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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Aug 05. 2023

저의 토요일을 소개합니다.

이렇게 살면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토요일 아침이 주는 최대치의 자연스러움을 누리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눈이 뜨일 때 까지 자고 일어났다. 해가 떠있는 걸 보니 7시쯤이나 되었겠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시간도 중요치 않다. 아직 잠에 취해있는 아내를 두고 미끄러지듯 침대를 빠져 나온다. 서재에 가 앉아 노트를 펼치고 써내려 간다. 어제 쓰지 못한 것까지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선지 아니면 책에서 읽은 한 줄, '처음에 드는 생각을 붙잡아라'의 영향 때문인지 술술 써내려 갔다. 간밤에 여행했던 꿈나라의 이야기도 쓰고, 글을 발행하지 못해 답답했던 어제의 감정도 종이 위에 쏟아놓았다.



   실컷 썼는지 고개를 들었다. 피식 웃어 본다. 아무것도 아닌 글쓰기가 이토록 즐거운 일인가.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읽어줄 사람이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 노트가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다니. 오늘도 빽빽하게 써 내려간 내 아침의 기록이 있으므로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었다. 좋은 문학작품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진부한 한 두 문장으로 고리타분한 교훈을 이야기하는 대신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의 모험담을 읽으며 상상에 잠겨 본다. 꿈은 한 번 꾸고 나면 그냥 없어질 수는 없다는 대사가 기억이 난다. 이 꿈은 어디로 갔을까. 꿈을 안고 부푼 마음으로 살았던 지난날도 있었는데, 어느샌가 먹고 사는것만이 꿈이 되어버린 인생의 껍데기만 껴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내가 꾼 꿈은 무엇이었을까. 주인의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인생으로 찾아내지 못한 꿈의 여정은 저기 어딘가 환상의 나라 구석에 버려져 있을 것이다. 내가 잊은 무엇일까. 주인공이 마지막 자신의 이름까지 잊어가며 찾으려 했던 자신의 꿈은 무엇일까. 찾아내야 할 내 꿈이 있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책의 초입에 정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 있다. 정열에 사로잡혀 버린 사람은 정열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고, 정열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정열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인생이란 이렇게 생겨먹었다. 말과 글을 통해 무엇이든 쉽게 배울 수 있는 것 같지만, 때로 정말 값진 것들은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것들이다. 말로 꺼내는 순간 진부한 표현이 되고 만다. 스스로 삶을 더듬어 자신만의 참 이야기, 참 인생을 살아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인생이란 모두에게 적용되는 한 가지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이제서야 어렴풋하게 알아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운에 한참을 잠겨 있었다. 생각을 하려 하지도 않고, 세련된 언어로 주제문을 찾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 속에 푹 빠져 있었다.




   책을 덮고 잠에서 깬 아내와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고 집에 있는 것보다 카페로 피신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긴다. 어제 글 소득이 안 좋았기 때문에 오늘 뭐라도 써야 한다는 비장한 결의로 노트북을 챙겨 넣고, 책 몇 권을 담아 넣는다. 집 근처 도서관에 잠시 들러 책 몇 권을 더 집어 드는 욕심을 부리고 나서야 카페로 향한다. 아스팔트 도로를 달려 도심 속 고요함이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주인 부부로 보이는 직원 두 분과 말티즈 한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음료 두 잔만 시키기에 왠지 미안하여 호두 케이크도 함께 주문하여 자리에 앉았다. 늘 그렇듯 글을 쓰기 전까지는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닐진대 늘 이런 걸 보면 글쓰기는 글쓰기로만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뭘 써야 할지 잘 몰라서 일단 노트북을 켰다. 커다란 통유리 안쪽에 앉아 커피를 몇 모금 홀짝이며 바깥을 응시해 본다. 멀리 바다의 수평선도 보이고, 착륙을 위해 지나가는 비행기도 보인다. 카페 앞뜰에 피어있는 갖가지 식물들과 잠자리 두 쌍, 그리고 나비들도 보인다.



‘이런 곳에 앉아서도 쓸 게 없다고 하면 그건 쓸 게 없는 것이 아니라 게으른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토요일 이른 오후에 시원한 카페 안쪽에서 통유리를 통해 바깥을 볼 수 있다니. 나는 이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사랑한다.




   바깥에는 2-3분 주기로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서 지나간다. 눈 앞에는 돌담이 가지런하게, 한편으로는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담벼락을 따라 한 철 지난 수국이 아직도 피어있고, 그 위로 큰 그늘을 가진 풍성한 나무가 덮여있다. 돌담 중앙의 공간에는 크기도 모양도 다른 돌들이 쌓여있고,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식물이 피어있다. 생태맹 수준의 도시 인간인 나는 수국과 선인장 외에는 이름을 모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 모를 식물들을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한 남자가 되어 바라보며 앉아 있다. 어떤 이름이 저기 식물들에게 어울릴까 생각해 보면서.



   하늘을 나는 잠자리 두어 쌍도 보이고, 보라색 꽃에 앉은 호랑나비도 보인다. 각기 다른 회사 이름이 새겨진 비행기는 부지런히 착륙하고 있다. 스피커에서는 게으른 오후에 어울리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까지 쓰고 귀를 기울여 음악에 잠겨보기도 한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잘’쓴 글들을 보면서 주눅 들기도 한다. 나는 죽어도 그렇게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는게 좋으니 어쩔 수 없다. 쓰다 보면 나도 내 글이 생기겠지. 내 인생으로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이 생기겠지 하며 나를 달래 본다.



   뭘 하든 ‘잘’해야 하는 나는 글을 쓰기는 쉬운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가 참 어렵다. 잘 쓴 글을 내보이고 싶고, 읽어서 별 소득이 없어도 재미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고, 읽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추상적이고도 어려운 요구인 것 같기는 하다. 내 글이 어떠했으면 하는 몇가지 바램들을 마음에 잘 간직하되, 바램들 때문에 글을 못 쓰지는 않게 균형을 잘 잡아야 하리라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잘’쓴 글이라는 것도 없고 절대 평가 기준은 없으니 일단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뭔가 끄집어 내기가 어렵고, 고민이 되더라도 그게 맞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주제도 없고, 정돈도 잘 안 돼있다. 이런 글을 꺼내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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