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셉 Jul 29. 2023

나는 글을 써야 한다

   별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잘 안 써졌다. 뭘 써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답답함에 화가 날 정도였다. 글감은 안 떠오르는데 쓰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기를 며칠을 보냈다. 도무지 안 써지길래 그냥 쓰지 말아야지 했다. 오늘은 일기도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일어나서 글을 안 쓰니 허전했다.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여느 때와 같이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써 내려갔다.

   그럼에도 오늘은 다른 글은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일종의 반항이었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쓰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에게 엄포를 놓았다. “오냐, 누가 이기나 해보자. 오늘은 절대 쓰지 않을 테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으면 했나 보다. 읽다 보면 떠오르겠지 싶어 도서관을 찾았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가, ‘나’에 대해서 묻는 자기 계발서를 몇 권 집어 들었다가 도로 꽂아 놓았다. 한참을 책장 사이에서 책을 고르다가, 어렵사리 두 권을 뽑아 나왔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두 권이다. 책을 빌리며 픽 웃음이 난다.


그래도 글이 쓰고 싶었나 보다.


   직장을 그만둔 지 한 달 되었다. (정확히는 한 달 하고도 4일 되었다) 한 달은 짧은 시간임에도 나는 당장 성과가 없어 불안했다. 쓰고 싶었던 책도 쓰지 못했고, 어디에 인생을 바쳐야 할지 아직 결정도 못했다. 누구도 나를 떠밀지 않음에도 빨리 뭐라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서성이는 내 모습을 본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본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결국 나의 내면을 비추고 있었다.


   글쓰기가 참 좋다. 뭐, 누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누가 네 글을 누가 돈 주고 사겠느냐 라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냥 좋을 뿐. 돈 주고 안사면 어떤가. (외치고 싶다. 그냥 좀 좋아하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가 결국 골라온 책은 글쓰기 책이었고, 방황하고 불안해 하는 내가 또 하고 있는 것은 글쓰기다. 글을 쓰면서 내게 말을 걸어 본다. “불안했구나,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구나.”


   한편으로는 글쓰기가 정말 좋은 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글쓰기가 좋으면 여기 뛰어들어야 하는데, 내심 두려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독자가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쓸 수 있을 지. 그전에 뭔가 써낼 수나 있을지. 밥은 먹고 살수 있을지. 고상한 척 했지만 인정하기 싫은 두려움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평소에는 꽁꽁 숨어서 찾아도 잘 드러나지 않는 동기인데, 글을 쓰다 보니까 쉬이 보인다.


   아직도 내가 누군지, 무엇에 인생을 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 길이라는 게 일순간에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원석을 공들여 다듬는 사람처럼, 일생에 걸쳐 자기가 가진 것을 잘 다듬어 보석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 같다. 뭘 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직장을 잘 나왔다는 것과 평생 글을 쓰게 될 거라는 것 정도 뿐이다.


   이쯤되니 이만하면 한 달의 성과 치고는 나쁘지 않은것 같다. 평생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았는데,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적어도 한 가지는 알아냈으니 말이다. “쓸 때 즐겁다.” 이뿐이다. 나를 윽박지르고 싶지 않다. 당장 여기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느니, 평생 이걸로만 먹고 살아야 한다느니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나를 알아냈다. 삶이 행복한 것은 행복한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적어도 내가 행복해하는 일을 찾았으니,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더 갖춘 셈이다. ‘작가’가 아니라도 좋다. 앞으로 나는 ‘글 쓰는 사람’이며, ‘글 읽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로 시작하여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이상한 글이 되었다. 그래도 써서 좋다. 행복하다.


   최근 읽은 달과 6펜스에 나오는 한 남자가 생각났다. 증권 중개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처자식도 다 버리고 떠나 골방에 갇혀 그림을 그린다. 도대체 왜이러냐는 물음에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달과 6펜스 중_ 찰스 스트릭랜드의 말.


   이정도로 미친건 아니라 아쉽기도 하지만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오늘은 쓸 수 있어서 좋은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에 공백 가지고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