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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Sep 06. 2023

낮잠을 자다가, 죽었다.

죽음을 생각하다

죽었다. 아무래도 내가 죽은 것 같다. 어째서인지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잠을 자는 듯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다. 평생 거울이나 렌즈에 비친 내 모습만 봐 왔는데, 나를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만 하다. 내 얼굴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도 없고, 부풀어 오르는 가슴도 없다. 대자로 누운 채로,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 어찌 된 일인지 기이한 이 장면을 통해서 나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갑작스럽다. 후회나 회한이 바로 밀려올 줄 알았는데, 죽고 보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잠깐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죽어버렸다. 원래대로라면 전화벨 소리에 깨거나 충분히 잔 후에 눈을 떴어야 하는데, 눈을 뜨고 보니 내 모습이 내려다 보이는 일이 일어났다. 진짜 죽은 거야? 이런 황당한 죽음이 내 마지막일 줄이야.


‘이것 참 큰일이군.’ 아직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밥그릇도 제대로 치우지 못했다. 라면에 찬밥을 대충 말아먹고는 식탁에 그대로 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물에라도 담가 놓을 걸. 이래서야 영락없이 불쌍한 고독사 현장 아닌가. 나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누가 이렇게 갑자기 죽을 줄 알았나. 다음 달엔 상여금 나오는 달인데, 그거 받아서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핸드폰도 바꾸려고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미리미리 바꿀걸. 회사 못 간다고도 말 못 했는데, 갑자기 출근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원룸 계약도 아직 남았는데, 방세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의 죽음을 볼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던 것들이 떠오른다. 죽음 앞에 서면 거창한 것들이 먼저 나를 스쳐 지나갈 것 같았는데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떠오르는 것들은 죄다 이런 것들 뿐이다. 진짜 나도 내가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유서 비슷한 거라도 써 놓을 걸. 그래도 회사라도 다니고 있어서 다행이다. 출근 안 하면 누가 한 명은 나를 찾아 주겠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다. 나는 죽었고 모든 것이 끝났다. 여전히 시계는 돌고 있지만 내 목숨은 끝났다. 열심히 모아 두었던 돈도 은행 빚을 빼고 나면 몇 푼이나 남을지 모르겠다. 아니지, 이제 돈이 무슨 소용이람. 내일 아침이 되면 출근하지 않는 나를 누군가 찾아 주겠지. 출근 시간쯤 되면 지각인 줄 생각한 옆자리 재용 씨가 전화를 걸어 주겠지. 그냥 늦잠을 자는가 보다 생각할지도 몰라. 오후까지 출근도 안 하고 연락이 안 되면 그때쯤 되어서야 내 주소를 알아내려고 하겠지. 그래도 재용 씨와는 가까운 사이였으니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집을 찾아 줄 것이다. 문은 잠겨 있겠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문을 따고 들어와 줄 것이다. 그러면 먹다 남은 라면 그릇이 널브러져 있고, 남자 혼자 사는 집 냄새가 물씬 나는 내 방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하겠지. 아마 조금 놀랄 텐데, 그나마 겨울이라 하루 만에 시체가 썩진 않을 테니 괜찮을 거야. 가족들을 부르겠지. 


아니지, 지금 이런 거나 생각할 땐가. 내가 죽었는데 말이야. 혼란스럽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일상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한 줌 모래처럼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죽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살아온 날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째서인지 기억이 없던 어린 시절의 나까지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나를 낳고 기뻐하는 부모님 모습, 오순도순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던 모습, 새해가 되면 매번 가족끼리 해돋이 보러 갔던 바닷가 풍경, 어렵게 어렵게 취직해서 가족들과 같이 기뻐하고 근사한 밥을 먹었던 모습이 느린 장면으로 주르륵 스친다. 이제 정말 끝났다. 출근해서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고, 좀 덜 갚은 학자금 대출이 남았지만 이제 상관없고, 몰래 당겨 쓴 은행 빚 500만 원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어찌어찌 해결되겠지. 죽었는데 뭐 어쩌겠어.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좀 더 거침없이 살아 볼 걸, 너무 조심스럽게만 살아온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으니까.


죽는 게 좀 어이없이 덜컥 찾아와서 어리둥절하다. 내 입장에선 태어날 때도 그랬겠지. 즐거웠다 그래도. 살 수 있어서 좋았다. 시간이 별로 없나 보다. 무지 졸린 것처럼 의식이 툭툭 끊긴다. 죽긴 했는데, 뭐가 더 남았나. 몰라. 가보면 알겠지. 계속 그랬잖아. 살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잖아. 뭘 챙겨야 되나? 어디 보자, 가져갈 만한 게...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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