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습니다.

‘나’를 찾아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by 정필

회사를 그만두었다. 직장을 찾아 바다 건너 낯선 땅에 온 지 4년이 되지 않은 시기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4년 차 직장인이 되면서 사내에서도 인정받았고, 사우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연차에 비해 다양한 직무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고, 업무 관련 자격증도 몇 가지 갖출 수 있었다. 급여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큰 욕심 내지 않으면 생활을 걱정해야 할 수준은 아니었다. 오래 교제했던 여자친구와 결혼도 했다. 하던 대로 회사 생활을 했다면,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삶, 혹은 꽤 무난한 삶으로 그려졌을 삶이었다.


외적인 환경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과, 경제적 책임을 생각하면 그만두지 말아야 할 이유도 있었다. 회사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에 내 힘이 충분하다고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급여 없이 몇 날 며칠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꽤 계산적인 사람이고, 머리로 생각하기에 회사를 나가야만 할 이유가 없어 보였음에도 결국 회사를 등진 채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당장 급여가 없으면 불안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회사 밖에서는 내가 가진 능력이 당장 돈을 만들어낼 수 없으리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잘 살고 싶었다. 큰 조직의 일원이 되어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거기서 수입을 얻어 가족을 건사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삶도 나쁘지 않은 삶이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오랜 기간 퇴사를 고민했던 이유는 근무 환경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끓는 마음 때문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는 내 삶이 소중했다. 한 번뿐인 인생, 어찌 돼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는 살 수가 없었다. 소소함도 좋은 가치이긴 하지만 평생 소소하게 살고 싶지만은 않았다. 어째서 ‘나’라는 인생이 내게 와 있는지, 이유를 찾아야 했다. 흘러가는 대로, 남들이 다 가는 길로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내 길을 찾고 싶었다. 내가 아니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도 없이 많은 인생 중의 하나로 살고 싶지 않았다. 무색무취의 물처럼 섞여 버리면 티가 안나는 인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피처럼 진하게 살고 싶었다.


‘나’가 아니라 ‘남’이 되어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누구라도 나처럼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사회는 보이지 않는 표준을 하나 가지고 있다. 나이대 별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스무 살쯤에는 대학에 입학해야 하고, 또 언제쯤에는 군대도 다녀와야 하고, 그 이후에는 직장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살아간다. 정착이 되면 좋은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늘려 가면서 살아간다. 인생이 무엇이냐, 왜 살아야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과연 ‘소확행’이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는가 고민했다. 왜 남처럼 사는 것이 내 인생의 표준이 되어야 하는지 끝 간데없는 갈증이 있었다. 나는 나로 살아왔는가? 자문해 보게 되었다.


자연에 핀 수많은 꽃들을 본다. 같은 종류의 꽃이라도 완벽히 같지 않다. 그리고 자연의 각 생물들은 다른 것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이름 모르는 들풀도, 곤충들도, 동물도, 자연에 있는 것들은 모두 저마다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할 뿐이다. 어째서 인간만이 타인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 마치 팔기 위해 대량 생산해 놓은 상품처럼 모두 같은 용도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유년 시절을 떠올려 본다. 아이들은 마음이 가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쏟는다. 어떤 아이는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밤낮으로 곤충을 채집하러 다니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짓는 데에 재미를 붙이는 아이도 있으며, 수십 종도 넘는 공룡의 이름을 다 외울 만큼 공룡을 사랑하는 아이도 있다. 모든 아이는 한 번쯤 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삶은 단순해진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입시에 뛰어들게 되고, 그때부터는 내게 자연스러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나는 글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몇 살쯤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어릴 때 엄마 품에 안겨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의 간판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원고지에 삐뚤빼뚤 글을 쓰는 걸 좋아했고, 가끔은 상도 받았다. 국어 공부를 좋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는 점차 뭉툭한 몽당연필처럼 변해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입시에 성공해야 했기 때문에, 잘하고 좋아하는 공부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입시는 평균 점수가 높아야 했기에, 못하는 과목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 모험을 떠날 용기는 없었으므로, 입시라는 좁은 틀 내에서 좋은 자리를 갖고자 노력했다. 꽤나 열심히 한 탓에, 나의 뾰족함은 점차 뭉툭하게 변했고, 국어 공부를 좋아했던 아이는 적당한 평균 점수를 가진 학생이 되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수능 시험을 치렀다. 나의 학창 시절은 나만의 형태를 깎아 ‘모범’이나 ‘평균’이라는 이름의 틀 속에 나를 집어넣는 과정이었다. 평균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했고, 별 뾰족한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학과로 진로를 선택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는 줄 지어 있는 수백 개의 채용공고에 맞게 나를 포장해서 지원서를 냈다. 그중 어디선가 나를 불러주었고, 나는 마침내 직장인이 될 수 있었다.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아주 안 맞지도 않았고, 아주 잘 맞지도 않았지만 그럭저럭 다녔다. 특출 난 데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빠지는 데도 없었기 때문에 학생시절의 모범생은 어른이 되어서도 말 잘 듣는 모범인간이 되었다. 평균을 맞추는 데는 이골이 났던 나기에, 뾰족하게 튈 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별 모양 틀에서는 별 모양처럼, 네모 틀에서는 네모처럼 살았다. 마치 마라톤 하듯 인생이라는 트랙을 달렸다. 어디가 끝인지, 쳇바퀴 돌듯 트랙을 도는 것이 하나뿐인 인생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 묻지 않은 채로 무작정 달렸다.


별로 나쁠 것 없는 삶이었다. 어쩌다가 인생 마라톤이라는 경기에 참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괜찮은 성적으로 달리고 있었고, 언제 끝나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터였으므로 이대로 살아도 됐을 테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은 계속 내 마음을 건드렸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좋은 삶인가.’, ‘내가 아닌 누구라도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이 수시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 인생의 끝에서 내 삶을 바라본다면, 참 좋은 인생이었노라 즐겁게 회상할 수 있을 것인가 자문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이 좋은지 자문했다. 최대한 좋은 면만 보고 ‘YES’라고 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뿐인데, 게다가 이렇게 좋은 인생을 받았는데, 적당히 이렇게 사는데서 그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꼭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느냐고 생각하며 회피해 보려고도 했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퇴근하고 나서부터 내 인생을 살면 되는 것 아니냐며 퇴사 같은 소리는 저 쪽 구석으로 밀어 두고 남들처럼 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눈 떠서 제일 에너지가 넘치는 시간을 모두 일을 하면서 보내는데, 꼭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한다면, 대체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싶었다. 워라밸을 강조하고, 퇴근 후에 제아무리 근사한 취미를 즐긴다고 해도,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백 번 양보해도 반쪽짜리 인생 이상은 될 수 없을 것이었다.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아까워서 안될 것 같았다. 회사에 몸 담고 있으니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느긋함으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나’로 살고 싶다. 남이 정해준 표준의 길이 아니라 내 길을 가보고 싶었다. 어항 속의 물고기가 아니라 대양을 가로지르고 싶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트랙을 달리기보다 길도 나 있지 않은 길을 한 번 걸어보고 싶었다. 워라밸을 따지는 깍쟁이 직장인 말고 프로 선수처럼 살고 싶었다. 내 일에 미쳐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직장인, 월급날을 기다리는 직장인 말고, 삶을 마중 나가고 싶었다. 내게 심긴 씨앗이 뭔지 찾아내서 그 삶을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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