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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음 May 29. 2019

찾음의 시작과 끝 - 끝의 시작 2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

어릴 때부터 나는 뭐든 왠지 궁금해하는 아이였다. 이상하게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다. 언제부턴가 내가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도대체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가 뭔지, 도대체 삶의 이유가 뭔지, 왜살아가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보면 세상이하나님에게 사랑받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부처라고 하는데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보였다. 누군가는 진리의 말이라며 떠들어대는데, 내가 아직 어려서, 내가 아직 수준이 낮아서, 죄가 커서, 아직수행이 부족해서, 잘 모르는 줄로만 알았다.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거나 수도원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치열한 삶 속에서도 이 큰 물음표 하나는 늘짊어지고 다녔다. 한때는 종이로 된 책에 해답이 있는지 알았다. 공부를 많이 한 똑똑한 사람들은 이미 해답을아는지 알았다.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은 그 답을 아는지 알았다. 산속에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큰스님들은 그 답을 아는지 알았다. 큰 교회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은 그 답을 아는지알았다. 바티칸에서 사람들을 축복하시는 교황님은 그 답을 아는지 알았다. 언제부턴가 알게 됐다. 그분들도모른다는 사실을. 다들 하나님이, 부처님이, 노자가, 큰 스님이, 선사가, 어떤 성자가 말씀하시길 하면서, 다른사람의 말을 전해줄 뿐이었다. 어떤 위대한 사람이나 책의 권위를 빌어 말할 뿐이었다.


답을 아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자신의 앎으로질문에 답해줄 사람을 찾고 싶었다. 찾아서 가슴 속에 묵혀온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다들돌아가시고 없었다. 석가모니, 예수, 노자와 같은 분들은 원래 오래전 사람이고 라마나 마하리쉬와 오쇼라즈니쉬의 책을 만났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오쇼의 책에서 그가 타계한 지 얼마 안 된 것을 알고무척이나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한국에서 누구 속 시원히 답해줄 수 있는 사람 없을까 찾아보았지만찾을 수 없었다. 한국이 아니라 세계 어디라도 살아계신 스승이 있다면 찾아가 보고 싶었다. 어디 있을지 모를스승을 생각하며 가슴 한구석 큰 물음표 하나 묻어두고 살아갔다.


1999 년 IMF 의 여파를 온몸으로 받고 떠밀려 어쩌다 미국까지 오게 된다. 한국에서 겪은 IMF 에 이어미국에서 9/11 테러에 따른 경제 여파를 다시 온몸으로 겪으며 사회 초년생으로서 사회에 한 발 내딛는 것이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겪었다. 우에 곡절 끝에 간신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정착하며 살게 되었을 때 늘가슴 속에 품어왔던 삶의 물음표 하나를 다시 꺼내 들었다. 진리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라고 늘 생각했었다.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 물음에 관한찾음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나 또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자리가 없어서 겪는 가슴앓이와 돈이 없고기댈 사람이 없어 겪는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더 잘 이겨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에서 더자유롭고 지질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너그러운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진리를 찾으면 그렇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다. 사람들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묘사할 때 우리가 겪는 일상의 어려움에서 자유로운 위대한 사람으로 그린다. 그래서 나도 진리를 찾으면지금보다 나은 삶을 사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내게는 그런 기대들보다 어디서 온 지 모를 이 궁금증이 더 큰 문제였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그 성자들이깨달았던 진리를 알고 죽고 싶었다.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나는 누굴까? 아니, 무엇일까? 나는 왜사는 걸까? 인생의 의미는 뭘까? 태어나기 전에 난 무엇이었을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도대체 이 세상은뭘까? 어떻게 생겨나서 어디로 가는 걸까? 도대체 왜 생겨났을까? 도대체 세상은 왜 지금 이 모양일까? 왜예수님과 그 모든 위대하고 막강한 힘을 가진 분들은 이 세상의 악들을 그대로 놔두고 사람들의 고통을외면했을까?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괴로움에 처절하게 몸부림치는데 왜 그런 사랑과 자비를 베풀지않는 걸까? 외면하는 것일까? 아니면 고칠 힘이 없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 더 큰 뜻이 있는 걸까?부처님과 온갖 보살들은 왜 그 좋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나눠주지 않는 걸까? 세상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것같은 대단한 힘이 있을 것 같은데, 또 대자대비하다고들 하는데, 왜 중생을 단번에 구제하지 않을까? 나같으면 바로 세상을 천국과 극락으로 만들고 보며 기뻐할 것 같은데,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내삶의 주체는 나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데 왜 나는 노력하면 안 되는가? 정말 내 노력이 부족해서만일까? 정말 노력만으로 되는 걸까? 아니,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맞기는 할까? 이 생에서 몇십 년 뒤나 죽기전이라도, 아니면 몇 번의 생을 더 살아야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도대체 언젠가 알게 되기는 할까? 의문은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이 모든 의문을 묶은 물음은 늘 이랬다. “도대체 이게 뭘까?”, “이 뭐지?”.

