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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Aug 25. 2023

왜? 와 '어쩌다가'의 이야기

독후감 비슷한 것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왜 쓰는가’란 테마에 들러붙어 성공을 하는 사람들은 늘 평론가들이고 절대로 소설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설가의 각오>를 읽다가 만난 문장이다.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굳이 두 부류로 나눠 본다면 소설가와 평론가, 창작자와 편집자, 그리고 ‘나’와 검열관으로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왜’가 중요한 사람과, 그냥 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직업이나 일에도 이를 확대 적용시켜 생각해 본다면, ‘왜 어떤 일을 하는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고, 정작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무엇’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전에 그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밥을 먹어야 할 이유 같은 건 모르지만 먹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먹었다는 사실, 좀 더 나아간다면 무엇을 먹었느냐는 사실이지 밥을 왜 먹느냐 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인 것이다. (만일 그 이후에도 고민하거나 대답할 가치가 있다면 말이다) 이유를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도 많지만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쓰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난다. “그놈의 ‘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답니까?”  


   어쩐지 나는 ‘왜’ 이전의 것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를 명확히 댈 수 있기 전에 내가 하는 일, 그게 나의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 것인가. 삶도 ‘왜’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다. 왜 사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채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왜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이다. 생은 어느 날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왔고 죽는 날 또한 그러할 것이다. 시작과 끝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 또는 나는 여태껏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 말이다. 말 나온 김에 내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삶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삶은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나 이루어진 관계에 대하여 ‘왜’를 명확하게 댈 수 있는가? 나의 부모가 왜 나의 부모인지, 나는 어째서 태어났는지, 나와 배우자는 어째서 만나게 된 건지.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으며, 어떻게 해서 ‘나’라는 인간이 된 것인지. 이런 일들에 대해서 대답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가. 왜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살아간다. 내 부모가 왜 나의 부모냐고, 나를 낳았으니까. 인생에 정말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있어 보이는 여러 줄글이 아니라 이런 정도의 대답밖에 하지 못한다.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다. 어쩌면 구구절절 이유를 멋지게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야 말로 인생에 별다른 가치가 없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대체로 그럴싸한 이유로 포장된 내용물이 별 볼일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해보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삶이란 ‘어쩌다가’의 연속이 아닌가. ‘왜’를 찾아 헤매는 일이 사실은 ‘왜’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여정은 아닌지 싶다. 


   ‘왜’가 없어서 직장을 나왔다.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외에 직장은 아무런 이유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아서 부지런히 찾았다. 삶의 이유, 그리고 일의 이유까지 찾아보려 애썼다. 석 달 남짓, ‘왜’를 찾아다니긴 했지만 뾰족한 대답은 얻지 못했다. 지난 삶을 뒤적여 글을 쓰는 즐거움을 하나 찾아냈을 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정작 새로 찾아낸 즐거움에 대하여서도 ‘왜’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왜’ 이전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꽃은 왜 꽃이냐, 나무는 왜 나무냐 왜 하늘은 푸르냐 이런 질문엔 이유가 필요 없다. 꽃이 왜 꽃인지 설명하려는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과연 대답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꽃은 그 자체로 자신이 꽃임을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나무와 하늘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구태여 인간의 언어로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해바라기가 노란색인 것은 이유가 있기 이전에 해바라기 본연의 것이며, 모든 자연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 이전에 존재 자체로 ‘왜’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인간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동식물은 다른 것이 되려 하지 않는다. 될 수도 없다. 인간만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인간만이 이상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렇게 되고자 애쓴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는 체념의 목소리가 아니다. 내게 심긴 씨앗이 무엇인지 알고 그 씨앗을 싹 틔우고 열매 맺게 하자는 뜻이다. 안 맞는 옷을 입고, 이유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약한 인간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씨앗을 품고 자기의 속도로 자라나는 인간이 되자는 뜻이다. 


   삶의 이유도, 죽음의 이유도 말하기 어렵다. 생이 시작되는 그때에도, 죽음을 맞이하는 그때에도, 삶의 이유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몫은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게 온 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찾는 일은 그냥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자기만이 열 수 있는 문을 열고 깊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가, 이 질문을 끌어안고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이 생의 단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나는 나처럼 살고 싶다. 누가 봐도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인 것처럼, 누가 봐도 나는 나인 것처럼 살고 싶다. 


   어떻게 사는 게 '나'인지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누군가가 되려 애쓰지 않고 나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살다 보면 먼발치서 바라본 나는 누가 봐도 '나'가 아닐까. 남이 아닌 나로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을 글로 쓰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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