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유?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
우리는 '왜?', 이유가 뭔지 묻습니다. 세상이 왜 존재하는지, 왜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다 죽는지, 왜 저런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 왜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고통받는지, 왜 세상이 이런지, 왜? 우리는 계속 이유를 묻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왜?'라고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진보해나가고 발전해 나갑니다. 하지만, 위에서 물은 물음은 딱히 똑 부러지는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물음을 철학적인 물음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내어놓는 수많은 답이 넘쳐 납니다. 저마다 다들 자신의 답이 최선의 답이라고 말하고 누군가의 답은 마치 진리인 양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받아들여도 늘 거기에는 소수의 답들이 존재합니다. 또, 한때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답도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하고 다른 답으로 대체됩니다. 그럼, 정말 이런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혹시 우리의 물음이 틀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왜?'라고 물을 때, 우리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거나 그런 상태에 대한 절대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왜?'라고 물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생각을 묻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실로 왜 그랬는지, 절대적인 이유를 묻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봅시다, '왜?'라는 물음에 답이 될 까닭에 절대적인 것이 있는지. 우리가 이미 얻은 답들이 상대적인 것인지 아니면, 절대적인 것인지.
쉽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철학적 질문들 말고 쉬운 것부터 살펴봅시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왜?'라는 물음을 묻고 답을 찾은 적이 있을 겁니다. 그중에 절대적인 답이 있었는지 살펴보세요. 잘 살펴보고 난 뒤 생각해보세요. '왜?'에 대한 절대적인 답이 세상 어느 것에서라도 있을까요? 아니면, '왜?'에 대한 답이 어떤 것이 되든지, 그 답은 누군가의 시점에서, 어떤 집단의 제한된 시점에서, 그 순간 보는 상대적인 답에 불과하지는 않을까요? 아무리 많은 사람의 시점이라도 모두가 아니면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지속돼도 영원하지 않으면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누가 강력히 절대적인 것처럼 말하더라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상대적인 답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일 절대적인 답이 없다는 사실을 보면 모든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이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못하면서 물을 까닭이 없는 거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직접 살펴보세요. 아주 쉽습니다. 직접 어떤 것이든, 그것에 대한 이유나 까닭을 설명하는 자신의 답을 살펴보세요. 변하지 않는, 정말로 절대적인 이유나 까닭이 있는지. 이것을 확실히 꿰뚫어 보면 인생을 살면서 가질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자연히 드러납니다. 그러면, 모든 의심이 사라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친구 1: 팔이 네 개면 정말 편할 텐데. 왜 인간은 팔이 두 개뿐일까?
친구 2: 나 참, 팔이 네 개면 이상하자나!
조금 더 깊이 "왜?"라는 의문을 살펴보려면, 다음 글이 도움이 될 겁니다.
"왜?"라고 묻는 당신을 위한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