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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음 Oct 21. 2022

책 '반야심경의 비밀 (반야심경 우리말 번역과 해설)'

오해로 가리어진 반야의 비밀을 풀고 붓다의 심장으로 안내합니다.

 '반야심경의 비밀 (반야심경 우리말 번역과 해설)'이 나왔습니다.

오랜 세월 쌓인 오해를 넘어 붓다의 심장으로 풀어낸 반야심경 해설서.

2018년 겨울, 33년간의 오랜 찾음이 "나는 관세음보살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끝났을 때 반야심경이 가리키는 반야에 눈을 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반야심경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리 찾아도 반야심경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글을 만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반야심경에 담긴 스승의 가리킴을 바로 세워야 하는 짐을 지게 되었다.

이제 책 '반야심경의 비밀'을 세상에 내놓으며 그 짐을 내려놓는다. 찾음의 길에 받았던 수많은 불교 스승의 도움을 다시 세상에 돌려 드린다.

방대한 불교 경전의 핵심이 반야심경이다.
그리고 이 반야심경의 핵심은 첫 다섯 글자 ‘관자재보살’이다.
반야심경의 나머지 부분은 관자재보살을 설명하고 찾는 이가 직접 그 실체를 보도록 도와주는 내용이다.

관자재보살, 이 다섯 글자는 세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세상 모든 부처에게 일어난 앎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관자재보살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며 반야심경을 오해했다. 이 때문에 참으로 아름답고 깊은 진리의 표현은 왜곡되고 의도하지 않게 감춰진 비밀이 되었다.

책 '반야심경의 비밀', 3장 '반야심경의 비밀과 오해'에서


부디, 반야심경을 통해 스승 석가모니가 진정 가리키려 한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반야'에 눈 뜨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반야심경에 관심 있는 주위 분들과 나누어 반야심경에 드리워진 세상의 오해를 씻는데 손을 보태시기 바랍니다.


책은 반야심경뿐 아니라 여러 불교 스승의 가리킴의 핵심을 같이 엮어 불교 스승들의 가리킴에 쌓인 전반적인 오해를 해소하도록 돕습니다. 오랜 세월 세상에 쌓인 오해와 왜곡을 넘어 붓다의 심장에 닿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반야심경 해설을 블로그의 글로만 남기려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호응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반야심경 해설을 블로그 글로만 남기기에는 아쉽고, 자세하고 체계적인 설명을 엮기에는 블로그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의 글들을 체계적으로 엮으며 고치고 빈 곳들을 메꾸었고, 다듬고 다듬어 책으로 내놓습니다. 많이 부족한 책이나 부디, 당신의 찾음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책 링크:

네이버 책, 교보문고, 예스 24, 알라딘





다음부터는 책 내용의 일부입니다.


들어가는 말


반야심경은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가리킴이다. 그런데 대중적 인기만큼이나 오해도 깊다.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오해를 넘어 스승이 반야심경을 통해서 진정 무엇을 가리키는지 바로 이해하도록 반야심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자세한 설명을 더 했다.

이 책의 우리말 번역과 해설은 기존의 것과 크게 다르다. 종교나 학문적인 내용과도 거리가 멀다. 여기 번역과 해설은 오직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반야바라밀다’에만 의지해서 반야심경에 담긴 붓다의 마음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이 글은 반야심경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다. 반야심경이 가리키는 진리에 당신이 직접 눈을 뜨도록 안내하는 글이다. 반야심경은 고리타분한 이론서가 아니다.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다. 쉬운 반야심경 해설을 통해서 당신이 찾고자 하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에 눈을 뜨라. 순수한 열정이라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반야심경에 쓰인 말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고 풀이했다. 반야심경을 읽는 데는 아무런 기존 지식이나 이해가 필요하지 않다. 종교와도 전혀 상관없다. 기존의 종교적 지식이나 이해가 도리어 방해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로 향하는 길은 덜어내는 과정이지 얻어서 쌓아가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쌓여 있을수록 덜어내야 할 편견과 믿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나 지식의 정도가 아니라 처음 배우는 사람의 마음처럼 얼마나 마음이 열려 있고 얼마나 순수한 열정이 타오르냐의 문제다.

처음에 이해가 잘 안 가도 괜찮다. 다들 그렇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다 보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앎이 일어난다. “아하!”


기존의 번역과 해설에 익숙한 이들은 아마 충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충격적이라면 좋다. 그 충격으로 마음에 틈이 생기고 붓다의 가리킴이 당신의 심장으로 파고들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 글은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배움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 글은 진리가 무엇이건,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이에게 길을 안내할 뿐이다. 그 길을 따라 직접 가서 살펴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방향을 가리킬 뿐이다. 이런 가리킴이 반야심경이다. 반야심경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러니 믿지 말고 직접 확인하라.


