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과 인생

있잖아요, 괜히 좀 울적한 날

by 정필

바람 한 점 없고 사람 한 명 오가지 않는 방 안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먼지를 떠올려 봅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습니다. 별 이유가 없음에도 오늘은 왠지 그런 날입니다. 바닥에 소복이 가라앉은 먼지처럼 잠잠한, 한편으로는 가라앉은 것 같은 날입니다.


과거를 뒤적여 이유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는지 한번 찾아봅니다. 오랜만에 보았던 면접이 꽤나 실망스러웠다거나, 오늘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하루가 지난 것에 대한 아쉬움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몸이 좀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적당한 이유를 찾아 이 먼지 같은 기분의 원인으로 뒤집어 씌워 버리면 속이 편하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별로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과거 탓으로 돌려 버리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착 가라앉은 지금의 기분을 바꿀 수 있는 건 적어도 지금, 그리고 다음에 일어날 일이어야 합니다. 과거의 무엇 때문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뒤집어 씌워 놓으면, 현재는 계속 가라앉은 먼지처럼 착 다운되어 있게 되는 것이지요.


감정엔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외로운 어느 날 길을 걷는 연인들을 보며 느낀 쓸쓸함, 화창한 날 느끼는 서러움, 흐린 날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꿀꿀함 같은 것들도 이유를 찾아보면 뾰족한 이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후회나 자책은 수정의 여지가 많습니다. 잘못을 했다면 사과를 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러나 때로 이유 없는 감정의 기복을 겪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억지로 과거에 일어난 일에 이유를 붙이기보다, 현재를 상쾌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가지고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제 기분을 좀 더 상쾌하게 해 줄 방법을 몇 가지 알고 있습니다. 가라앉은 기분까지 잊게 만들어주는 한 시간의 독서, 사람이 북적이는 카페에 앉아 마시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기서 저기로 헐레벌떡, 땀을 흘리는 데만 목적이 있는 공놀이,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 차 안에서 들으며 따라 부르는 노래, 편한 옛 친구의 목소리, 감정에서부터 무작정 써 내려가보는 글쓰기 같은 것들입니다.


이유 없이 즐거운 날이 있으면, 이유 없이 조금 처지는 날도 있습니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있으면 글이 안 되는 날도 있습니다. 이유가 명확하고 해결 가능하면 문제가 없지요. 친구와 싸워서 마음이 안 좋으면 친구랑 화해하면 될 것이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병원에 가거나 몸을 좀 쉬면 됩니다. 그래도 살다 보면 정말 가끔은, 이유가 없는 감정기복이 있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럴 땐 너무 당황하지 마시고, 나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제겐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감정에 푹 절여져서 이런 글을 써놓고 나면 얼마나 후회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글을 쓰면 ‘이런 날도 있구나.’, 혹은 ‘지금 내가 좀 침체되어 있구나.’는 알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저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이 되어서 일까요? 한결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는 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마른하늘에 비가 오기도 하고, 상식 선에서 이해 안 되는 일도 많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왜 이러지?, 이상해’ 하기보다,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유 찾기는 내버려 두고 글을 한 편 써보거나, 나를 즐겁게 해주는 일들을 한 번 찾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부침이 있고 이해 안 되는 일 투성이지만 나는 내 삶이 좋다. 이것도 내 삶의 여정이다. 이렇게 생각해 버리려 합니다. 글을 한 편 썼으니, 땀이나 실컷 흘리러 가려고 합니다. 아마 30분 뒤에는 기분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이유 없이 침체되었으니, 아마 또 이유 없이 금세 좋아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자신을 즐겁게 해 주는 도구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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