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우는 청춘의 선율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경록, 외모 때문에 지하에서 일하는 미정, 출생의 비밀을 안고 백화점 지하에서 일하는 요한.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잘 생긴 경록은 여직원들한테 인기가 많고, 안 예쁜 미정은 외톨이다. 요한은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며 글을 쓴다.
춤추는 남자
경록은 백화점에서 주차 아르바이트를 한다. '공룡'이라는 별명을 지닌 여자를 지하실에서 만난다. 경록은 이유 없이 여자에게 끌린다. 경록은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실패했던 무용학과에 진학에 성공한다. 무용은 중력에 저항하는 하늘을 향한 비상의 몸짓이다. 춤은 예술이지만, 생명의 표현이며, 저항의 몸짓이다. 배우인 경록의 아버지는 총각 행세를 하다 새로운 결혼을 한다. 경록은 숨겨진 자식에서 애초에 없던 자식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존재를 부정당한 경록. 깊은 슬픔을 겪는 그의 마음은 죽음과 같은 상태에 놓여있다. 경록이 춤을 추며 부활의 날갯짓을 하게 만든 이는 미정이다.
빛나는 여자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 다니고, '공룡'이라고 놀림받는 여자. 미정의 겉모습은 아름답지 않지만, 경록에게는 매력적이다. 미정은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마음속에 품으며 살아간다. 이 피아노 곡은 느리면서 위엄 있고 격조 있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클래식 라디오를 즐겨듣는 미정은 경록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존재이다. 예술과 삶의 아름다움을 내면에 지켜온 미정이지만, 대학으로 진학한 경록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경록이 빛나는 청춘을 다시 시작하지만, 미정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다. 경록은 사라진 미정을 찾아낸다. 미정은 경록의 진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 빛의 세계로 나아간다. 경록은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미정은 어두운 공간을 벗어나 빛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글 쓰는 요한
요한은 백화점 직원들의 중심에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재력가인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를 버렸다. 요한은 백화점 지하에 머무른다. 그의 아지트는 손님 드문 호프집 '켄터키'이다. 요한은 켄터키에서 경록과 미정의 사랑을 연결해 준다. 켄터키에서 글을 쓴다. 무뚝뚝한 켄터키의 주인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털어놓는다. 켄터키는 그의 영혼이 부활을 꿈꾸는 공간이다. 불행한 가정사를 겪으며 사랑받지도 못했고, 사랑할 줄도 모르는 요한. 그는 경록과 미정을 만나며 우정을 나눈다. 백화점 지하의 공간에서도 가족들에 의해 쫓겨난 요한은 죽음을 택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요한은 다시 글을 쓴다. 경록과 미정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요한은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죽음과 생명, 빛과 어두움의 경계를 지우는 청춘의 우정과 사랑
경록의 서사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음(죽음)-미정을 만나 얻은 생명-춤을 추는 부활의 몸짓- 죽음'으로 이어진다. 미정은 '지하의 어두움-경록과 만나면서 깜빡거리는 희망의 빛(그녀가 일하는 지하공간의 전구도 깜빡거린다)-세상에서 온전히 살아가는 빛의 존재'라는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요한은 '불행한 가정(어두움)-아버지의 백화점(지하)-아지트 켄터키 호프집-극단적 선택(죽음)-소설로 완성하는 부활'의 궤적을 따라간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죽음과 생명, 빛과 어두움을 넘나들며 서로를 채워주고 이끌어주며 나아간다. 세 사람의 우정과 사랑은 죽음과 생명의 경계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요한은 소설로 그들의 이야기를 묶어내고, 그들의 존재를 영원히이어준다. 원작 소설의 제목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피아노곡인 이 음악은 세 명의 주인공이 죽음에서 생명, 지하에서 빛으로 이어지는 희망의 음악으로 읽힌다.
영화는 꽉 채우지 않고 중간중간 여백이 있다. 말달리는 인디언이 속도가 너무 빨라 영혼이 잘 따라오는지 걱정해 멈춰서 쉰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 영화도 중간 여백이 영혼의 쉼표를 만들어주는 감성과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