이 뭐지?

절에도 가보고 수련회도 갔다. 교회에도 다니고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도 들었다. 단전 수련도 해보고 기공도하고 태극권도 했다. 이곳저곳, 이 책 저 책, 이 사람 저 사람 틈만 있으면 찾았다. 찾음은 늘 인생의 숙제였다.어디서 찾아야 할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진리는 늘 저 멀리, 이번 생에서는 닿을 수없는 저 먼 별나라 이야기처럼만 느껴졌다.


한번은 오쇼의 책을 읽다가 영적 스승의 현존이 중요하다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아마 미국에 살아 있는 영적스승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적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미국에있는 한 사람을 찾았다. 처음 찾은 스승은 라마나 마하리쉬를 이은 파파지(Papaji)의 제자인강가지(Gangaji)였다.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었다. 조만간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한 분의 영적 스승을 더 찾았다. 집 근처에 웨인 리쿼만(Wayne Liquorman)이라는 분이 아드바이타(Advaita) 가르침을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라마나 마하리쉬와 더불어 그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영적 스승 중 한 분인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의 가르침을 이은 라메쉬 발세카의 제자다. 그때 난 아드바이타가 뭔지,니사르가다타와 라메쉬가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 했다. 웨인의 웹사이트(Advaita.org)에 나와 있는 소개를읽어보고 웨인이 내 찾음을 인도할 수 있는 영적 스승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은 찾아뵙기도전에 확신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확신이 섰는지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만 같았다.바로 웨인이 가르침을 전하는 삿상으로 달려갔다. 웨인을 찾아가 다짜고짜 “저의 구루(영적 스승)가 되어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웨인은 흔쾌히 승낙했다. 드디어 그렇게 찾던 영적 스승이 내게도 생긴 너무나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이정표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의 발아래 앉아 다른 사람의권위에 기대지 않고 말하는 스승과 함께 영적 찾음의 여정이 시작됐다.


웨인의 가르침을 접한 지 5 년째 되던 어느 날이었다. 한번은 가슴 명치 부근에서 뜨겁게 불타는 듯한 느낌이일어났고 1 주일간 계속되고 있었다. 월요일 저녁 삿상에 참석해서 웨인과 그날 처음 찾아온 한 사람이주고받는 대담을 듣고 있었다. 갑자기 에너지가 불타고 있던 가슴이 활짝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경험은 늘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가슴이 열렸다는 표현이 제일 가까울 것 같다. 나와 가르침을 가로막고 있던 어떤벽을 에너지가 불태워 없앤 느낌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에 가슴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마음이열리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웨인이 자신의 스승 라메쉬의가르침을 편집해 엮은 ‘참의식이 말하다(Consciousness Speaks)’라는 책에 깊이 빠져들었다. 너무도 좋은책이라 생각해 라메쉬를 잘 모르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번역해서 전자책으로 배포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책 문장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읽고 또 읽으며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크게 깊어졌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책번역을 시작했지만 가장 크게 혜택을 입은 사람은 번역자 나 자신이었다.


가슴이 열린 이후 5 년의 세월이 더 지나갔다. 하지만 깨달음은 아직 저 멀리 있었다. 언제 찾음이 끝날 수있을는지, 제발 죽기 직전이라도 진리를 한번은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음을 이어나가던 어느날이다. 2017 년 11 월 말, 어느 날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른 여러 생각과 다르게 마치 선언하듯 말했다.“이제 눈을 뜰 때다. (It’s time to SEE)” 이런 내면의 소리는 생전 처음이었다. 이 말은 받아들이고 말고 할 그런생각이 아니었다. 명확한 선언이었다. 그때부터 집중적인 찾음이 시작됐다. 선언과 동시에 머릿속 중앙에 강한에너지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영적 문제를 생각하거나 살펴볼 때면 늘 느껴졌다. 일하거나 TV 를 보거나 할때는 느껴지지 않다가 영적 문제에 집중할 때면, 마치 찾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듯한 표시등처럼, 어김없이생겼다 사라지곤 했다.


