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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Aug 31. 2023

적당주의자의 고백

너무 적당하게 살아왔다.

적당히 해선 안 되는 것들을 적당히 하며 살아왔다.


적당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의 두 번째 의미로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게’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딱 맞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하다 정도의 의미로 볼 수 있다. 


학창 시절, 좋아하던 과목 공부를 ‘적당히’ 하지 말고 ‘미친 듯이’ 했다면 어땠을까. 대학에 갈 때, ‘돈 잘 버는 학과’, 나 ‘간판 좋은 대학, 인기 있는 학과’ 같은 것에 귀 기울여서 ‘적당히’ 진학하지 않고 ‘그래도’ 내가 배우고 싶은 학과로 갔으면 어땠을까.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 ‘적당히’ 원서 넣어서 취업하지 말고, ‘인생을 걸 만한 일이 있는지’ 더 찾고 찾아보았으면 어땠을까.


비행기 티켓을 살 때, ‘적당히’ 샀으면 어땠을까. 핸드폰을 한번 바꿀 때,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숙고하지 않고 ‘적당히’ 바꾸면 어땠을까.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아침에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할 때, 좀 적당히 했으면 어땠을까.


뒤집어졌다. 적당히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적당히 하며 살아왔다. ‘적당히’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앞에 붙이면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남들처럼’이다. 이 두 단어가 만나, 절대 있으면 안 되는 문장의 앞에 위치하고 말았다. ‘남들처럼 적당히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업해서 살았다.’ 정작 적당히 했어야 하는 것들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적당히 하지 못했다. 물건 좀 사고, 식사 메뉴 고르는 것 정도야 적당히 좀 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인생은 어렵다고 했는데, 인생을 너무 쉽게 살아온 것만 같았다. 어려운 문제들을 모두 적당히 넘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배우고, 어디에 인생을 한 번 걸어볼 것인가, 어디에서 일할 것인가 같은 질문에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니 인생이 쉬울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문제는 다 남의 손에 맡겨 두고, 쉬운 문제만 갖고 살아왔다. 내 삶을 병에 담긴 액체로 비유해 본다면, 무색무취의 물과 같은 인생이 아니었을까. 


입버릇처럼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생이 100번쯤 된다면,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인생 한 번쯤이야 적당히 살아도 될 것이다. 한 번쯤은 남들 가는 대로 우루루 가보기도 하고, 유행 따라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복되는 인생은 없다. 2회 차도 없으며, 심지어 1회 차인 지금 인생 안에서도 반복되는 일은 없다. 누구나 선택해야 한다. 한 번 사는 인생, 남들처럼 적당히 살 것인지, 아니면 한 번쯤 최선을 다해서 피처럼 진하게 살아 보든지. 


이제는 적당히 살지 않으리.

그리고 이제는 좀 적당히 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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