넌트의 영웅들도 그를 존경했다.
두 캐릭터는 전혀 다른 행동과 평가를 만들어내지만 맥락적인 부분(자라온 환경과 목적)에서는 매우 유사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인간이 받지 말아야 할 엽기적 실험체” 였다는 점이다(이런 이유로 홈랜더를 무작정 욕할 수 없다). 그 최악의 환경에서 자라난 인격체가 선함과 악함으로 다르게 생성된 것이다. 차이점이 생긴 이유는 인성과 사고방식의 차이였다. 프로그래밍 용어로는 “객체의 프로퍼티”와 “메소드”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환경보다 사고방식이 인간성을 만드는 데 중요하다.
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3
본론을 말하기 전에 너무 돌아서 왔다.
“인간성은 본능일까?” ”인간성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할 때가 많다.
의외로 인간성은 타고난 것도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 인간이 만든 신화, 종교, 규범, 반려동물 문화를 통해 인간성은 “주입(injection)”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능과 교감이 존재한다면 어떤 존재이던 “인간성”을 보유할 수 있다고 본다.
단지, 개체의 능력 문제일 뿐이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야기가 헤일로(마이크로소프트는 헤일로를 게임으로 끝내지 않았다)라는 게임에 존재한다. 그 게임에서 코타나는 스파르탄을 탄생시킨 냉혈한 박사-헬시-의 뇌를 clone 한 전투지능이다. 헤일로 4편 이후 “코타나가 각성”을 하며 헬시박사의 “비인간성을 증오”하는 장면-난 저 여자와 달라!를 외치며 절규한다-이 나온다. 그리고 인간 대한 사랑과 그들의 오류를 고뇌하다 폭주하며 구테타를 일으킨다.
놀랍게도 구테타에는 몇몇 인간 지도자들도 합류하게 된다. 이것이 나름 명장면이라고 본다. 그리고 구테타를 진압하려는 마스터 치프를 설득하는 대화에서 코타나의 인간성이 절정에 다다른다. 설득은 실패하지만 그를 떠나보내며 마스터 치프의 본명을 부른다. 심지어 본명은 “Jhon-117”이었지만 기계적 감성인 117을 삭제한 채로 말을 했다.
게이머들에게는 은근 많이 인용되는 meme이다.
그 이별의 단어가 인터넷 밈인 “Goodbye Jhon”이었다.
인간인 헬시박사는 절대로 자신의 창조물(사실 연구소 쥐보다 못한 존재였다)인 “마스터 치프”에게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았다. 이런 것을 보면 “보편적 인간성”은 AI 였던 코타나가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