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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18. 2023

글쓰기를 배운다고요?

글쓰기는 도를 닦는 것과 같다.

한때 저도 이름 있는 강사의 글쓰기 강의에 쫓아다녀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됩니다만, 흔히 하는 말로 감가상각을 따진다면 그건 밑지는 장사나 다름없는 일이더군요.

게다가 요즘 사람들이 푹 빠져 지내는 유튜브에서도 간혹 글쓰기 강의 동영상을 검색하거나 그중 몇몇 개는 직접 들어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확인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배워서 익히는 게 아니라 도를 터득하는 원리와 같은 건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다이어트 관련 책을 읽는다고 해서 혹은 조회수가 높은 운동 동영상을 본다고 해서 살이 빠지는 게 아니듯, 유명한 글쓰기 강좌를 듣는다고 해서 혹은 잘 팔리고 있는 글쓰기 관련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단순한 논리가 가능하다면, 친구나 가족 중에 작가가 있을 때, 그 주변인들은 죄다 글쓰기를 잘하게 된다는 논리도 가능한 것입니다.


전 가끔씩 소설을 쓴다는 분 중에서 플롯을 어떻게 짜는지 궁금하다며 묻는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일단은 솔직히 플롯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제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플롯 구성을 고민만 하다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면 그런 플롯 따위는 없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도 언젠가는 플롯에 대해 고심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표현만 안 한다 뿐이지 매번 스토리를 쓸 때마다 자동적으로 저 나름의 플롯 구성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지금부터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플롯을 짜봐야겠군,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게 저의 철칙입니다. 그래서 제게 플롯 운운하는 이들을 보면 늘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식자우환. 가끔은 뭘 모르고 사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플롯이 어떠니, 시점이 어떠니, 또 인물의 갈등 설정은 어떻게 하느니를 고민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최종적인 목적은 여기에 있지 않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목적이 그것이라면 서울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대전쯤에 퍼질르고 앉아 여기도 괜찮군, 이라고 한다면 결코 목적을 이룰 순 없을 것입니다.


도를 닦는 것은 정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비의를 전수 받든, 혼자 도를 닦든, 지리산에 싸 짊어지고 들어가든, 심지어 편안히 방 안에서 수련하든 긴 시간이 요구되는 일인 것입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득도가 가능하다면 모든 이가 도인이 될 것이고, 몇 권의 책이나 몇 번의 글쓰기 모임으로 글쓰기가 능숙해진다면 모든 이가 작가가 될 것입니다.


욕심을 비우고, 묵묵히 쓰는 것만이 최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그저 쓴 글을 읽었을 때 조금이라도 덜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하며 글을 쓸 뿐입니다.

명백히 플롯을 고민하고 소설의 제반 구성을 걱정해야 할 단계는 아직 멀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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