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밥맛> 제작기

"밥맛 떨어지게 제목을 왜 그렇게 짓냐"

"우리 쌀 특집 많이 했는데 또 쌀 이야기냐"

"쌀인데 1년 안 찍고 3월 한달간 찍어서 괜찮겠냐"

다른부서 동료들의 지나가는 한 마디.

'그래 나도 걱정이다.'

내부 사정상 급하게 제작에 들어간 특집. 주어진 시간은 2개월. 회사에서는 평균 4~5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한다. 시간이 없으니 2주 안에 자료조사를 하고, 주제를 정한 후 섭외에 들어가 촬영에 나가야 한다. 밥맛이 떨어진다. '쌀과 밥'으로 소재는 정해져 있다. 다행히 쌀에 관해 관심있는 선배 PD가 자료조사 해놓은 두꺼운 종이뭉치를 건네 받았다. 수매제도와 직불제 같은 농업 정책, 쌀 가공과 수출, 기능성 쌀, 쌀과 섞어먹는 혼합곡, 비만의 주범으로 오해받는 흰 쌀밥, 밥문화 등 쌀 이야기는 방대하고 복잡하다. 다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이다. 제작기간이 짧으니 잘못 건드리면 미로에 갇히거나 이야기만 산만해진다.

담당작가와 기획회의를 한다. 일본의 '밥소믈리에'라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밥맛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는 한번도 없던 것 같다.

"밥의 맛에 관해 이야기하면 어때요"

"좋아요. 다른 내용보다 재미는 있을것 같아요. 근데 우리가 왜 밥맛을 주제로 해야 할까요"

기획의도에 관한 질문이다.

"그냥 밥맛의 즐거움이면 안 될까요. 우리가 몰랐던 맛의 세계"

"그래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우리가 명확히 가지고 있어야 전체 프로그램을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이 없으니, 일단 '밥맛'으로 주제와 제목을 정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인터뷰 받을 때마다 계속해서 묻게 됐다.

"밥맛은 왜 중요할까요"

내가 잘 모르면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외국인인데 우리 토종쌀을 직접 농사지으면서 식재료로 사용하는 미슐랭 요리사 조셉리저우드, 예전 인연을 생각해서 흔쾌히 출연을 승낙해 주신 안유성 셰프님,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과 한국의 쌀밥 문화를 재미있게 풀어주신 박찬일 셰프님과 맛칼럼니스트 박상현 선생님, 쌀 편집숍을 운영하시는 쌀큐레이터 김동규 대표님, 고기보다 쌀밥에 진심인 경주 보문갈비 민솔 대표님, 백낙청 선생님의 아드님으로 글 짓고 밥 짓는 백웅재 대표님. 공기밥과 통일벼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해주신 김태호 전북대 교수님 등 인터뷰 하는 모두에게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모두 달랐다. 밥맛이 중요한 이유는 식탁의 완성도, 관능, 사회, 경제, 문화적인 가치들 모든 것이 전문가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달랐다. 신동진, 삼광, 영호진미, 새청무, 해들, 귀도 등 다양한 쌀 품종을 만나며 밥맛의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일본 촬영은 5일간의 일정이었다. 도쿄에서마만 몇 군데 찍으려 했는데 김종우 코디네이터가 쌀 관련한 내용이라면 니가타 현은 다녀와야 한다며 촬영할 곳 섭외를 해주었다. 도쿄의 4월은 벚꽃이 거리를 휩싸고 있었지만, 차로 3시간 걸려 도착한 니가타는 설국이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13km 길이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이 그대로 펼쳐졌다. 밤이라서 산에 쌓인 눈 풍경이 더욱 묘했다. 3시간 전, 도쿄에서 벚꽃을 보고와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니가타에서 일본 최고의 쌀을 생산하는 젊은 농부 '세키'상을 만났다. 그는 좋은 쌀로 지은 밥 그 자체의 맛을 알리기 위해 주먹밥집을 차렸다. 벚꽃과 설산, 40종류가 넘는 쌀을 파는 도쿄 한 복판의 쌀집과 농부의 주먹밥집. 짧은 촬영기간 안에 그림과 내용이 다양해지는 행운이 찾아왔다. 이 행운의 밑바탕에는 짧은 준비기간동안 애써주신 현지 코디네이터의 노력이 들어있다.

밥을 매일 먹지만, 정작 밥맛에는 신경을 안 쓰고 산다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생각하게 됐다. 다큐멘터리를 하나 제작하면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서, 그 세계를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 밥맛을 탐험하는 즐거움. 각각의 밥맛을 풀어쓰고 싶지만, 미각과 필력이 부족해 그 미묘한 차이를 설명해낼 재간이 지금의 내게 없다. 커피와 와인도 종류별로 맛의 미세한 차이를 느끼고 설명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처럼 밥맛의 각각 특징을 잘 풀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하나의 핑계를 대자면, 음식이 제일 맛있는 순간 항상 카메라가 먼저 그 맛을 담아낸다. 음식이 맛있는 따뜻한 온도가 아닐 때 먹고, 촬영하다 보면 맛을 못보는 경우들이 많아, 글로 설명해내기 어렵다. 대신, 그 맛있는 순간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상 링크를 올려놓는다.


https://youtu.be/eSy3-Xr1zeU?si=Gryn6ifRAoID7F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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