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존재를 노래하다

by 정필

‘있음’을 생각한다. 항상 무언가든, 누군가든 있는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한 번도 ‘있음’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른 아침 수평선 너머 솟는 해를 보면서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구나 조용히 감탄했다.


‘있다’는 건 실제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다만 ‘없다’를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있다’는 것이 당연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뿐이다.


없지 않고 있다. 없었는데 있게 되었다.


크기도 가늠할 수 없는 물질세계 속 하나의 생명으로 있다. 시간을 논하자면 시작도 끝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 언어도 생각도 닿지 못하는 넓음이다. 내가 지금 발 딛고 앉은 작은 테이블,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구름, 그 너머에 위성사진으로만 보던 지구. 빛은 초당 30만 킬로미터를 간다고 한다. 그 빛의 속도로도 다 탐험하지 못하는 우주 공간. 말 그대로 우주. 오늘날의 우주 크기는 약 1조 광년이라고 한다. 이해의 범위를 까마득히 넘어서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 숨쉬고 있다. 존재하여 살아간다는 건 언제든 탄성을 지를만큼 듣고 또 들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없지 않고 있다니’


있어서 참 좋다.


몸을 가진 인간이어서 참 좋다. 습한 바닷바람 들이키며 주저앉고 싶을때쯤 수평선 너머 뜨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사우나에 온 듯 흐르는 땀방울, 까맣게 그을린 팔 다리, 시계를 찼던 곳만 그을리지 않아 훈장이 생긴 내 팔.


집에 오면 나와 같은 존재인 아내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으로 ‘있게’ 된 딸까지.


존재한다는 건 기적이다. 기적같은 일이 아니라 정말 기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도 기적이다. 존재하여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의 연속인 것이다.


있다.

존재한다.

살아 있다.

숨 쉰다.

배 고프다.

덥다.

먹고 마신다.

설렌다. 벅차다. 희망차다.

사랑한다. 아낀다. 고맙다.

놀랍다. 경이롭다.


이 말들은 모두 동의어다.


나는 있음을 놀라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존재보다 좀 덜 놀라운 것에 삶을 다 쓰지는 않으리라. 물론 삶을 살아 가려면 여러가지 자잘한 고통을 만나기도 하고, 성가신 일도 왜 없으랴. 그러나 나는 어떤 경우에도 존재가, 내가 있다는 사실이 그 모든것들보다 더 멋진 일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