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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음 May 27. 2023

공(空)


공(空)’은 산스크리트어 “순야타(śūnyatā, शून्यता)”의 뜻을 한자로 옮긴 말이다. 보통은 “텅 비어있음(Emptiness, Voidness)”이라고 해석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공’은 ‘아무것도 없음(Nothing)’이나 진공(Vacuum)이라는 뜻이 아니다. ‘공하다’는 말은 우리가 가진 사물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사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개체다. 우리의 경험상 분명히 맞는 말이다. 이렇게 경험할 수 없으면 인간으로 기능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반야심경은 이런 경험의 내용을 가리키지 않는다. 독립된 개체로 보이는 ‘색’의 실체가 뭐냐는 거다. 독립된 개체로 경험되지만, 그 실체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편의상 “독립된 개체로 경험된다.”라고 설명했지만, 이 경험도 가만히 살펴보면 ‘독립된 개체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라고 믿으며 경험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공’을 어떤 존재로 해석한다. ‘색’의 이름만 ‘공’으로 바꾸어 결국 같은 믿음으로 돌아온다. 개체의 성질만 바뀌었지 여전히 세상이 독립된 개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이다. 사람들에게 이런 믿음은 뿌리가 아주 깊다. 스승이 아니라고 하니 “아하,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고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순간 잠시 믿음이 옅어지다가도 “하지만…”하며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스승의 가리킴을 자신의 믿음에 끼워 맞춘다. 아무리 사리자처럼 이해가 깊어도 찾음이 온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오해하고 믿음에 붙잡혀 있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스승이기에 반야심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마지막에 스승의 가리킴을 쉽게 되새길 수 있는 주문까지 주면서 찾는 이가 자신의 믿음들인 ‘일체고액’을 넘어설 수 있게 돕는다.

어디 정해진 것이 있는가?


여전히 ‘공하다’는 말이 와닿지 않으면 이렇게 뒤집어 물어보라, “어디 정해진 것이 있는가?” 세상 만물 가운데 어디 정해진 것이 있는가? 어디 고정된 것이 있는가? 어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지금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라. 밖으로 나가 길을 걸으며 주위를 살펴보라. 어디 하나 정해진 것이 있는가? 어디 정해진 형태가 있는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세상은 변한다. 당신의 시점에 따라 변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시간에 따라, 빛의 양에 따라 같은 사물이라고 해석하는 그 사물은 다르게 보인다. 시점이 없으면 사물도 없다. 지금 당신이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렇지 않은가?



저 건물이 고정된 직사각형 모양이라는 개념은
오직 우리의 머리 속에 있다.



책 "반야심경의 비밀" 67쪽 '공'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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