이제 궁극적 깨달음은 더는 미래 언젠가 일어날 일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이 뭐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했다. 지금 당장 눈을 떠야 했다. 이제 눈을 뜰 때기 때문이다. 스승 웨인 이외에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고느꼈다. 그래서 찾다가 참으로 우연히 유튜브에서 리사 카하레(Lisa Kahale)의 영상을 보고 깊이 빠져든다.웨인에 이어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스승이다. 리사는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찍은 영상과2015 년 4 월 10 일 돌아가실 때까지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총 18 편의 영상을 남겼다. 2 분에서 10 분 남짓 짧은 동영상들을 아마 수백 번은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다. 여러 번 들으면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에 흘린눈물이 적지 않다. 정말 강하게 공감했다. 리사의 가르침에, 뭔가 바로 앞에 잡힐 것만 같았다. 리사가 유명을달리 한 뒤 출판된 그녀의 유일한 책 ‘깨어나는 진리(Awakening True)’를 읽으면서 리사가 해방된자유(Liberation Unleashed)라는 인터넷 포럼 사이트를 통해서 안내자(Guide)와 일대일 대화를 주고받으며궁극적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방된 자유는 안내자와 찾는 이가 일대일 대화를 글로주고받으며 독립된 ‘나’라고 여기는 믿음이 사실인지 찾는 이가 직접 살펴보도록 안내해서 거짓 믿음을내려놓게 도와주는 곳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리사를 만날 수 없던 나에게는 너무도 반가운소식이었다. 바로 사이트에 문을 두드렸다. 해방된 자유는 마치 신세계와도 같았다. 그렇게 찾기 힘들던 영적스승들이 잔뜩 모여서 체계적으로 찾는 이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마치 영적 스승들의 어벤져스 군단 같았다.선(禪) 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일대일 대면하며 문답을 주고받는다. 스승은 제자에게 꼭 맞게 진리를 직접가리키면서 가르침을 전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것을 서양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재현해냈다. 선 불교 가르침의본질을 이어가는 듯 보였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지의 찾는 이와 안내자를 연결해서 둘이 아니라는불이원성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해방된 자유에서 안내자의 안내에 따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안내자 마띠아스는 정말 너무도 친절했다.세심하게 돌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도와주었고 레이저 칼날처럼 예리하게 숨은 믿음을 찾아 도려내서내가 직접 살펴보도록 도와주었다. 안내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안 돼서 처음으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나’라는믿음이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아차렸다. 그렇게 해방된 자유에서 말하는 문 없는 문(GatelessGate)를 지났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이 문을 지나면서 만족하고 더는 찾음을 지속하지않는다고 했지만, 난 내가 품어 온 의문에 대한 답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 쉴 틈이 없었다. 너무도 궁금한 “이뭐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곧바로 더 깊은 가르침으로 여정을 계속했다. 그렇게 더 집중적인 대담이 한달간 계속되었고 마침내 처음으로 모든 의문에 답할 수 있는 깨우침이 일어났다. 마지막에 이해가 안 되서힘들어하던 장애물이 있었는데 스승 발라와의 삿상에서 사라지며 확연한 깨우침이 일어났다. 독립되어존재하는 ‘나’라는 것은 오직 생각 속에 존재하는 믿음이며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모든 것이‘둘이 아니다’라는 불이원론, 즉 아드바이타(Advaita)를 온몸으로 깨우쳤다. 첫 깨우침(Awakening)이었다.깨우침이 일어나면 모든 의문이 답을 얻지만 일시적이다. 아직 찾음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궁극적깨달음(Enlightenment)이 아니었다. 깨우침이 일어나고 더는 의문이 없었지만 찾음이 끝나지 않았음을 잘알고 있었다. 여전히 거짓 믿음들이 남아 있었다.


