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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17. 2023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세상에는 하나마나 한 질문도 있다.

아주 오래전에 제가 종종 저희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들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개 그런 질문은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있을 때에 밑도 끝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곤 합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때의 정황이 자세히 기억은 안 납니다만, 어린 마음에 꽤 당황해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멀리 볼 것 없이 저희 아이들 어릴 때를 보면 아니까요. 그런데 어린 자식의 그 당황해하는 모습이 부모에게는 꽤나 재미있는 유희 거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물론 물으나 마나 정답은 엄마,라고 하는 게 옳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잘못 대답하면 어느 한쪽이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이제 겨우 자기 말 정도 할 줄 아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때처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그 질문이 생각보다 꽤 재미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은 하나마나 한 질문입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하나마나 한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옳은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비싼 밥 먹고 왠 헛소리냐는…….

사람들은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에게 종종 질문을 합니다. 왜 그 일을 좋아하세요, 그걸 하는 목적이 뭔가요, 언제까지 그 일을 할 건가요, 등등을 말입니다.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 질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기도 합니다. 어쨌건 간에 그래서 사람들은 저에게 종종 질문을 합니다.

"왜 글쓰기를 좋아하세요?"

"글쓰기를 하려는 별다른 목적이 있나요?"

"언제까지 글쓰기를 하실 건가요?"

이제 저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예전의 그 하나마나 한 질문을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더 좋은지, 아빠가 더 좋은지를 답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듯, 글쓰기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도 저는 대답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무슨 건강식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업체 경영자가 나와 광고를 합니다. 그 제품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설명을 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이 **** 참 좋은데,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 멘트를 듣고 과연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분의 말에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바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좋다고 믿는 그것을 다른 사람이 직접 먹어보거나 체험해 보거나 실천해 보지 않고는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어떤 드라마를 추천해 줍니다. 정말 재미있다고, 시간 나면 꼭 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냥 알겠다고 하고, 그 말을 잊어버립니다. 그분이 추천해 준 그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그 드라마의 한 회분이라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좋은 드라마인지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누군가가 저에게 글쓰기를 좋아하냐고 그 이유를 물으면 지금은 그냥 씩, 웃고 맙니다.


한때 이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꼭 권해야지, 하는 열정이라도 남아 있을 때엔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 활동을 독려했었습니다. 대부분은 그런 제 제의에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한 번 써볼까 싶어 마음을 애써 움직였던 사람들도 얼마 못 가 포기하고 말더군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글쓰기 재능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전 재능이 없어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출판을 목적으로 한다면 재능 없음이 어느 정도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취미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재능이 있고 없음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글 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한 번을 쓰더라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이런 걸 왜 하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게 되고, 그 마음이 결국엔 글을 쓰는 시간을 고통으로 둔갑시켜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굳이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전 글쓰기에 재능은 없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지금까지 작가지망생 입네, 하며 이렇게 글을 끼적이고 있진 않겠지요. 뭐, 개의치 않습니다. 설령 매일매일 글을 쓰고, 이런 패턴이 아주 오래 이어진 먼 후일에도 재능이 보잘것없는 정도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물으나마나 한 질문, 글쓰기가 왜 좋으냐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듯, 재능이 없어도 혹은 많이 부족해도 그것이 제가 글쓰기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군가가 저에게 글쓰기가 왜 좋으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쓰기 참 좋은데,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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