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세요?
나는 술이 싫다. 엄밀히 말하자면 술을 잘 못한다. 가끔 기분을 내고 싶을 땐 맥주 작은 것 한 캔이면 충분하다. 주종에 관계없이 조금만 마셔도 금세 얼굴이 달아오른다. 나 같은 사람은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술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가끔 와인을 한 잔 곁들여 분위기를 내는 것도 좋아하고, 배달음식과 함께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저녁도 좋아한다. 편하게 동료들과 술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싫어했던 것은 술 문화였다. 카페인이 안 받아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커피를 강요하지 않는 사회인데, 술이 안 받는 사람에게는 어째서 ‘어 그렇구나.’가 아니라 ‘마시다 보면 늘어’라는 말을 하게 됐을까? 술잔을 한 잔 두 잔 기울이면서 취중에 진담을 나눈다고는 하지만, 맨 정신에 하지 못할 말이면 꼭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하고 말아야 하는 말인가 싶었다. 진담이랍시고 술기운에 했던 말은 다음날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만다. 잊은 척하는 건지 정말 잊은 건지 모르지만, 다음날이 되면 감쪽같이 내용은 사라지고 함께 했다는 기억만 남아 팥 없는 팥빵처럼 친분의 겉모양만 남게 된다.
나는 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하지 않게 한두 잔 마시며 적당히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고, 좋은 음식과 함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매개가 된다는 것까지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적당히를 모르는 민족이 아닌가. 그래서 싫다. 소주 두 병을 마셔야 조금 취기가 올라오는 사람에 맞추기 위해서 술을 잘 못하는 사람도 그만큼 마셔야 하고, 내일이 없는 듯 마시고 죽어버리자는 마음으로 끝까지 가는 것도 싫다. 과하지 않게 술을 절제하며 즐기는 분도 많겠지만, 내가 겪었던 직장의 술문화는 나로 하여금 “저 술 안 합니다.”라고 말하게 했다.
‘끝까지 간다’ 정신이 가져오는 폐해는 상당히 많다. 그중 가장 큰 폐해는 ‘시간’을 잃는다는 것이다. 술이 곁들여진 저녁 식사 자리, 혹은 회식 자리는 길어지게 마련이다. 전체 규모로 회식을 시작해서, 각 그룹별로 나눠진다. 시작은 전 사우들과 함께, 부서별로 함께, 다음으로는 동기들과 함께, 점점 규모는 작아진다. 그렇게 2차, 3차, 4차까지 이어진다. 취하기 위해 마시고, 또 마신다. 보통의 저녁 식사 자리가 길어야 두 시간 남짓으로 끝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술을 마시며 저녁에서 밤까지, 빈번하게 새벽까지 이어지는 자리는 그 자체로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한다. 그뿐이 아니다. 끝까지 술을 마시고 나면, 다음 날에도 지장을 준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출근해도 멀쩡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가 다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음주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능률이 확연히 떨어지게 된다. 짧으면 하루, 길면 며칠 동안 숙취로 고생하다 보면 다시 정상 패턴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소모된다. 하루 저녁 술 마시고 나면 며칠 동안 제 컨디션으로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술을 먹어서 업무와 내 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도 싫었고, 업무가 그 정도로 시시하다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다.
내 직장생활은 술과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술이 정말 안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술이 안 받는다고 해봐야 별 소용이 없었다. “마시다 보면 늘어.” 라든가, “얼굴만 빨개지는 것 아냐?, 내 주위에는 얼굴 빨개지고도 잘 마시던데?”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때는 마시다 보면 술이 느는 줄 알았던 때도 있다. 조금 익숙해지는 느낌은 있었으나 얼굴은 늘 빨개졌고, 나중에는 술이 느는 게 아니라 몸이 반응을 못해서 괜찮아지는 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하지만 조직 속에는 나같이 술을 못하면서도 억지로 마셔대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 덕에 나는 늘 “너는 왜 마실 수 있으면서 안 마시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아니, 내 몸인데, 내가 안 마시겠다는데 왜들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몸으로 한 번 마셔볼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전 직장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유독 많았다. 내 선배 사원이었던 40대 초반의 한 선배는 매일 술을 마셨다. 이 선배는 술을 급히 마셨다. 고깃집에 가서 아직 불판에 불도 올라가기 전인데 술을 연거푸 따르고 건배를 청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다만 이 분은 ‘끝까지 가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6시에 퇴근해서 6시 30분쯤 자리를 잡고 앉으면, 8시 전에 모든 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분은 뒤끝도 없고, 그냥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은 너무 자주 술을 먹자고 요청하는 것과, 모든 자리에 술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녁에 뭐 하냐?”, “저녁이나 먹고 갈래?”를 거의 매일 물어 왔다.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저녁에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던 미혼의 나는 번번이 거절하기가 여간 곤란했던 게 아니다. 술도 안 받고 숙취도 심하고 게다가 업무를 한창 배워야 했던 신입인 내게는 큰 난관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는 (저와의)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곤 했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이래 봤자 회사 사람들이 전부였으므로 선배는 늘 꼬치꼬치 캐물어 왔다. 그 선배에게 저녁 약속이란 곧 술자리였으므로 틈을 봐서 합석할 생각이었던 듯싶다. 업무도 꼼꼼하게 하고, 배울 점이 많은 선배 사원이었지만 술독에 빠져 사는 터라 업무 외적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선배는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 식사량도 줄었고 당연히 금주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어쩐지 술은 줄이지 못하고 안주만 줄이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이 분은 ‘맥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자리를 크게 벌리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순한 맛에 속했다. 이 선배는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 가지 문제는 앞서도 얘기했듯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너무 빈번하게 술을 마시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회사 상사 중 대부분은 70년대생이었다. 소위 말하는 ‘꼰대’ 스타일이 많았다. 이분들 중에는 맥이는 스타일이 많았다. ‘술은 취하려고 먹는 것.’, ‘술에 지면 안된다.’ 같은 말을 달고 살았다. 꼭 자신이 먹는 만큼은 남도 먹어야 했으며, 거래처와의 회식에서든 내부 회식에서든 상대를 취하게 만들어서 못 버티게 하면 이긴 거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첫 출근 직전에, 호텔 거래처 담당자와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정식 출근일은 안되었지만 부서가 내정이 되어있었으므로 안 갈 수가 없어서 자리에 참석했다. 술을 잘 못하니 생맥주 한 잔만 마시겠다고 했는데, 자신이 소주 마시는 것 이상으로 맥주를 마시도록 보챘고, 맥주가 빈자리에 소주를 계속 부어 넣어서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상사들과 자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현타’가 좀 심하게 왔다. 속은 괴롭고, 얼굴은 빨갰다.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내용은 없었고 중요한 것은 함께 자리를 가졌다는 것뿐이었다. 기여한 것은 없고 몸은 많이 힘들었다. 이런 부류의 상사들은 다음날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본인들은 출근 도장을 찍고 오후가 다 되어서야 나타나곤 했다.