첫 깨우침의 여정 중에 로버트 울프(Robert Wolfe)라는 또 다른 영적 스승을 만났다. 처음에 누군지 전혀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많은 스승이 그의 책을 추천하고 있었다. 아직도 인터넷을 쓰지 않고 유선전화기만을 쓰시는 할아버지라 잘 드러나지 않아 잘 몰랐지만 깊이 파고드는 진지한 찾는 이들에게는 유명한분이었다. 로버트 울프는 그때는 몰랐지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깨달음이 별거 아니라는사실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인지 모른다. 나 또한 그랬지만, 사람들은 깨달음이 신성하며 뭔가대단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저 거룩한 누군가의 것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로버트 울프의 궁극적 깨달음에 대한 자세는 먼 별나라의 그것에서 바로 지금 여기, 일상의 것으로 끌어내린다. 둘이 아님을알면 그뿐, 찾는 이가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는 가르침, 이분이 보여주는 평범함과 깨달음에 대한 자세는 내게큰 가르침이 됐다.첫 깨우침으로 모든 스승의 가르침이 모순 없이 거의 다 이해가 됐다. 어떤 종교의 스승이든 어떤 다른 문화에바탕을 둔 가르침이든 결국 가리키는 진리는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찾음은 계속됐다. 그렇게 스승들의가르침이 이해됐지만 뭔가 아직 확연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아직 ‘나’에 대한 거짓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지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큰 깨우침이 있고 대단한 영적 경험을 했다 해도 가슴 깊숙이 “내가 깨우쳤다. 나는신과 하나다. 나는 자유다. 세상 모두가 내 안에 있다.”는 ‘나’라는 거짓 의식은 뿌리째 뽑히기가 쉽지 않다.시간이 지나면서 싹이 다시 자란다. 많은 이들은 여기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없었다. 이 ‘나’가 여전히 어딘가 숨어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 거짓 ‘나’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찾음의 여정은 끝난 게 아니다. 숨어있던 이 믿음은 언제든지 치고 올라와서 모든 깨우침을 원점으로돌려놓을 수 있다.


우연히 유럽 여행을 하게 됐다. 혼자 가는 배낭여행이었다. 또 다른 찾음의 여정이었다. 내게 걷는 것은명상이다. 스위스 알프스의 대자연을 마주하며 아침 7 시부터 해지는 저녁 10 시까지 걷고 또 걸었다.끊임없이 찾고 또 찾았다. 대자연을 통해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또 늘 궁금했던 그리스도교 문화를알아보는 여행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는 도시마다 중요한 성당은 될 수 있는 한 들렀다. 런던의 세인트 폴대성당부터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교황의 성당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까지. 유럽의 성당들을돌아보면서 종교가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종교는 사람들의마음을 반영하고 마음을 위로한다. 진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아프고 상처 난 마음을 의지할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하다. 사람들은 종교를 필요로 한다. 짧게나마 직접 둘러본 유럽 문화를 통해 그리스도교문화와 종교에 관한 많은 환상을 걷어내는 좋은 계기가 됐다.


첫 깨우침이 있은 지 몇 달이 안 되서 그렇게 얻었던 깨우침이 문을 닫았다. 얻었기에 잃어버린다. 의문이하나둘씩 다시 일어나며 숨어있던 에고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안개 속. 머리로는 이해하는 데 가슴이 닫혔다.머리로만 하는 이해는 지식에 불과하다. 앎이 아니다. 답답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 찾음에 대한 열정과에너지를 그냥 흘릴 수 없었다. 애가 탔다. 다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았다. 이때 아디야샨티의명상캠프도 등록했다. 그리고 해방된 자유에서 운 좋게 두 명의 안내자에게 동시에 안내를 받게 됐다. 다시안내가 시작됐다.


그 어느 때 보다 열정적으로, 집중적으로 찾고 또 찾았다. 묻고 또 물었다. 이 ‘내’가 정말 실체가 있는지. ‘내’가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믿음은 참으로 떨쳐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여기 보이는 이 몸-마음이, 이마음과 육체가, 이 영혼이 ‘나’라는 믿음이 떨쳐지지 않았다. 이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내’가 생각하고 찾고명상하고 깨우친다는 의식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의식하고, 우주의 중심은 ‘나’이며 ‘내’가 깨우친다는 의식이 가슴 깊이 뿌리를 내려 사라지지 않고 깨우침으로 일어난 모든 이해를 흐리게 했다. 첫 깨우침은 이미 희미한그림자가 됐다. 답답한 시간이었다.


