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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ul 27. 2023

마음에 공백 가지고 살기


   카페에서 음료를 쏟았다.


   벤티 사이즈의 차가운 음료를 몇 모금 마시던 아내는, 결심이 섰는지 노트북과 책을 동시에 펼친다. 의욕적인 손동작으로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말차 라테의 '말차'라는 단어가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궁금하다며 스마트폰을 꺼내 찾기 시작한다. 아마 출입문에 붙은 말차로 만든 음료 광고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나 보다. 찾은 내용을 내게 읽어주더니 이내 잠잠하다.


   들여다 보니 뉴스 탭으로 넘어갔다. 잠시 뉴스를 보는가 싶더니 원래 하려던 것이 생각났나 보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벤티 사이즈의 그 음료, 두 모금 정도 마신 것 같은 그 음료를 엎지르고 만다. 컵을 일으켜 세우고 상황 파악을 한다. 바닥은 이미 흥건하고, 다행히 노트북과 핸드폰에는 타격이 없다.


   휴지로 이걸 다 닦는 건 큰 낭비이니 죄송한 마음을 한가득 품고 점원에게 행주를 요청하러 간다.(물론 이건 내 몫이다.) 미안한 목소리로 음료를 엎질렀으니 행주를 주시면 닦겠노라 말했다. 점원은 음료를 엎지르는 손님이 익숙한 듯, 닦아주겠다며 자리에 가 있으라고 한다. 매일 만난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딱히 달갑기만 하겠는가. 것도 아니면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잠깐 힘든 기색이 보였다. 너무 미안했다.


   직원이 대걸레를 들고 와서는 혹시 뭘 쏟았냐고 하길래 유스베리 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커피나 크림류가 들어간 찐득한 음료를 쏟지 않은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직원이 바닥과 테이블을 닦는 동안 나와 아내는 자리를 치우고,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직원의 친절이 당연한 것이 되지 않도록, 고맙다는 말도 꼭 전했다. 5분이나 지났을까. 직원이 아까 우리가 쏟은 음료를 다시 만들어서 갖다주었다. 얼마 못 드셨을 텐데, 같은 사이즈는 아니지만 이거라도 더 드시라며 가져다주었다.


   예상 범위를 벗어나는 서비스였다. 요청한 내용을 잘 해주면 '만족'이라고 하던데, 기대할 수 없는 부분까지 신경 써 주어서 '감동'했다. 작게나마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앱을 열어 감사 글을 남겼다. 시간을 내서 성의를 보여준 직원에게 조금이라도 뿌듯함을 선물하고 싶었다.


   음료를 안 쏟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도움을 받고, 감사를 표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보다 뭔가 요청하고 받는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완벽한 건 멋지긴 하지만 매력은 없다.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면서 타인과 관계하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도움을 받았을 때 적절하게 감사를 표할 수 있고, 타인에게 내어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면 참 좋은 인생이라고 결론지어 본다. 마음 한편에 서로에게 내어줄 여백 하나쯤 갖고 살아간다면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넉넉한 마음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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