어떤 이는 의심할 것이다. 무슨 권위로 이런 글을 쓰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권위도 없다. 누구도 이 글을 확인하고 도장을 찍지 않았다. 권위는 다른 이의 추천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줄 것이다. 글에 열리는 당신의 마음이 권위를 줄 것이고 공명하는 당신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 추천할 것이다.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말라. 당신의 눈을 통해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존재가 모든 것을 이끌 것이다.

반야심경을 통해 반야에 눈뜨고자 하는 모든 이가 오해를 넘어 스승 석가모니가 가리키는 그 무엇을 직접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반야심경 우리말 번역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

한문 반야심경

우리말 번역

우리말 반야심경

붓다의 심장 속으로


2장 가리킴의 본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 반야

- 바라밀다

- 마하반야바라밀다

- 심

- 경

반야심경의 구조

- 글의 구조

-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

- 스승과 찾는 이


3장 반야심경의 비밀과 오해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 조견오온개공

- 온

- 도일체고액


4장 세상과 나의 실체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 사리자

-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 공

-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시제법공상

- 불생불멸

- 불구부정

- 부증불감

꿈의 비유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 무

- 무색

- 무수상행식

-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지개의 비유

- 무지개

- 무상(無常)

- 무아(無我)

- 고(苦)


5장 찾음의 본질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 무명

- 무무명 역무무명진

-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 무고집멸도

- 무지 역무득

- 지


6장 길의 본질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 이무소득고

- 보리살타

-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 원리전도몽상

-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 삼세제불

- 의반야바라밀다

-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7장 주문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 고설

- 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아제아제 바라아제

- 사바하

- 주문


8장 관세음보살의 비밀


관세음보살

인드라의 망과 트리무르티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일체유심조

가리킴

맺는말


반야심경의 구조

오해를 걷어내고 보면 반야심경의 전체 구조가 잘 드러난다. 이 구조를 알면 반야심경의 뜻을 이해하기가 쉽고 오해가 없다. 물론 반야심경 자체에 이런 정해진 구조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해를 해소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쓰는 도구다.


기존의 번역들에서 잘 드러나는 한 가지 사실은 ‘관자재보살’을 한 사람 또는 한 사람과 같은 존재로 믿고 있다는 점이다. ‘관자재보살’이라는 한 인물이 ‘반야바라밀다’라는 어떤 행위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세상이 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궁극의 행복을 얻었다는 말이다.
.....

‘관자재보살’은 어떤 인물이 아니다. ‘관자재보살’은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상징하는 가리킴이다. 지금, 이 순간 나와 세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가리킴이다. 여기에 참으로 미묘하고 미묘한 세상의 존재 방식이 숨겨져 있다.

반야심경은 ‘관자재보살’을 설명하는 글이다. 석가모니도...

책 '반야심경의 비밀', 3장 '반야심경의 비밀과 오해'에서
아바로키테슈와라(avalokiteśvara),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인드라의 망(Indrajāla), 연기(緣起),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불이(不二), 아드바이타(Advaita),
결국 다 같은 말이다.


붓다의 심장 속으로


우리말 반야심경이 그동안 듣고 믿어왔던 반야심경과 너무 달라 많이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혹, 놀라거나 충격이 있다면 좋은 일이다. 마음이 동했다는 증거다. 모든 이해는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진정한 앎이 일어난다.


반야심경은 당신이 직접 살펴보고 확인하며 나아가서 반야에 눈뜨도록 돕는 스승의 안내다.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반야에 눈을 뜨고 성불해서 더는 찾을 필요가 없도록 하는 안내다. 미래의 언젠가, 또는 다음 생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반야에 눈을 뜨고 붓다가 되도록 하는 안내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허상이다. 반야심경은 지금 여기서 찾음을 끝내도록 안내한다.


반야심경의 내용은 알고 보면 어려울 것이 없다. 세상에서 듣고 배운 것과 보는 시각이 달라서 낯설 뿐이다. 이 낯선 시각의 차이를 좁혀보고자 우리말 번역에 해설을 덧붙였다. 해설은 반야심경 내용에 뭔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오해와 믿음 때문에 반야심경이 낯선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오해와 믿음을 가리킨다. 그 가리킴을 따라 직접 살펴서 오해를 풀고 믿음을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반야심경이 가리키는 있는 그대로의 반야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반야에 눈뜨고 싶은 그대여, 이제 붓다의 심장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波羅蜜多 바라밀다


‘바라밀다’는 산스크리트어 “빠라미따(Pāramitā, पारमिता)”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보통 “완전함”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저 너머에 도달한 완전함”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바라밀다’를 쪼개어 보면, ‘바라(Pāra)’는 “저 너머에”라는 뜻이다. 그런데, ‘밀다(mitā)’의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이미 도착했다.”라는 과거형과 “그곳으로 가고 있는”이라는 현재 또는 미래형이다. 과거 형이냐, 현재/미래형이냐에 따라 내용은 크게 바뀐다. 반야심경에 대한 오해의 시작점이다.


