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얼굴을 한 관성들에 관하여
커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예전엔 그랬다.
여름이면 아이스티나 자몽에이드를,
겨울엔 녹차나 따뜻한 허브티를 더 자주 찾았다.
내게 커피는, 그냥 쓰고 까만 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커피를 찾기 시작했다.
밤을 새운 날, 아침 일찍 나서야 하는 날,
피곤하지만 ‘사람인 척’은 해야 하는 날.
그럴 때면 슬그머니 커피를 들이켰다.
맛을 안 건, 그다음이었다.
별로였던 아메리카노가 조금씩 익숙해졌고,
이제는 종류별로 향을 고르고
원두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쯤 되니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건 내가 좋아해서 마시는 걸까?
아니면, 그냥 마셔온 거라서 계속 마시는 걸까?
우리는 때때로, 어떤 걸 '좋아한다'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은 그게 습관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아주 천천히, 기호에서 루틴이 되고,
결국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는 관성이 된다.
처음엔 커피도 하나의 선택이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음료가 무엇인지 탐색하고,
입맛과 기분에 따라 골랐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내가 커피를 고르는 게 아니라,
커피가 나를 고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커피뿐만이 아니다.
늘 가는 음식점,
항상 트는 노래,
열자마자 스크롤 내리는 앱들.
그게 정말 좋아서 반복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익숙하니까 따라가는 걸까?
자꾸 손이 가는 건,
습관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게 마음의 힘을 덜 쓰게 해주는
편리한 루틴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내가 선택한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하나도 고르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은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커피 한 잔도,
어쩌면 내가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닐지도.
그냥 이쯤 되면,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힘이 나는 것 같아서.
그래야 나도, 평범한 하루의 리듬을 갖춘 사람 같아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중엔,
진짜 좋아하는 게 몇 개나 될까.
좋아한다고 믿고 있는 것들 중엔,
사실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것도 있지 않을까.
오늘의 커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