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과 인생

4년 만에 다시, 면접

by 정필

열 시 삼십 분 면접이 예정되어 있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운전을 하며 이십 대의 첫 면접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예상 질문을 추리고, 예상 답변을 만들어 쿡 찌르면 답변이 술술 나올 수 있게 준비했다. 전날 사업장을 둘러보며 분위기를 살피고, 직원과 손님을 살펴보면서 꼼꼼히 메모했다. 몹시 긴장한 채로, 다음날 면접에 임했다. 분위기를 풀어준답시고 면접관이 던진 질문에 내 예상 답변 리스트는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오늘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격려의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나요?” 이런 뉘앙스의 질문이었는데, 뻣뻣하게 얼어있던 나는 긴장한 티를 팍팍 내며 파스스 부서지고 말았다. 그 뒤로는 기억도 잘 안 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좌우에 앉았던 지원자들이 나를 열심히 깎아내려 주었다. 나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아는 것은 나름대로 생각을 말했다. 사업장 답사한 내용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나를 열심히 깎아내리던 좌우의 두 명은 그때 이후로 만날 수 없었다.


어제까지는 “전혀 긴장이 안 된다.” 며 한층 여유 있는 삼십 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잠이 잘 안 왔다. 긴장한 건 아닌데, 선잠을 잤다. 잠을 아예 못 자고 말똥말똥 깨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푹 잘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마치 생각이 많고 근심이 많은 사람이 잠을 깊이 못 자고 꿈을 한가득 꾸는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충혈된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인턴사원일 때 열심히 넥타이 매고 다녔는데, 오랜만에 다시 넥타이를 하고 아침에 나서려니 기분이 묘했다.


열 시 삼십 분 면접 시작이라 열 시쯤 여유롭게 도착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지원자와 이야기를 좀 나눴다. 출생연도 앞자리가 나보다 하나 적은 큰 형님이셨다. 사업을 오래 하다가, 잠시 쉬는 기간이라고 했다. 대화를 좀 나누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관은 두 분, 그리고 면접자는 나 한 명이었다.


집을 나설 때는 긴장이 좀 됐는데, 다른 면접자와 이야기를 좀 나누다 보니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면접관들과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공공기관이어서 그런지 면접관들도 경직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기업 면접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면접 질문 리스트가 정해져 있는지, 순서대로 체크해 가면서 질문을 했다. 단골 질문인 “자기소개 한 번 해보시는 걸로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라든지, “상사가 너무 많은 일을 시키면 어떡할 것이냐.” 뭐 이런 질문들을 했다. 이주 청년이고 퇴사한 지 삼 개월쯤 되었다고 적당히 소개를 했다. 상사가 너무 많은 일을 시키면 상사랑 대화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상사가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도전적인 업무를 주는 경우라면 대화를 통해 잠시 업무량을 조절하거나 조금 더 일하더라도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일하겠지만, 상사가 완전히 헛다리 짚고 나를 과대평가하거나 나를 모르고 업무를 배당하는 경우도 많으니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외에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나 내 자소서 안의 내용을 몇 가지 물었고, 지원업무와 좀 다른 업무를 할 수 있겠냐고도 물어봤다. 안 해본 일이라 딱 잘라서 안 하겠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해당 업무로 지원한 것이 아니기에 그에 맞는 경험이나 기술은 없다고 말씀드렸다.


면접은 십오 분 남짓 이어졌다. 덤덤했다. 스물여덟, 처음 면접을 준비할 때와는 또 달랐다. 그때는 ‘어떻게든’ 붙어야 했고, 내가 중요하다기보다 나를 회사에 맞는 사람으로 잘 포장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서 ‘모범답안’을 준비하고, 면접관이 듣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 고민했던 것 같다. ‘나’를 생각지 않고 기업 연구나 직무 연구만 했다. 나를 감싸고 있는 포장이 벗겨지면 안 됐기 때문에 노심초사했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4년 정도하고 보니 그래도 한 층 여유가 생겼다. 나는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내게 꼭 맞는 무언가를 찾지는 못했지만, ‘아 정말 이건 아니야.’하는 것 몇 개쯤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인지 멀쩡한 직장을 제 발로 걷어차고 나왔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이거 아니면 딴 거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넓고, 일자리는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한 두 가지인가?’ 약간 자뻑에 빠져 보았다.


인생은 흔들림의 연속이다. 직장 잘 다니다가 ‘한 번 사는 인생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 고 흔들려서 다른 길로 나왔다. 당당하게 직장 문을 나섰지만 때로는 불안하다. ‘이러다 평생 알바나 전전하는 것은 아닌가.’, ‘나이도 들었는데, 진짜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런 고민을 한다. 일을 하면 하는 대로, 일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흔들린다. 일 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디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이 있을까.


글을 쓰면서도 흔들린다. 검열관은 계속 내게 편집자 행세를 부추긴다. 하루쯤 그런 글은 안 써도 되지 않냐며, 오탈자가 너무 많다며 흉본다. 돈도 안된다며, 헛수고하는 거라며 때로는 내 어깨를 잡고 뒤흔드는 것 같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대단한 인생이 아니다.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아가고, 불안을 직면하는 인생이 대단한 인생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었다고 치자. 불안에 매몰되어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해서는 안된다. 불안함을 인정하고 작은 불빛을 찾아 의지하여 모험을 떠나는 인생이 멋진 인생이다. 내게 말해주고 싶다. 흔들려도 괜찮다. 내 생각대로 안돼도 괜찮다. 좌절해도 괜찮다. 다만 불안 자체를 거부하지는 말고, 흔들림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해주고 싶다. 흔들림도 내 인생이다. 이를 꼭 끌어안고, 나만의 삶의 흔적을 만들어 가리라.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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