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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음 Mar 07. 2020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당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실체를 알려주는 가리킴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대반야바라밀다경'이라는 불교 경전을 요점만 간략하게 260자로 축약한 짧은 경전인다.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의 역사적 실제 모델인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玄裝)이 고대 인도의 불교 경전 Prajñāpāramitāhṛdaya (Heart Sutra)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한자 260자의 짧은 반야심경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요약한 핵심으로 여겨지며 불교 절에서는 매일 새벽 예불을 드릴 때 단체로 낭송한다.


반야심경은 석가모니와 제자 사리자 와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짧은 대화 중에 석가모니가 사리자에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며 말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 이 8글자가 반야심경의 핵심이라고 여겨진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여, 물질이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 느낌, 생각과 지어감, 의식 또한 그러하니라.


그럼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이 뭘까?

한글 번역은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라고 되어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말은 우리 세상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실체를 스승 석가모니가 알려주는 말이다.

"색"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을 상징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러면서 "색즉시공", 즉 "색은 곧 공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실체는 공이라는 말이다. "공"이란 텅 비어 있다고 많이들 오해하는 데 전혀 아니다.

"공"이란 텅 비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단단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것"에 대한 믿음이 틀렸다고 알려주며 단단한 그런 실체는 사실은 없다는 말이다. 삼장법사는 한자에서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공이라는 말로 번역했을 따름이다.

이 블로그의 글과 다른 글들을 체계적으로 엮으며 빈 곳을 메꾸고, 다듬고 다듬어 
책 '반야심경의 비밀 (반야심경 우리말 번역과 해설)'을 내놓았습니다. 
블로그의 한계로 전하지 못한 체계적이고 좀 더 깊은 해설을 만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저기 "돌"이 단단한 쪼개어질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을 작게 나누면 더는 나눌 수 없는 '원자'까지 나눠질 거라 생각했다. 원자는 실체가 있는 단단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원자들로 이루어진 돌도 단단한 것이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원자를 쪼개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것'이라고 할 것이 전혀 없었다. 더 이상 쪼개어지지 않는,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무엇이 없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깊이 파헤친 과학이 양자역학이다.


하지만 굳이 "그 말이 텅 비어 있다"는 게 아니냐고 다시 묻는다면, 반은 맞다고 해줄 수 있다. "공(空)"은 한자어기 에 한글로 "텅 빔"이라고 번역할 수 밖에 없어 반은 맞다. 언어와 사고의 영역에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또 반은 틀렸다. 가리키는 그 무엇은 언어와 사고를 뛰어 넘어 있기 때문이다.


색즉시공 즉, 우리가 어떤 실체가 있는 '것'들의 집합으로 보이고 만져지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의 실체가 사실은 '것'이 아니라는 도저히 우리 일상의 경험에 어긋나는 사실을 말한다. 이것이 진정한 진리라고 양자역학이 있기 수천 년 전부터 석가모니가 말해왔다. 석가모니는 색의 실체를 가리켜 "공(空)"이라는 말을 썼다. "공"은 의미가 없다. 그저 가리킴이다. 우리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무엇을 가리켜 공이라고 이름 붙여 제자에게 그 "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직접 찾아 보라고 독려한다. 직접 알기 전에는 "공"은 스승이 가르쳐 주는 하나의 지식에 불과하다. 지식은 믿어야 한다. 스스로의 확신이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공"을 알려면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직접 깨닫기 전에는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일 뿐이다. 찾음에서 지식은 전혀 쓸모없다. 왜냐하면 "공"은 생각으로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이 가리키는 일명 진리라는 무엇은 오직 부처가 된다는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나야지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다. 


사실 석가모니가 처음이 아니다. 노자는 "공"이라는 말 대신 "도()"라는 말을 써서 그 무엇을 가리켰다. 예수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통해서 "공"을 가리켰다. 세상에는 궁극적이 깨달음이 일어난 수많은 자연인이 있다. 필자도 자연인이다. 사실 자연인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오랜 세월 종교를 통해 잘못 왜곡되고 수많은 오해에 오해가 쌓이면서 자연인은 왜곡되어 "신"으로, 신과 같은 존재로, 예언자로 잘 못 전달되고 알려져왔다. 이렇게 왜곡되면서 자연인의 가르침도 왜곡되어 왔다. 부디 오해를 넘어서 스승이 가리키고자 하는 진리, 세상의 실체를 살펴보라. 어렵지 않다.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 그저 편견과 오해만을 걷어내면 있는 그대로의 진리는 온전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점을 당신은 아마 놓였을지 모른다. "색"은 세상을 말한다. 세상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포함한다. 즉, "나"의 실체도 "공"이다. 색즉시공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과도 통한다. 결국 같은 진리를 향한 의문이다. 또 이 말은 "마음 다스리기"와도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공"은 "마음"과도 다른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을 알면 우리가 다스리고 싶어 하는 마음의 실체를 알게 된다. 더 나아가 다스리고 싶어 하는 그 주체의 실체 또한 알게 된다. 수많은 각양각색의 말들이 알고 보면 다 같은 무엇을 가리킨다. 


