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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Aug 15. 2023

글을 쓰는 데 필요한 한가지 조건

누구에게나 있는 그 시간

   글은 어디서나 쓸 수 있다. 대형마트 화장실 앞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일행을 기다리면서 쓸 수도 있고, 이른 새벽 거리로 나왔는데 마땅한 곳이 없을 땐 길에 서서도 쓸 수 있다. 이뿐인가.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쓸 수 있으며, 달리는 차 안에서도 쓸 수 있다. (운전자는 안된다) 우체국에 소포를 부치기 위해 대기하는 중에도 쓸 수 있으며, 아침 산책을 하면서도 쓸 수 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횡단보도 대기 중에도 쓸 수 있다.


   글은 무엇으로도 쓸 수 있다. 볼펜으로 쓸 수도 있고, 만년필로 쓸 수도 있다. 잘 때를 제외하고 손에서 놓지 않는 핸드폰으로 쓸 수도 있으며 카페 한쪽에서 커피를 주문해 놓고 노트북을 꺼내어 쓸 수도 있다. 메모지에 휘갈겨 쓸 수도 있으며 접착식 메모지에 쓸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일은 장소나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제약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자유롭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글쓰기에도 꼭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혼자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에너지를 모을 수는 있지만 결국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장소가 어디건, 어떤 것으로 쓰건 간에 혼자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막역한 친구여도 나를 대신하여 문장을 써줄 수 없으며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찍어줄 수 없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한다. 어디에서 무엇으로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혼자여야 한다. 어떤 요청도 없는 시간,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 그게 어디가 됐든 반드시 혼자여야 한다. 


   혼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




   나는 아침 첫 시간, 새벽마다 혼자가 된다. 대개는 6시 전후의 새벽을 가장 좋아하지만 때로는 4시가 되기도 한다. 여행을 가서도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이다. 인터넷도 전기도 없어도 되는 글쓰기 도구인 만년필과 노트를 이용한다. 핸드폰이나 노트북으로 쓸 수도 있지만 산만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나에겐 핸드폰이나 노트북은 아침 글쓰기 도구로는 너무 재미있다. 나라면 열에 아홉은 밤새 쌓인 알림을 확인하거나 뉴스를 기웃거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일정을 확인하고 그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난다. 2시간 정도를 확보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힘든 경우에는 40분 정도라도 꼭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눈을 떠 노트와 펜을 꺼내 든다. 적당한 데 앉아서 떠오르는 대로 첫 생각을 적는다. 간밤에 꾼 꿈의 내용인 경우도 있고,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무의식이 어렴풋한 형태로 답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다. 아침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글도 아니라 편히 적어 내려간다. 맥락이 없어도 되고 말이 안 맞아도 상관없다. 떠오르는 대로 그저 써내려 갈 뿐이다. 고치기 위해서 다시 읽지도 않는다. 어차피 만년필로 쓴 글이라 고칠 수도 없고, 잘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냥 쓰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한참을 쓰다가 손이 아파오고 머리가 상쾌해지는 때가 있다. 매일 같은 건 아니지만 대체로 40분 전후가 그 지점인 것 같다.


   나는 이 아침 40분에 하루와 인생의 성패가 모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어떤 소음도 요청도 없는 시간, 나와 대면하는 시간을 통해서 나를 발견한다. 글을 통해 나와 대화한다. 감정과 생각의 찌꺼기들을 지면에다 버리기도 하고, 내게 편지를 쓰며 나를 격려하기도 한다. 비워내고 하루를 시작하면 말끔하다. 때로 불안을 느낄 때에도 글을 쓰면서 나를 격려하면 힘이 난다. 게다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뿌듯함과 작은 성취가 하루 전체를 충만하게 채운다. 이런 매일이 반복되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24시간 쉽게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시대다. 항상 연결되어 있다. 언제든 울리는 스냅챗의 알림 소리, 전화, 문자 메시지와 언제든 탐색을 허용하는 다양한 SNS 플랫폼.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 글을 쓰고 읽으며 조용히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없다. 늘 바쁘지만 지나고 나면 공허하고, 쏟아지는 정보에 열정을 불태워 보지만 나의 이유가 아님으로 금방 시들해지고,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구하려 애쓰지만 늘 불안하다. 인간에게는 사회적 연결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필요하다. ‘나’를 잃어버리고 무리 속에 자신을 섞은 듯 살아가는 사람은 늘 불안하다. 무리 속에 희석되어 살아가면서 무리 속에 나는 어디쯤 있나 늘 찾게 된다. 


   글쓰기는 인생과 많이 닮았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위대한 지도자도, 스승도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심지어 내가 믿는 신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신은 인생을 나에게 주실 때에 ‘나’라는 수수께끼를 함께 주셨다. 삶을 통해, 나를 발견하여 살아내고야 마는 것, 내 몫의 인생을 살아 내는 것이 참 인생의 묘미 아닐까.


   아침 시간을 떼내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9개월 정도 되었다. A5 노트 2권 정도 분량이다. 첫 시간, 첫 생각을 써내려 가면서 나는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어떤 불안을 가지고 있는지, 나의 욕구는 무엇인지.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처음으로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글을 쓰게 되면서 인생을 되찾은 기분이다. 흑백이었던 인생이 색깔을 입은 것 같다. 


   어차피 바쁠 거라면 속는 셈 치고 30분만 따로 떼내어 보는 것은 어떨까. 30분만 일찍 자고,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미처 덜 깨어난 나와 마주 해보는 건 어떨까. 별 것 아닌 선택이 평생 영향을 주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대학 전공,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취미생활, 직업, 등. 어쩌다가 한 선택도 이럴진대. 따로 떼 둔 30분이 인생을 어디로 데려가게 될지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 전 세계 역사를 뒤져봐도 지금의 ‘나’는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나’를 30분 글쓰기를 통해 찾아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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