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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쭉이 아빠 Sep 22. 2020

코로나 시대, 아이를 위해 '변기'를 사다

아빠가 딸에게

"집에 가고 싶어. 엉엉엉"

아쥐니가 침낭을 부여잡고 서럽게 울었다. 콧잔등에 바람이라도 쐬어주려 모처럼 강원도로 차박을 왔건만, 아이는 아비의 마음을 몰라줬다.

계속되는 코로나 2단계 주간. 삶을 통틀어 많이 뛰어놀아야 할 시기였기에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 건 다름 아닌 아이들인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놀이터로 놀러 가자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더욱 안쓰러웠다. 어른도 이렇게 힘들고 답답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고민 끝에 찾은 해결책은 차박이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차박은 사실 언택트가 아니었다. 차박을 온 많은 사람들로 차박지는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당연히 2미터 거리두기나 마스크 쓰기가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함께 사용하는 공용 화장실이 문제였다. 청소상태는 둘째치고 '공용'이라는 점이 깨림칙했다.

그래서 나는 변기를 샀다. 사람들이 덜 모이는 노지 차박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노지에는 화장실이 없다. 휴대용 변기로 볼일을 해결하고 물세수를 하면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사실 하루 안 씻어도 큰일 나지 않는다) 갈 곳 없는 코로나 시대에 아이가 자연 속에서 뛰노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차박이 싫다고 했다.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무서웠을까? 바람 때문에 파도 소리가 너무 컸던 때문일까? 차 안이 너무 좁아서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쥐니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다녀도 될지 걱정이 됐다. 단지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어린 시절에 자연의 소리와 냄새, 촉감 등을 선물하고 싶었다. 나 역시 아버지 배낭 속에서 잠들었던 기억과 나뭇가지 두 개를 젓가락 삼아 먹었던 라면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박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아쥐니가 하원을 시키려 오신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집에 가기 싫어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나 참... 차박 보다 집이 좋고 집 보다 얼집이 좋다니.

얼집서 더 놀고 싶어서 울었다는 아버님 말씀을 듣고 나서 '억지로라도 데리고 다닐 수 있을 때 차박을 실컷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좀 더 크면 가자고 해도 안 갈 테니 말이다.

아쥐나,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면 아빠 엄마랑 산과 바다에서 자고 먹고 뛰놀던 기억들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인지 알게 될 거야. 아빠처럼. 장담해ㅎㅎ

2020. 09. 23
아빠가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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