다음은 필자가 쓴 책,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의 내용이다. 깊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참뜻을,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실체는 무엇인가?", "성령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면, 책,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를 읽어보기 바란다.


여기 양자역학을 통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을 풀어나가는 책의 내용을 발췌해본다.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어렵다면 책의 첫 부분부터 차근차근 읽고 난 뒤 다음 내용을 읽기 바란다.


책,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에서 색즉시공의 뜻을 다양한 방향에서 살펴보는데, 이 부분은 양자약학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다음은 '양자역학에서 얻는 화두' 337 쪽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전자는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색즉시공(色卽是空)

물질은 파동-입자 이중성을 지닌다. 측정 당하기 전에는 확률적으로 존재하며 파동성을 지닌다. 어떤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잠재다. 잠재적인 무엇이다. 이것을 스승들은 공(空)이라고 불렀다. 공은 물질의 잠재다. 잠재는 분명 존재한다. 우리가 익숙한 ‘존재’의 개념은 아니지만 분명 무엇이 있다. 스승은 이 무엇을 가리켜 공(空), 무(無), 도(道), ‘텅 빔’과 같은 이름으로 가리켜 왔다.

스승이 공(空)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가리키고자 한 무엇은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이 아니라 ‘어떤 것이 아닌 무엇(No-thing)’이다. ‘것’이 아니다. 잠재다. 그저 존재다. 우리가 관찰하면 ‘것’으로 나타나며 ‘것’으로 경험되지만 실체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 이름 없는 무엇을 공(空)이라 부르고 나타나 보이는 ‘것’을 색(色)이라 부르면 “색의 실체가 공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공은 세상의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것’의 실체다. ‘것’으로 나타날 잠재적 무엇이다. 무한한 가능성이다. 공은 잠재 그 자체다. 이 잠재를 과학자들은 에너지라고 부른다.

스승은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잠재가 둘이 아니라고 가리킨다. 이 전자와 저 전자, 각각 전자의 잠재가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측정되기 전 전자는 구분이 없다. 무엇이 어디에 따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세상 모든 물질의 잠재는 둘이 아니다. 아니, ‘하나다 둘이다’며 나누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개념이 일어나기 이전이다.


전자는 측정되는 순간 입자로 존재한다.
공즉시색(空卽是色)


그럼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이 존재하고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까? 잠재라는 무엇이 엄청나게 다양한 것들로 나타나고 우리는 이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실마리는 측정이다. 전자는 측정 전에는 잠재의 상태이다가 측정되면서 ‘것’이 된다. 잠재인 공이 측정과 함께 ‘것’인 색이 된다는 말이다. 즉,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것이 있는데, 선과 후를 따지는 시간 개념을 갖다 대는 것이다. 빅뱅 이론처럼 잠재적인 무엇이 대폭발하면서 다양한 물질과 공간이 생겨나고 지금의 세상을 만든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개념은 여기 적용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잠재적인 무엇이었지만 지금은 ‘것’이라는 물체로 존재하기에 더는 잠재적인 무엇이 아니라는 개념은 여기 맞지 않다. 스승은 ‘공이 색이 되었다’거나 ‘색이 공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물체가 곧 공이고 공이 곧 물체라고 말한다. 언제나 늘 그렇다. 양자역학은 지금 이 순간 물체의 성질을 말한다. 어떤 물체든 그 기본단위로 실험해 보면 잠재의 성격을 띠다가 측정과 동시에 물체의 성격을 띤다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의 본성이 공이라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주체와 객체는 둘이 아니다.
보는 자와 보이는 사물은 둘이 아니다.
주어와 목적어와 동사는 둘이 아니다.


책의 '마음' 부분에서는 마음의 실체를 살펴보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을 알아본다. 

색즉시공에서 공이 가리키는 무엇은 화엄경의 일체유심조에서 말하는 마음이 가리키는 무엇과 다르지 않다. 공, 마음이라는 부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달의 정체가 뭘까?


네이버 북: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9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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