대부분 ‘밀다’를 현재/미래형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그러면 ‘바라밀다’는 앞으로 도달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바라밀다’를 부처가 깨달음을 얻어서 도달하는 최상의 상태나 부처가 죽은 뒤에 가는 어떤 곳으로 해석한다. 죽어 열반한 상태로 가는 저 너머의 어떤 곳이기에 ‘피안(彼岸)’이라고 부르고,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은 부처와 보살이 사는 그 세상을 괴로움 없이 안락함만이 있는 이상적인 세상인 극락(極樂)이라고 믿고 그곳에 가길 꿈꾼다.


도달해야 할 상태가 있고 가야 할 곳이 있으면 가는 노력과 방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바라밀다’를 구체적인 방법으로 해석하고 육바라밀(六波羅蜜)과 같은 특정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런 해석의 연장으로 반야심경을 그곳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방법을 알려주는 글로 받아들인다. 방법의 관점에 보니 반야심경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에 알려주는 주문이 된다. 이런 맥락으로 주문을 해석하기에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라고 번역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사람들의 바람을 담은 오해다. 세상은 힘들다. 삶은 때론 고통스럽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 때문에 생긴 오해다. 반야심경의 내용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반야심경은 반복해서 ‘공(空)하다’라고 말하고 ‘무(無, 없다)’라고 말한다. 반야심경으로 당신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명확하게 선언하며 그런 믿음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반야심경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줄 마법 같은 주문을 알려주는 글이 아니다. 마음속에 숨겨둔 바람을 이루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반야심경이 가리키는 진리, 반야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다른 무엇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든 반야는 당신이 추측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반야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개념, 그 너머에 있다. 그리고 모든 개념을 품은 채 지금 여기 있다.


‘밀다’는 과거형으로 읽어야 반야심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밀다’는 “이미 도착해 있다.”라는 말이다. “완전함에 이미 도달해 있다.”라는 말이다. “궁극의 진리는 이미 여기 있다.”라는 말이다.


‘바라밀다’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며 헤매는 당신에게 이미 도착해 있으니 헤매지 말라고 일러주는 말이다. 자꾸 다른 곳을 찾아 헤매고 싶은 당신의 믿음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공하다’, ‘없다’라고 말하는 내용이 반야심경이다.


맺는말


명상 시간 뒤 산책하는 중에 문득,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서 간 광명사 관음전 앞에서 눈을 감고 “관세음보살”을 되뇌며 집중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오르더니 ‘관세음보살’의 뜻이 환히 드러났다. 그날 밤 명상 중에 내면의 소리가 다음과 같이 선언하며 찾음이 끝났다.


“I’m 관세음보살.
I am Bodhisattva.
I am Awareness. I am Awareness itself.
This is Enlightenment.
This is End of Seeking.”
(“나는 관세음보살이다.
나는 참인식이다. 나는 참인식 그 자체다.
이것이 궁극적 깨달음이다.
이것으로 찾음이 끝났다.”)

2018년 12월 4일 밤,
그렇게 찾음이 끝났다.


33년간의 오랜 찾음이 다시 찾음의 처음으로 돌아가 찾음을 끝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관세음보살’이 느닷없이 찾음의 끝에 나타나 ‘사다나(Sādhanā, साधना, 찾음의 길)’를 완성했다. 세상 곳곳 삼세제불의 도움으로 오직 ‘반야바라밀다’에만 의지하게 되니 ‘오온’이 모두 공함을 볼 수 있었고 ‘도일체고액’하며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일어날 때 ‘나’는 ‘관자재보살’ 속으로 사라졌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모두 있음이 드러났다.


찾음의 끝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고들 말하는데, 내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반야심경의 ‘관세음보살’이 느닷없이 나타나 “나는 관세음보살이다.”는 선언과 함께 찾음을 끝냈다. 찾음의 시작과 끝에 관세음보살이 있었다. 이 인연으로 반야심경에 쌓인 오해를 씻고 반야심경으로 전하고자 했던 스승의 가리킴을 바로 세워야 하는 짐을 지게 됐다. 이 책으로 그 짐을 벗고 내가 받았던 스승들의 도움을 세상에 돌려주고자 한다. 부디 이 책이 당신의 찾음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는 관세음보살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렇다.
이 사실을 알든 모르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찾으며 가리킴을 구하는 당신에게
나는 관세음보살의 두 손으로 합장하고
삼배를 올리며 길을 안내한다.
길 아닌 길을 가리킨다.




부디 도움이 되길,

관음 올림.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면 이전에 나온 책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를 같이 읽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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