정말 찾고 싶었다. 웨인의 삿상과 해방된 자유 안내자의 안내와 더불어 시간이 나는 대로 좌선과 기공 명상을하고 책을 읽고 늘 해방된 자유에서 나온 안내 오디오를 듣고 또 들었다. 잠들기 전에 다른 생각 없이 찾음에집중하려고 자기 전에 영적 스승의 책을 읽고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잠잘 때도 찾음에 대한집중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꿈에서 찾으며 묻고 있었다. 참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물었다.“진리가 그 무엇이 되었든 꼭 직접 보고 말리라.” 찾음은 내게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됐다. 진리가 아니면 죽음을달라는 심정이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늘 이것을 다시 묻고 확인하고확인했다. 다행히도, 진리를 향한 열망은 너무도 강렬했으나 조급하거나 절망스럽거나 집착하는 느낌은 거의없었다. 그저 간절했다.


하루는 스승 나탈리 그레이(Natalie Gray)를 찾아뵈었다. 나탈리는 오랜 찾음 끝에 우연히 로버트 울프를만나고 대담 중에 찾음이 끝났다. 나탈리 그레이(Natalie Gray)와의 만남은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마치친구와 얘기하듯 너무도 자유롭고 재미나게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재미난 동네 누나 같았다.깨우쳤다가 희미해지기를 반복하며 힘들어하는 내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애쓰는 게 느껴졌다.그러다가 이런 말을 들려주셨다. 정말 강한 찾음이 시작되면 보통 3 년 안에 찾음이 완성된다는 어느 스승의말을 들려줬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았고 위로가 됐다. 3 년이면 어떨까, 10 년이면 어떨까, 찾게만 된다면.나탈리와 헤어지고 같은 동네에 사는 로버트 울프를 찾아뵙고 대담을 나누었다. 로버트는 헤어질 때 걱정하는나에게 안아주시면서 “잘하고 있네. 걱정 말게. (You are fine.)”라고 말씀해주셨다. 참 따뜻했다. 큰 위로가됐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강을 건너간 스승의 마음 좋은 위로 정도로만 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승의눈에는 이미 끝이 멀지 않았음이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찾음을 이어가던 어느 날 아침 선명한 순간이 찾아왔다. 앞에 아무것이 없는 듯 선명하고 깊은깨우침이 일어났다. “세상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여기 있다. 모든 것이 여기 있는데 어떻게 둘이 될 수 있겠는가!나는 그것이다(I’m THAT). 이 말마저 너무 장황하다. 모든 것이 일어나는 여기 이 인식 안에 있고 이 인식이외에 무엇이 진리가, 참현실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뿐!” 세상 어떤 누구의 가르침도 다 제쳐두고 확실하게선언할 수 있었다. 그 순간에는 선명함만 있을 뿐 어떤 의문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 바로 여기, 바로 눈앞에이렇게 벌거벗은 듯 펼쳐져 있는 이 실상을, 진리를, 어떻게 여태껏 못 알아챘을까? 어떻게 못 알아챌 수가있을까! 하지만 이 선명함도 오후가 되면서 뿌옇게 흐려져 갔다. “어떻게 못 알아챌 수 있을까!”라고 했는데도.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스치는 깨우침이 일어났다 다시 사라지는 일이 계속됐다.


2018 년 12 월 1 일, 미국 서부 1 번 도로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Pacific Coast Highway)를 달리고 있었다. 몇 달전 등록해둔 아디야샨티의 명상캠프에 가는 길이었다. 명성대로 참으로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였다. 집에서명상캠프까지 11 시간에 걸쳐 차를 운전해 가다 보니 가는 길에 아디야샨티의 “네 세상의 끝(End of YourWorld)” 오디오 북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겪는 선명한 순간이 왔다 사라지는 경험에 관해서 여러말을 들을 수 있었다. 깨우침이 일어나고 흔들리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위로를 넘어 더 자세하게 도움 될만한 내용은 딱히 없었다. 그래서 아디야샨티를 만나면 어떻게 하면 이요동치는 파도를 헤치고 궁극적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 마치 그가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모른다는 착각 속에서 말이다.


명상캠프가 시작됐다. 아디야샨티의 말씀이 참 좋긴 했지만, 강의와 대담이 너무 많고 다양한 수준의 사람에게두루 맞추어져서 처음에는 좀 실망했다. 대담 시간에 나오는 질문 대부분은 개인적인 문제를 묻고 이었고깊은 영적 물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캠프 내내 모두가 침묵해야 하고 서로 손짓도 나눌 수 없게 하는엄격한 규정이 있었고 아주 많은 명상 시간이 쉬는 시간과 적절하게 잘 짜인 일정표 덕분에 나는 내 내면의물음과 찾음에 깊이 집중할 수가 있었다.


