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고 나서야 있었음을 깨달아 본들 늦었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다. 책장을 뒤적이다 아빠가 써두고 부치지 못한 편지를 꺼내 읽어 본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군대에서였다. 전역을 9개월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부대개방행사가 있어 가족들이 모두 왔었다. 11월 초입이었는데, 아빠는 그 달 하순에 돌아가셨다. 내가 본 아빠의 모습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미처 부치지 못한 아빠의 마지막 편지를 발견했다. 내게는 이 편지가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고, 유서이다.
아빠는 열심히 일하셨다. 늘 그자리에 있는 산처럼 우직했다.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하셨다. 대단지 아파트에서 설비 관리를 하셨다. 설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주민들 요청 사항도 많이 들어주셨던 것 같다. ‘갑질 아파트’가 어디 요즘에만 있는 일이겠는가. 전혀 내색하진 않으셨지만 아빠의 고달픔을 한번 추측해 본다. 동파 많은 겨울엔 트고 갈라지는 손 붙잡고, 여름엔 비 오듯 땀 흐르는 몸 이끌고 아빠는 부지런히 우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셨다. 오래된 직장에서 퇴직할 나이가 되셨고, 나와 동생도 어느덧 성인이 되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호기심도 많고, 부모님을 생각하기에 아직 철이 없던 나는 휴학도 많이 하고 중국에 연수도 다녀오겠다며 부모님께 부담을 지워 드렸다.
퇴직하시고 소일거리 하며 사셨어도 됐을 텐데, 아빠는 퇴직 후에도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던 것 같다. 남들 다 가는 군대도 제때 안 가고, 졸업도 늦어지는 나를 보며 좀 더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군에 입대할 당시 소대장은 나보다 어렸고, 중대장은 두 살 정도 많았으니 일반병사 치고는 많이 늦게 입대한 편이긴 했다. 나이만 먹었지 경제적으로 독립을 못한 나는 아빠에겐 부담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빠는 그렇게 타지에서 홀로 방을 얻어 계시면서 주중에는 계속 일을 하셨다. 퇴직 후에 타지에서 홀로 일하는 게 썩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 아니었음은 자명하다. 그래도 아빠는 내색 없이 묵묵히 일하셨고, 휴가 때마다 늘 용돈을 쥐어 주셨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 때는 늘 밖으로 나도느라 아빠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돈을 벌어다 쓸 생각은 안 하고 늘 받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러 다녔다. 휴학을 하고도 용돈을 받았고, 중국에 가서도 용돈을 받아 썼다.
군대에 가서야 아빠가 보였다. 왜인지 철이 든 것일까. 고생하는 아빠 생각이 났다. 언젠가 휴가 때, 아빠가 홀로 계시는 방에 간 적이 있다. 낡은 아빠의 일회용 면도기가 눈에 들어온 것도 평생에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혼자 떨어져서 일하는 아빠가 안쓰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빠와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돌려 가는 길에 다시 돌아왔다. 아빠 방을 정리하고 수북이 쌓인 낡은 일회용 면도기 대신에 새 면도기를 하나 사 드렸다.
그때 이미 스물일곱이었으니, 친구들 중 몇몇은 이미 취직도 했을 때인데 괜히 나 때문에 아빠가 늦게까지 고생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여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 집을 정리하고 면도기를 사 드린 것도 내 마음을 가볍게 해 보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9월, 그로부터 두 달 뒤 아빠와 부대에서 만났다. 좀처럼 먼 길을 나서거나 행사에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빠였음에도 어쩐 일인지 그때는 파주까지 걸음을 해 주셨다. 잠시였지만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학도병으로 늘 6.25 전쟁 얘기를 하셨던 할아버지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빠는 내가 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셨다.
부대에서 발을 씻겨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아빠는 발이 부끄럽다며 엄마를 씻어주라고 했다. 아빠 발은 상처도 많고 갈라진 곳도 많았다. 군화에 발을 집어넣고난 후로 무좀도 생겨보고 발톱도 몇 번 빠지고 났더니 아빠 발에 더 애정이 갔는데, 아빠는 못내 발을 내놓기가 민망하셨던 것 같다. 그때 발을 씻어 드렸다면, 마음의 짐이 좀 덜했을까.
그로부터 3주 후, 아빠는 돌아가셨다. 여느 때와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갖던 중이었다. 중대장이 전화기를 들고 달려오는 게 보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전화기를 내게 건넸다. 혼자 지내던 아빠는 며칠째 출근을 하지 않으셨고,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동료가 엄마에게 소식을 알려 왔다고 한다. 그렇게 손 쓸 새도 없이 아빠는 돌아가셨다.
벌써 6년이나 흘렀다. 어릴 때는 덜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빠를 닮아 간다. 거울을 보는데 아빠가 보인다. 인생의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면서 보이지 않던 아빠가 보이는 것 같다. 이제야, 아빠를 조금 알 듯도 한데, 어째서 그렇게 급히 가버리셨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내가 아빠의 인생을 대신 다 써버린 것이 아닌가 하여 갚을 길 없는 사랑에 송구스러운 마음과 후회가 뒤엉킨다. 김진호 씨의 <가족사진>이라는 곡의 한 줄이 떠오른다.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좀 더 일찍 알 수는 없었을까, 아빠의 희생과 사랑을. 아빠는 내게 생명을 전달해 주셨고,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주셨다. 것도 모자라 아빠의 전 존재로 나를 양육하고 사랑해 주셨다. 지금의 나는 그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좀 더 일찍 고마움을 알고, 아빠의 삶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미 때는 늦었다. 어째서 없어지고 나서야 있었던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일까. 언젠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아빠와 만나고 싶다. 그때서야 못다한 한마디를 아빠에게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아빠 사랑해.”
사진 출처 : www.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