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관음 Jul 22. 2020

한글 반야심경 2020

오해를 넘어 새롭게 번역한 한글 반야심경

한글 반야심경 2020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가리키는 핵심이 되는 말씀


관자재보살은 세상의 실체를 가리키는 깊은 진리의 표현이기에,

세상의 실체가 공함을 바로 보면 모든 어려움을 넘어 그 실체 닿느니라.


사리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기에 물질이 곧 공이고 공이 곧 물질이니, 

감각과 인식과 생각과 의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공하기에 생겨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으며,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느니라.


이렇게 공하기에 물질도 실체가 따로 없고 감각과 인식과 생각과 의식도 실체가 따로 없느니라.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의식도 실체가 따로 없으며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그 현상도 실체가 따로 없기에 본다는 것과 본 것을 의식한다는 것 사이에는 어떤 구분도 없느니라.


이런 사실을 모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심지어 늙고 죽는 것이 없기에 늙고 죽는 것에서 벗어나는 일도 없느니라.


괴로움이 실체가 없기에 괴로움의 원인도 괴로움의 사라짐도 괴로움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도 없고, 

지혜가 따로 없기에 얻을 수 있는 지혜 또한 없느니라. 


이렇게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찾는 이는 오직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드러나기만을 바라야 하느니라.


그러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고, 걸릴 것이 없으면 두려울 것이 없어서, 

모든 거짓 믿음을 넘어 어떤 의문도 남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드러나느니라.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모든 부처는 오직 있는 그대로의 진리에 눈을 뜨면서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나고 찾음을 온전히 끝내느니라.


그러니 명심하기를,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바로 보는 것만이 가장 신비하고 확실한 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방법이기에 능히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어 진실에 닿기에 헛되지가 않느니라.


그래서 일러주리니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있는 그대로의 진리에 눈을 뜨거라.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음에 눈뜨게 하옵소서.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음에 눈뜨게 하옵소서.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음에 눈뜨게 하옵소서.



반야심경 한글 번역, 관음 옮김 @ 2020



반야심경을 한글로 새롭게 옮겼다. 

이 글이 마음에 와닿고 마음에 새기고 싶다면, 매일 낭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늘 낭독할 때 글이 가리키고자 하는 뜻을 잘 새기기 바란다. 

반복이 어느 순간 당신의 가슴을 열고 그 뜻이 존재 깊숙이 가닿을 것이다. 그리고 관자재보살이 가리키는 지금 글을 읽고 있는 그 실체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어떤 의문도 남지 않는 온전한 찾음의 끝이 일어난다. 


한글 번역은 스승 석가모니가 만일 한글로 현장의 반야심경을 찾는 이들을 위해 번역한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옮겼다.


반야심경은 최초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있었다고 추정된다. 인도에 갔던 당나라 승려 현장이 산스크리트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옮겼다. 현장의 한문 번역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번역본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반야심경도 있느나 현장의 번역본 이전 것은 아니다.


누가 언제 반야심경을 적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나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점은 석가모니가 직접 쓰거나 석가모니의 말을 바로 받아 적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초의 불경이 석가모니 사후 수백 년은 지나서 운문 형식으로 형성되고 문자로 기록된 것은 또 한참 뒤로 추정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거쳐 다양한 경전이 문자로 옮겨졌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해가 완전한 한 스승이 수많은 경전을 요약해 되뇌기 쉽게 스승 석가모니 가리킴의 핵심만 담는 짧은 문장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다. 처음 버전이 계속 내려왔을 수도 있고 처음 버전이 여러 스승을 거치면서 다듬어졌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반야심경을 적은 이는 이해가 온전한 스승일 것이다.


오랜 세월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문자에서 문자로 옮겨졌다면 분명 내용에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현장의 반야심경을 보면 이런 변화와 작은 왜곡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장의 반야심경은 거의 정확하게 스승의 가리킴을 온전히 담고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이렇게 온전히 진리의 핵심을 정확히 담아내왔다는 점을 보면 석가모니 이후 현장이 옮기기 전까지 인도 스승들의 노력이 쌓이고 쌓였을 것이다. 


차라리 큰 변화와 왜곡은 현장의 한자 번역에서 한글로 옮겨지는 과정에 있어보인다. 오랫동안 지켜온 뜻이 최근에 한글로 옮겨지면서 크게 왜곡되어 전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 어쩌다 한글 번역을 시작하게 됐다. 애정어린 반야심경이 더 왜곡 되기 전에 한 번은 그 뜻을 바로 잡아 전하고 싶다.

이 한글 번역을 '한글 반야심경'으로 삼는다. 다른 한글 반야심경과 구분하기 위해 2020을 붙여 '한글 반야심경 2020'이라 이름 붙인다.


번역에서 한자어는 "관자재보살"과 "공하다"만 남겼다. "관자재보살"은 하나의 이름이라서 번역 대신 해설을 달았고 "공하다"는 이미 한국어 사전에 있는 말이기에 그대로 썼다. 반야심경이 '공하다'를 설명하는 글이고 "공하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개념을 가지는 말이기에 그대로 쓰는 것이 맞다. 그래서 이 번역본은 온전한 한글 번역이라 말하고 싶다.


번역은 널리 알려진 현장의 260자 한문 반야심경을 바탕으로 해서 원문의 내용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기존의 다른 한글 번역들과 영어 번역들을 참고했고 가끔씩 산스크리트 어원을 분석하며 스승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자 하는지 살폈다.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반야심경이라는 글의 본질을 온전히 살피고 지켜내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스승의 가리킴이다. 스승의 가리킴은 찾는 이가 직접 살피고 진리에 눈을 뜨게 하는 데 있다.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가리킴의 본질을 온전히 살펴, 사리자로 대표되는 찾는 이에게 석가모니 스승이 반야심경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을 그대로 한글로 옮겼다.


부디 이 번역으로 반야심경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스승의 뜻이 올바로 한국의 모든 찾는 이에게 가닿기를 바랍니다.


부디 도움이 되길.


관음


2020.7.19


관련 글:


작가의 이전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