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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14. 2023

낯설게 하기

열두 번째 글: 늘 보던 것도 새롭게...

평생의 화두는 사랑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남자들은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저는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저를 보고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또 사랑을 얘기하거나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굳이 장르로 따진다면 멜로드라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분히 신파적인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고, 얽히고설킨 등장인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온갖 사건들이 즐비한 것도 괜찮습니다.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급한 삼류드라마만 아니면 되니까요. 즉, 평소 알고 지낸 두세 사람의 관계가 알고 보니 부모와 자식의 관계였다든지, 가난하게 자란 인물과 재벌가의 2세 혹은 3세가 서로 뒤바뀐 상태로 성장했다든지, 착한 여자와 같이 사는 재벌가의 덜 떨어진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을 어떻게든 손에 넣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악녀가 등장하는 그 뻔하디 뻔한 알고리즘 속에 갇힌 이야기만 아니면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아무리 사랑을 좋아해도 이런 삼류드라마에 정색하는 이유는 그런 스토리들이 전혀 낯섦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선함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매번 다음의 대사나 행동 패턴이 짐작이 되고도 남는 그런 흔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저 무엇이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세대의 특징이라고만 믿었습니다. 그것도 영 잘못 판단한 건 아니겠지만, 생각보다도 사람들은 복잡한 내용보다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인 듯합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반드시 잊어선 안될 것이 있습니다. 흔해 빠진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낯설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카메라로 다양한 사물을 찍을 때 우리가 그 사진들을 보고 감탄하는 이유는, 매번 보는 하늘과 전원의 풍광과 익숙한 동물들의 모습들이 그 사진 속에서 마치 어제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낯설게 하기' 표현법이고, 이렇게 '낯설게 하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아무리 식상한 구조의 스토리라도 사람들을 빠져들게 합니다.


'낯설게 하기'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전혀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예술기법을 말하는데, 러시아의 문학자이자 형식주의자인 시클로프스키가 창안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뻔한 얘기인 줄 알면서도, 다음의 장면이나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100% 예측하면서도 매번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표현의 기교에 따라, 흔한 것도 이제 막 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그런 삼류드라마조차도 '낯설게 하기'에 성공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창작자의 기교가 관건이라는 얘기겠습니다.


항상 정답은 단순한 데에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책이나 어떤 비책이 있는 건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한 편 써보는 게 일생일대의 숙원과제라고 아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난 왜 그게 안될까,라고 물었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그게 바로 기량차이라고, 그걸 극복하려면 관점을 뒤집어야 한다고 합니다. 문학에 대해선 저보다도 모르고, 책이라고는 읽지 않는 녀석이 한 대답치고는 너무 의미심장했습니다. 반박불가의 명쾌한 답변이지만, 정작 어떤 식으로 관점을 뒤집어야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한 번 더 물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것까지 가르쳐줘야 되냐고......


어떻게 하면 관점을 뒤집을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내내, 평생을 안고 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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