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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Aug 08. 2023

제주에도 고속도로가 생기면 좋겠네

휴가철에 태풍을 만난 제주 이주민의 슬픔

   제주도에도 육지로 통하는 고속도로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도 어김없이 휴가철이 되었다. 저마다 여행을 떠나는 시기다. 여름철 휴가지 하면 제주도도 빼놓을 수 없기에, 많은 인파가 제주도에 몰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글과 함께 베짱이로 살아가고 있는 나와 학교 선생님인 아내에게도 방학이 찾아왔다. 육지 사람들은 제주로 들어오지만 우리는 육지로 나가는 것이 휴가 계획이다. 제주도에서 휴가를 즐겨도 되긴 하지만 6월부터 조금씩 찾아오시는 손님들 덕에 제주 관광은 수없이 하기도 했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 골목골목 익숙한 곳에서 며칠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다녀오기로 했다.


   제주도민으로 살다보면 대체로 좋은 점이 더 많지만 여름휴가철에 제주도를 벗어나는 건 때로 좋지만은 않다. (몇 년 살아보니 실제로 ‘찐’ 도민들은 여름에 어디 안 가더라) 제주도를 벗어나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수요가 많은 휴가철에는 비행기 표값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는 시기에는 왕복 5-6만 원에도 다녀올 수 있던 것을 성수기 때는 보통 15만 원 정도를 내고서야 표를 구매할 수 있다. (성수기도 그때그때 다른게 문제다) 2인 가족인 우리는 육지에 한번 다녀오려면 비행기 표값만 30만 원 정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표값을 조금 절약해 보고자 주말 시간대 출도착을 피하고, 조금 여유로운 시간대를 골라 잡아도 큰 차이는 없다. 짐을 들고 다녀야 하니 차를 공항에 주차해 두면 주차요금도 꽤 많이 든다. 


   그래도 사실 이 정도는 육지에서 제주도로 여행 오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니 큰 불만은 없다. 사람이 몰리면 표값이 오르는 것이고, 돈이 좀 아깝긴 해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니 정 돈이 아까우면 안 가면 되는 거니까. 다들 그렇게 휴가 가니까.


   근데 문제는 아무리 돈을 지불해도 비행기가 뜨지 못하면 육지로 갈 수 없다는 데 있다. 비행기가 못 뜬다고 해서 방학 기간이 늘어나거나 휴가기간이 늘어나지는 않기에, 예정대로 출도 하지 못하면 이번 여름에는 육지에 다녀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6호 태풍 카눈이 북상 중이라고 한다. 제주에는 9일부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이미 태풍주의보가 발효중인 상황이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 만날 생각에 들떠있던 나와 아내는 태풍이 우리 휴가 계획에 차질을 가져올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10일 날 오전 출발하는 비행기 편을 예매해 두었는데, 아무래도 그 시간에 태풍을 타고 육지에 도착하는 건 무리일 것 같다. 표를 바꾸려 하니 제일 빠른 표가 9일 오후였다. 추가 비용은 약 25만 원. 게다가 지금 예매한 비행기표를 미리 취소하면 취소 수수료 5만 원까지 물어야 한다. 내일 오후에도 태풍 영향권이라는 뉴스가 많아서 예약변경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방법이 없다. 예매한 날짜에 태풍은 온다고 하고, 앞당기자니 30만 원을 더 들여야 하는데 그것도 불확실하고, 태풍이 지나가면 그때 가자니 언제 표를 다시 예약할지 감이 안 오는 상황이다. 태풍 때문에 여름휴가를 못 갔으니 방학을 좀 더 갖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 이럴 때 제주와 육지를 잇는 해저터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휴가철마다 널뛰기하는 비행기표값을 내는 것보다 조금 비싸도 좋으니 통행료를 내고 육로로 육지에 다녀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풍이 오면 해저터널에도 못 들어가겠지만 지금처럼 애매한 상황에는 얼른 짐 챙겨서 태풍이 오기 전에 육지로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기술적으로 그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기술력이 좋아서 안될 것은 없어 보이긴 하다만, 워낙 긴 거리라 잘 모르겠다. 제주도 인구가 두 배 세배 늘어나면 혹시나 가능할지도. 결항될 예정인 비행기표를 보면서 이런저런 공상을 해본다. 태풍 규모가 크다고 하던데, 어쩌면 지금 휴가를 걱정할 때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고 싶은 건 가고 싶은 거니.


   제주에서 육지로 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보다 남은 대안이 30만 원을 더 쓰고 여전히 불확실한 내일 저녁 비즈니스석을 사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아내는 제주발 항공노선을 하나씩 실시간으로 검색해보고 있다. 심지어 배편도 없어서 육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도 남아있질 않다.




   대구에 살 때는 비교적 기상의 영향을 덜 받았다. 태풍이 오거나 집중호우가 오더라도 ‘비가 온다’ 혹은 ‘비가 많이 온다’ 정도였는데 제주에서 살다 보니 기상 상황에 많은 더 영향을 받게 된다. 한편으로는 요 몇 년 새 심해진 환경 문제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살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인 것 같다. 기술은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방향으로 많이 발전되어 왔지만 인간으로서 환경의 제약을 다 넘기는 어려운 듯도 하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환경과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인간의 도전정신 중 하나이긴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꼭 배워야 할 삶의 지혜이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했던 문장이다. 살아가는데 이 두 가지만 구별할 수 있다면 다른 지혜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왠지 태풍과 함께 제주도에서 휴가를 보내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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