한 번은 중간관리자가 한 분 발령을 받아 내려왔다. 이 분 환영회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점심 간담회 겸 식사자리였는데 어쩐지 흥이 올라서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다. 나는 퇴사를 예정하고 있었고, 이제 좀 넌덜머리가 났기 때문에 “저는 괜찮습니다.” 며 아예 잔을 받지도 않았다. 점심시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8명쯤 되는 사람들이 마셔댄 술이 30병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새로 온 관리자는 환영의 의미라며 담아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연거푸 마셔댔다. 두 시간쯤 자리가 이어졌을까, 슬 일어나야겠다고 말하고 있는 찰나 그 관리자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분을 기다려도 오질 않자 수색에 나섰다. 내가 제일 멀쩡했기 때문에, 그분을 찾는 건 내 몫이었다. 이곳저곳 불러 가며 찾으러 다녔다. 건물 외부 흡연장에도 가보고, 편의점에도 가 봤다. 건물 바깥으로 나있는 화장실에도 가 봤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그래도 버리고 갈 수는 없어서 찾아보고 있던 중에, 여자화장실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 관리자는 남자다.) “으.. 으..” 분명한 남자 목소리였고, 여자 화장실은 1칸뿐이었으므로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불성인 그분을 불러 보았다. 문이 잠긴 줄 알았는데 문은 열려 있었고, 부르는 소리에 그분이 문을 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때 마음을 굳혔던 것 같다. ‘아, 정말 이건 아니다.’
추운 겨울날 인사불성이 된 동료를 데려다주다가 그분이 엉뚱한 집 초인종을 자꾸 눌러대서 집주인 여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네 마네 해서 대신 사과를 거듭했던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고, 또 다른 거래처 직원은 몸도 못 가누면서 술을 더 마시러 가자고 하는 통에 억지로 집에 데려다주었던 기억도 난다. 이분은 자기 집 앞에서 내 옷에다가 토사물을 묻혔다. 술만 마시면 젊은 여자 사우들에게 추파를 던지던 40대 중반의 노총각도 있었고, 돌도 안 지난 한 아이의 아빠는 구실만 있으면 술자리를 만들어 집에 들어가기 싫어했다. 이분은 술버릇이 얼마나 고약한지, 늘 단란한 곳에 가기를 원했고, 가자고 큰 소리를 쳐놓고서는 계산을 좀 해달라며 나중에 준다고 하는 요즘말로 ‘하남자’의 전형이었다. 소위 말하는 ‘미투 운동’도 다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나는 극단적인 금주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함께 나누는 향긋한 커피가 사람사이의 관계를 풀어 주고 대화의 윤활유가 되어 주듯이, 식사와 함께 한두 잔 곁들이는 술이 때로는 서먹한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어쩐지 술은 과하도록 마셔야 하고, 코가 삐뚤어지고 몸도 못 가눌 정도가 되어서 나오는 상대의 말만이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어쨌든 나는 ‘끝까지 가는’ 술문화가 싫었고, 거기서 나왔다. 그 사람들이 틀렸다기보다, 나와 전혀 맞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술 없으면 안 되는 일은 술이 있어도 안 된다고 믿는다. 술자리에서 한 두 마디 나눈 말로 거래가 이어질 것 같으면, 굳이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술이 없으면 친해지지 못할 사람은 술이 있어도 친해지지 못한다. 같이 웃고 즐기고 음식을 먹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좀 더 서로에게 깊이 있는 관계는 술이 맺어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술은 보조제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모든 관계나 거래의 핵심은 될 수 없다. 그리고 술만큼 시간과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음료가 어디 있는가. 심지어는 돈도 쓰게 만든다. 시간과 건강, 돈, 이것을 과하게 써 가면서 까지 얻어야 할 가치가 술자리에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요즘은 그런 데가 없는지 모르겠다. 나만 스마트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지방에 어느 기업의 일을 구구절절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점심 회식도 늘어나고, 과도한 음주 문화는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끝까지 가는 술문화는 남아 있을 것이다. 한 잔 마시고 털자는 거지 뭘 그렇게 파고드냐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두 번도 아니고 평생 털어버리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직면해야 할 문제는 직면하고, 해야 할 말은 취기를 빌리지 않아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나같이 술 안 하고 못하는 사람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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