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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쭉이 아빠 Sep 17. 2020

미키마우스는 죄가 없다

아빠가 딸에게

출근 준비 소리에 아쥐니가 잠에서 깼다. 그래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아쥐니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찍찍이를 찾았다. 

찍찍이는 15000원짜리 미키마우스 인형. 작년 겨울 엄마가 사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당시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엄마의 수유복에 푹 빠진 아이는 미키마우스 실물을 보자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직접 걸음마를 가르치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동생처럼 찍찍를 돌보는 아쥐니. 그렇게 찍찍이는 거의 엄빠와 동급이 됐다. 

덕분에 미키마우스는 우리 부부에게 만능키 같은 아이템이 됐다. 밥투정 줄이려고 산 미키마우스 수저, 좀 걷게 하려고 산 미키마우스 신발, 옷 좀 수월하게 입히려 산 미키마우스 원피스, 잠 좀 쉽게 재우려 산 미키마우스 벽시계, 잡으러 다니기 힘들어 산 미키마우스 기저귀, 미키마우스 우산, 미키마우스 모자 등등 온 집이 쥐판이 됐다.(그래도 좋아ㅎㅎ)

하지만 아쥐니가 점점 자랄수록 고집도 심해져 찍찍이도 소용없는 경우가 자주 생기게 됐다. 그때마다 이건 하지 마라 저건 안된다는 말도 입버릇처럼 하게 됐다. 예를 들어 밥 먹을 때 컵에서 숟가락으로 물을 떠서 먹지 않기, 읽은 책은 제자리에 다시 두기, 정수기나 식탁에 발 올리지 않기, 그림은 종이에 그리기 등등 그렇게 크고 작은 규칙들이 늘어갔고 그때부터 아쥐니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마다 눈치를 보며 "이거 해도 돼?"라고 먼저 물었다.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문제인지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일 때문에 만난 한 아동인권 권위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여러 가지 규칙은 사실 어른들의 편의를 위한 것입니다." 


크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이었다. 직접 하면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며 스스로 터득하게 했어야 하는데 나는 내가 편하자고 아쥐니의 선택권을 빼앗은 것이다. 결국 찍찍이에게 부모의 역할을 떠넘긴 것이나 마찬가지...

그날부터 나는 기다렸다. 아쥐니는 숟가락으로 물컵의 물을 뜨다가 쏟기도 하고 어질러진 책 때문에 보고 싶은 책을 한참이나 찾기도 했다. 서툴지만 신발도 직접 벗고 신었고, 킥보드도 넘어질 것 같았지만 혼자 타게 해봤다. 이제 아쥐니는 그렇게 직접 느끼고 생각하며 성장할 것이다. 

아쥐나 어쩌면 이렇게 기다려주는 게 아빠의 역할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는 항상 너를 믿고 기다려줄 테니 하고 싶은 거, 이루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하길 바란다. 

2020. 09. 17

딸에게 아빠가


#아빠육아 #기다림 #아동인권 #믿어줄게 #그래도외박은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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