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만 하면 다 잘 될 줄 알았지
갈증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답게 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회사 문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 두 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회사와 10분 거리에 있는 커피숍에 들러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어디서 이 갈증이 비롯되었는지 근원을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글을 써 온 적도 없고, 나와 대화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었다. 딱히 쓸 말도 없었고, 답 없는 고민을 계속 반복해서 쓸 수도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에야 말로 나를 찾아온 질문에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대체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지난날 모범생처럼 살아오긴 했지만 이와 비슷한 질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수능을 끝마친 직후였다. 수능을 기점으로 입시를 인생의 목표로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다들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나도 열심히 공부했다. 왜 가야 하는지 몰랐지만 최대한 좋은 평균 점수로 간판이 제일 멋진 대학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달려오다가 수능이 끝나고 나니 의문이 찾아왔다. ‘삶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수능이 끝났는데 이제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부모님께도 여쭤보았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태어났으니 살아가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가정을 이뤄서 하루하루 살면 좋은 삶이라는 모호한 대답을 해 주셨다. 그것뿐이라면 삶이 좀 허무하다든가 밋밋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갓 성인이 된 스무 살이었고, 오래도록 질문과 씨름해야 하는 문제에 천착하기에 인내심이 충분치 않았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만화 영화처럼, 삶은 빠르게 장면을 바꿔가며 내 눈앞에 새로운 세상을 펼쳐놓았다. 삶을 고민하던 대학생은 고민의 끈을 놓았고 그 결과로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되었다. 적당한 학과를 골라서 공부했고, 졸업했다. 성적은 그냥 그랬다. 대부분 나처럼 살았지만 누군가는 학과 공부가 좋아서 왔을 테고, 그들은 시키지 않아도 공부가 즐거워 미쳐 버릴 지경이었으므로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나로서는 늘 그저 그런 성적을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일에 흥미가 있는지,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때를 놓쳐버린 고민은 다음 때를 만날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을 돌아오게 했다. 사회로 나갈 때 적성에 대해 잠시 고민하기도 했으나, 기업 가치에 내 삶을 맞추는 식으로 또 한 번 질문을 회피했다. 각 기업에 맞게 나를 포장한 자기소개서를 써서, 어디든 나를 고용해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기업 문을 두드렸다. 어디든 고용해주기만 한다면 좋을 것 같았고, 실제로 제주도에 고용되었을 때에도 먼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취업을 함으로써 삶에 필요한 것은 다 갖춘 것 같았다. 내 인생을 이야기로 쓴다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입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적당한 간판을 가진 대학에도 들어갔고, 특출나진 않았지만 남들처럼 공부해서 졸업해 직장까지 얻었으니 이제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이야기를 끝내도 될 것이었다. 실제로 수능 시험 직후에 부모님이 해준 이야기도 거기서 끝이었다. 혹시라도 뭔가가 조금 더 남았다면 아이를 낳아 잘 기른다는 것 정도였다. 취업만 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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