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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쭉이 아빠 Sep 25. 2020

아이의 뒷주머니에 부담감을 물려줄 순 없다

아빠가 딸에게

내 아버지는 엄한 편이셨다. 다니시던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릴 만큼 무서운 어른이었다. 특히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가르치셨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몸에 밴 습관이 식사예절이다. 밥 먹기 전에는 항상 어머니께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숟가락을 든 이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풀이라도 흘리면 아버지는 농부의 피땀을 말씀하시며 주워 먹게 했다. 다 먹고 나면 내 밥그릇과 수저는 내가 치웠다. 자연스럽게 정리 정돈 습관도 배웠다.

굳은살처럼 박힌 식사예절과 정리 정돈 습관은 내 삶에 기본이 됐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했으며, 사진을 찍을 때도 수직과 수평이 맞아야 했다. 어질러져 있으면 왠지 불안했다. 사실, 이 모든 규칙들은 실수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실망스러운 아들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만큼은 제대로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식사예절과 정리 정돈이었다. 하지만 막무가내 아이에겐 무리였는지 매번 밥 먹을 때마다 나와 부딪혔다. 어질러진 집안을 참지 못했기에 아이가 장난감을 어지를 때마다 바로바로 치웠다. 1년 육아휴직 동안 이 문제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며칠 전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며 아내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이에게 약간의 강박증이 보인데요" 아내 목소리는 심각했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고 했다. 예절과 정돈을 가르친단 명목으로 너무 많은 규칙을 만들었던 게 화근이란다. 안 그래도 예민하고 완벽한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데 집에서까지 완벽을 요구하니 아이가 힘든 거라고 했다.

과거의 나 또한 '실망시켜드리지 말아야 한다. 장남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나 자신을 몰아붙였었다. 그 결과 항상 뒷주머니에 부담감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에겐 그런 마음을 물려줄 순 없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 이랬다. 우선 나부터 놓기로 했다. 짧은 세상, 이제라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좋아하는 것 마음껏 해야겠다.

아쥐나 아빠가 미안해~

2020. 09. 25
아빠가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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