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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Sep 15. 2023

어쩌다가 쓰게 된 글쓰기에서 얻은 것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년필을 사고 싶었던 건지, 글을 쓰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것도 아니면 제3의 사춘기를 겪으며 마음속의 말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이거다라고 할만한 게 없다. 그래서 그냥 ‘어쩌다가’라고 한다. 


어쩌다가 만년필을 한 자루 받았다. 아내 옆구리를 찔러서 받아냈다. 뚜껑에 각인까지 해서 내 펜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불편했다. 글씨를 예쁘게 써볼까도 했는데 끈기도 없고 악필인 나는 며칠 써보다가 이내 내가 좋을 대로 생각을 바꿨다. 글씨 예쁜 것보다 좋은 내용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마치 여우가 높이 달린 포도를 못 먹으니까, “저건 틀림없이 신 포도일 거야.” 하는 정신승리였다. 아무튼 그래서 글씨를 예쁘게 쓰는 캘리그래피라든가, 펜글씨는 접었다. 펜촉도 제일 얇은 것으로 구매했으나, 볼펜보다는 훨씬 굵었다. 펜 각도에 따라 굵어지기도 얇아지기도 해서 쓰기가 어려웠다. 그뿐 아니라 일반 용지에는 잉크가 번져서 거미줄처럼 퍼지기 일쑤였다. 직장에서 펜 자랑도 하면서 ‘있어 보이게’ 일하고 싶었는데 이래가지곤 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얻은 만년필인데,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만년필을 쓰고 싶어서 번지지 않는 노트도 사고, 잉크도 세 종류 골라서 주문했다. 글씨는 예쁘게 못쓰지만, 돈이 아까워서라도 이 펜을 활용해야겠다 싶었다. 


전용 노트도 오고, 잉크도 갖추고 나니 뭔가 쓰긴 해야 했다. 


쓰기 위해서 자리에 앉은 것이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시작했다. 만년필을 가지고 노는 정도였다. 시를 옮겨 적기도 하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적어보기도 했다. ('나는 오늘'로 시작되는 어린아이의 일기와 비슷했다.) 중요한 것은 쓰기 위해 시간을 내게 됐다는 사실이다. 종이는 대답하지 않지만,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있던 말들을 하나씩 꺼내며 잠들어 있던 또 다른 나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쓰는 일이 즐거워졌고, 더 꾸준히 쓰고 싶어서 최적의 시간을 찾았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이른 아침, 제일 안전한 아침 시간을 골랐다. 게다가 아침에 눈 뜨고 처음 40분간은 마음속 검열관이 제일 힘이 약할 때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내 마음과 가장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아침마다 부지런히 썼다. 몇 달간은 쓰기만 썼다. 다시 읽어보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보니 힘이 생겼다. 내 안에 글을 쓰던 나는 어린아이였는데, 이제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어렴풋이 글 쓰는 재미를 맛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무렵에, 인터넷에 글을 써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이어졌다. 만년필 한 자루로부터 전용 노트로, 그리고 인터넷으로, 그리고 브런치 플랫폼까지 이어졌다. 


내 글은 새로운 관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성이 있는 글도 아니다. 때로는 해결책도 없으면서 질문만 하다가 끝나는 글도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생겼다. 내게 말을 건네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 이외의 누군가가 한 땀 한 땀 글을 읽어 준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때로는 나조차도 읽어내지 못한 행간의 의미를 읽어 주시는 분도 계셨고, 내 글이 독자의 삶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함께 글을 쓸 수 있는 분을 만나기도 했고, 내 글을 기다려 주시는 분도 생겼다. 오늘은 내 글을 읽고 글을 써 보아야겠다고 하는 분도 만날 수 있었다.


아,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도 되는 걸까. 글을 쓰면서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했는데, 나를 꺼내고 나와 대화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는데, 읽어주시는 독자를 통해서 또 이만큼 받아도 되는 걸까. 내 별것 아닌 일상에, 고민에 관심을 갖고 공감해 주시는 분이 계셔서 기뻤다. 유익함은 못 드려도 어떤 분에겐 즐거움을 드릴 수 있어서 기뻤고, 글을 써 봐야겠다는 마음을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 이런 종류의 기쁨은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고,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즐거움이다. 


글 쓰는 재미는 끝이 없다. 이건 전부다 만년필을 사고 나서 얻은 ‘덤’이고, 또 ‘글을 쓰고 싶다.’는 작은 마음이 준 선물이다. 정말 조금이라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꼭 써야 하는 이유다. 


글을 쓰면서 나를 알 수 있다. 나는 ‘나’와 분리될 수 없기에 대부분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글을 쓰면서 만나는 나는 때로 낯설게 느껴진다. 나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기도 하고, 자세히 나를 들여다 봄으로써 세세한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한다. 타인과는 많은 대화를 하지만 나 자신과는 많이 대화하지 않는다. 뭔가를 읽거나, 그저 바쁘게 일정에 맞춰 살아갈 뿐이다. 글을 쓰면 나와 대화하게 된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시간을 갖는 것 자체로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또, 쓰려면 읽어야 한다. 간혹 안 읽고도 쓰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읽으면서 타인의 글과 타인이 꺼내놓은 그 사람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남을 이해하게 되고, 그 토대 위에서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서 나와 타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삶이란 결국 더불어 사는 일이다. 나를 잘 알고,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행복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요즘은 글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블로그를 만들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 모두 비용이 단 한 푼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만큼 좋은 조건이 없다. 내 생각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여러 사람의 눈으로 내 글을 읽은 반응을 만나는 일도 글쓰기가 주는 기쁨이다. 이로 보아, 글쓰기는 나, 그리고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 모든 것은 ‘글을 쓰고 싶다.’ 거나, ‘글을 한번 써볼까.’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만년필이나 한 자루 갖고 싶다.’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유는 아무래도 좋다. 중요하지 않다. 글을 쓰는 것만이 중요하다. 내용도 나중 문제다. 어쩌면 나도 새 펜을 갖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글을 쓰고 싶은지 아닌지, 글쓰기가 즐거운지 아닌지 그때는 몰랐다. 써 보면서 조금씩 맛을 알게 되었다. 만년필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든 아무렴 전혀 상관이 없다. 아무것도 없어도 좋다. 지금 아무 노트를 꺼내서 쓸 수 있다면, 스마트폰으로라도 메모장 앱을 열어 쓸 수 있다면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 자신도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만큼 큰 선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쩌다가 떠난 모험에서 수많은 동료를 만나고, 나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라는 뜻밖의 보물도 얻었다. 어디에서 끝날지, 다음 모험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모른다. 다만 갈 수 있는 데까지, 내가 갈 수 있는 저 깊은 곳까지 가보고 돌아와서 글로 남기고 싶다.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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