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리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등을 하나 켜 둔 채,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를 하나씩 만들어 내고 있다. 남자가 사는 도시에는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었고, 이따금 바람이 이중창을 열려고 시도하는 소리가 휘이잉 들려왔다. 남자는 ‘Music for Writing’이라는 키워드로 음악을 찾아 재생시켜 둔 후에, 검은색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중이다. 그의 왼쪽 귀 저 너머에는 세탁실에서 분주히 일하고 있는 세탁기와 건조기 소리가 들려오고, 오른쪽 귀에서는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 타다닥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게 되었다. 유명세를 얻은 작가들의 인터뷰 속에 종종 등장하듯이, “그 이야기를 꼭 써야만 했어요.”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남자에게는 반드시 써야 할 이야기는 없다. 그는 ‘뭔가’를 써야 한다고 느끼기보다, 어째서인지 ‘써야’ 한다고만 아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종종 어떤 내용을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돼서 썼다고 말하는 작가들을 보면서 남자는 생각했다. ‘저런 사람들만이 글을 쓰게 되는 걸까.’ 남자는 이따금 자신에게도 무언가 쓰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가 찾아와 주길 바랐지만, 어쩐지 그런 순간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써 내려갈 뿐이었다. 남자는 쓰는 게 재미있어서 쓰기 시작했다. 남자는 글을 쓰기 때문에 내용이 있는 건지,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에 쓰는 것인지 좀처럼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글이라는 건 참 재미있어서, ‘내용’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고도 써내려 가기만 하면 역설적으로 어떤 내용을 반드시 포함하게 되어있다. 남자는 이런 말들이 어쩌면 말장난일 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이만한 사실도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흔히 누군가가 분류하기 쉽도록 정의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소설가’
‘수필가’
‘시인’
남자는 자신조차도 무슨 글을 쓰는지 몰랐고, 다만 어렴풋이 언젠가는 길고 긴 이야기를 한 편 쓰고 싶다고 여길 뿐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무엇으로도 정의하지 못한 채 한 자루 손에 쥔 펜을 의지해 글을 써내려 갈 뿐이었다. 그에게는 꼭 써야 하는 내용은 없었지만, 그가 쓰는 글은 그의 매일매일에 내용을 더해 주었다. 그의 삶은 시간이라는 잉크로 변해 그가 쥔 펜 끝에서 글자가 되었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그의 인생은 형형색색의 잉크로 종이 위에 내려앉았다.
남자는 글 쓸 시간이 좀 더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좀 더 써보고 싶은데 돈이 안 되면 취미로만 해야 한다는 말이 자꾸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언젠가 ‘글’이라는 분야에 남자의 시간을 충분히 들이고, 그의 글이 적으나마 그에게 밥을 벌어다 줄 수 있게 된다면 그는 한 번 놀라운 변신을 시도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남자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대대로 글을 써 왔던 수많은 이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생각한다. 쓰기 위해 다른 일로 밥을 벌어 와야 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시간이 많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 써 보리라고 남자는 다짐했다.
그는 젊은 여류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유명 작가들의 데뷔 연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그가 아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의 나이보다 훨씬 일찍부터 글 쓰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투신했다. 그는 어쩐지 늦은 게 아닐까, 좀 더 일찍 펜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모든 것은 자기 때가 있는 거라며 또 자신을 다독이며 글을 써내려 간다. 소설가의 에세이집에는 작가가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남자는 에세이와 소설이 매우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도 에세이도, 사람 사는 이야기, 인생의 이야기라는 큰 틀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에세이 내용과 무관한 지점에서, 문득 울컥 글이 너무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교환학생을 떠났던 때를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대학생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지금 글 쓰며 사는 삶을 떠올리는 부분이었다. 남자는 이 대목에서 자신도 문득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싶다.’ 90년대 유행했던 농구 만화 주인공 중 하나가 농구 코트를 떠났다가 다시 ‘농구가 너무 하고 싶다.’며 돌아오는 장면을 떠올렸다.
어째서 남자가 눈시울을 붉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자 그 자신조차도 모른다. 무슨 대단한 글을 쓰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한다든지, 대서사시 같은 걸 쓰려는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사는 동안, 매일 주어지는 시간의 일정량을 짙은 잉크로 바꾸어 글자로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남자는 글을 쓰며 여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가 무엇을 써야 할지는 그가 쓰는 글이 알려줄 것이다. 남자는 생각한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상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인세를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되지 못해도 상관없다.’
남자의 글쓰기는 그에게 있어 그 자체가 목적인, ‘자기 목적적’인 활동이었다. 어떤 결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에게 글쓰기는 시작점이자 종착지였다. 남자는 쓰고 또 쓰면서, 독자도 없고 제목도 없는 글을 계속 이어간다. 남자에겐 그가 쓰게 될 글만이 중요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되지 못해도 괜찮나?’
남자는 쓰는 동안 즐거웠을 테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