2018 년 12 월 4 일 명상캠프 셋째 날이다. 저녁 대담에 이은 그 날의 마지막 명상 시간 중에 궁극적 깨달음이일어났다. 그리고 찾음이 끝났다.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았다. 내가 진정 누구인지 확연해졌다. 나는관세음보살이었다. 나는 참인식 그 자체였다. 나는 성령 그 자체였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렇게 거짓‘나’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직 진정한 나만 남았다, 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이해는 부처,예수, 노자, 라마나, 니사르가다타, 라메쉬, 웨인, 로버트와 같은 모든 스승에게 일어났던 똑같은 깨달음이라는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다를 수가 있으랴!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찾음이 끝난 뒤에도 명상캠프에 3 일을 더 있어야 했다. 명상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알든모르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삶이라는 유일한 스승은 이 몸-마음을 통해서 늘 찾음을 계속해오고있었다. 이 모두가 삶이 홀로 추는 춤이다.


캠프에서 돌아오는 길은 한결 가벼웠다. 집에 돌아온 뒤 거쳐 왔던 스승들에게 찾음이 끝났음을 보고했다.도움을 받았던 스승에게 찾음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은 제자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다. 스승 한 분 한 분께 깊은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분들의 깊은 연민과 사랑과 노력에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참 많은 스승을 거쳤다. 마지막까지 해방된 자유의 포럼에서 헤매는 나를 이끌었던 안내자 빌(Bill)과사라(Sarah)에게, 끝없는 인내와 섬세함으로 나를 이끌었던 첫 안내자 마띠아스(Matthias)에게, 해방된 자유사이트 설립자인 일로나(Ilona)에게, 아디야샨티의 가르침을 알려준 앨리나(Alina)에게, 안내자 빌과 사라를소개해준 안내자 루시드(Lucid)에게, 가슴이 열릴 때와 첫 깨우침이 일어날 때 꽃봉우리를 틔우게 도와준 스승발라(Bala)에게, 11 년간 온갖 잘못된 편견과 거짓 믿음을 내려놓게 도와준 나의 공식 스승 웨인에게 찾음이끝났음을 알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또 따뜻한 누나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도와주려고애쓰셨던 나탈리(Natalie)와 마치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스승 로버트(Robert)에게 마지막으로 어떻게이해가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드렸다. 찾음이 어떻게 끝났는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스승 로버트울프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맴돈다. “자네에게 그 일이 일어난 건 아마 자네의 진실함 때문일 거네.”진실함 없이 누가 이 강을 건널 수 있으랴? 하지만 스승의 그 한 마디가 참 따뜻하다. 아직도 가슴에 남아맴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보고해야 할 딱 한 스승만이 남았다. 사실 유일한 스승이며 진정한 스승인 삶 그 자체에게보고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할 때다. 찾음의 시작에서부터 거쳐온 과정과 찾음이 끝난 이야기를 글로 적어삶이라는 유일한 스승에게 보고하려 한다. 삶이라는 스승은 힘들게 찾음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가르침을 전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안에 살아 숨 쉬는 그 유일한 스승이 당신을 이끌어 줄 것이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당신 눈앞에 있다. 궁극적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당장 당신에게 일어날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저 멀리, 하늘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바로 여기, 당신 눈앞에있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라. 찾음의 길은 지금까지 쌓여온 거짓자아에 대한, 위대한 영적 스승들에 대한, 진리에 대한, 현실에 대한, 세상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믿음을 씻어내 가는 과정이다. 이 잘못된 믿음들만 사라지면, 늘 있는 진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드러난다.

진리는 당신이 당신에게 보다 더 가까이 당신에게 있다.
- 안내자 마띠아스 -


참으로 간단하다. 진리는 별것 아니다. 궁극적 깨달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난 이도별다를 것 없다. 지금 서양에서는 참으로 많은 사람이 깨어나고 있다. 참으로 많은 깨어난 자연인들이 있다. 이수많은 깨어난 이들이 만남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커뮤니티를 통해서, 명상캠프를 통해서, 찾는 이들이진리에 눈 뜨도록 돕는다. 정말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진리에 눈을 뜨고 있다. 이렇게 많을 줄 나는 상상도 못했다. 이제 당신도 깨어날 때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다음 생이나 미래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당장! 이 글을 읽는 당신, 이제 눈을 뜰 때다.

진리는 당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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