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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Sep 26. 2023

보이는 것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머릿속이 복잡해 생각을 꺼내기가 어려울 때에는, 보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글을 쓸 수 있다. 쓰다 보면 정리가 되기도 하고, 일단 써 보면 무엇에서 시작했든 하고 싶었던 말까지 나아가게 된다. 언제나 더 중요한 것은 쓰는 행위 그 자체이지 무엇을 썼느냐 혹은 쓸만한 것을 썼느냐가 아니다. 쓰는게 가장 우선이다.


복잡했던 건지, 아직 꺼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은 건지 글을 쓰기 어려웠다. 그래서 오늘은 보이는데서부터 글을 써보기로 했다. 떠오르는 것에서부터 풀어내기가 어려우면 때로는 보이는 것을 하나 써놓고 시작해도 좋다. 쓰다 보면 가고자 했던 곳에 가 닿게 될 것이라 믿는다. 늘 글이 잘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럴 때 다양한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면 글을 시작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오늘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모여 있는 카페 한 구석에 앉았다. 까만 창틀을 통해 바깥 하늘을 올려다본다. 조각구름 몇 점이 저마다 다른 크기로 떠다닌다. 구름이 꽤나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니 바깥에는 바람이 꽤나 부는 것 같다. 길가에 핀 강아지풀이 바람에 살랑인다. 바깥 도로에는 차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고, 카페 주차장에는 차들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햇살은 여전히 쨍쨍하지만 살랑이는 바람 덕분에 서늘한 느낌을 준다. 아, 어쩌면 카페 안의 에어컨 바람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바람 덕에 하늘이 더 높아 보인다. 그래서 가을을 하늘이 높은 계절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곧 있을 추석 연휴가 끝나면 중간고사 기간이라 과제가 많은 것 같다. 연휴를 편히 즐기려면 미리미리 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저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쓰기도 하고, 상의해서 역할을 나누고 있다.


내 앞에는 세 명의 학생이 앉았다. 셋 다 여학생인데, 저마다 꽤 큰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펼치고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한 학생은 노트북과 태블릿을 모두 펴놓고 열심히 클릭을 하거나 타자를 치고 있다. 이어폰을 끼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자료를 읽거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머지 둘 중에 한 명은 바로 옆에 앉아서 노트북 한 대만 펴고 있고, 맞은편에 앉은 또 다른 학생은 태블릿과 핸드폰을 번갈아 들여다보고 있다. 노트북을 펴 든 학생 둘은 나름 진지한 모습으로 열중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태블릿만 펴 둔 학생은 핸드폰을 들여다봤다가 바깥에 나갔다 왔다가, 자리에 잘 앉아 있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까 음료를 주문할 때는 각자 음료를 주문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음료를 한 잔씩 주문하는 모습이 색달랐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친구끼리 카페에 가거나 음식점에 가면 번갈아 가면서 계산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기계 대신 사람이 있어서 각자 돈을 지불하는 게 번거롭기 때문이기도 했고, 자주 다니는 친구들끼리는 나름의 순번 같은 게 있어서 돌아가면서 식사나 음료 같은 걸 사곤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즘은 주문받는 키오스크도 있고, 일일이 현금을 쓰지 않으니 각자 계산하기에 더 편리한 환경이 된 것도 같다. 예전처럼 번갈아가면서 사면 가끔 부담이 될 때가 있다. 계산이 정확하지 않아서 꼭 누군 더 내고 누군 덜 내는 일이 발생했고, 종종 여러 명 분의 값을 지불하기 어려울 때는 부담이 되기도 했었다. 이제는 각자가 먹는 것은 각자 계산하면 되니 지금 같은 방식도 깔끔한 것 같다. 


미군 기지 내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둘이 같이 와도 두 개의 계산서를 주어야 했다. 그때는 미국인들이 참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학생들을 보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당연한 일인 것도 같다.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이 좀 더 내는 것도 좋고, 다 비슷할 때는 각자 내는 것도 좋아 보인다. 각각 주문하는 걸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세 학생은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꽤나 과제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태블릿만 펼쳐둔 채 핸드폰을 주로 만지는 학생이 간혹 말을 걸어 보지만 대화는 두 세 차례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복도 쪽에 홀로 앉아 노트북만 펼쳐 둔 학생은 자리가 좁은지 노트북을 거의 떨어지기 직전까지 테이블에 걸쳐 둔 채 화면 안으로 빨려들 듯 몰입하고 있다. 목이 빠질 것 같다. 저러면 거북목이 될 텐데 생각하며 괜히 내 자세를 고쳐 본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이따금 고개를 들어 학생들을 보고 있는데, 이 학생들 눈에는 내가 대학생으로 보일까 하는 어림없는 생각도 한 번 해본다. 아마 아내에게 말했다면 몇 번 부인을 하다가 못내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하고 말았을 것 같다. 그래도 남자들은 늘 착각 속에 산다. 나이보다 열댓 살쯤 어려 보일 거라고 마음대로 상상한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아내를 괜히 한 번 떠올려 보고는 피식 웃고 만다. 


앞에 앉은 학생들은 아마 나를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카페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고, 무리 속에 있지만 또 자유로운 것이 카페가 주는 장점이 아닌가. 학생들이 나를 학생으로 볼 것이라는 생각도 그냥 나 혼자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학생들은 앞에 누가 앉아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과제에 몰입하고 있을 것이다. 


세 학생은 음료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정말 과제를 하러 왔나 보다. 주로 웃고 떠들고 데이트하러 카페에 다녔던 내게는 생소한 장면이다. 지금도 카페에 놀러 와서 관찰 일지나 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커피와 샌드위치도 나오자마자 맛있게 먹어 치웠다.


카페에는 나를 포함해 스무 명의 사람들이 있다. 아마 나와 저기 반대편 계약서 같은 것을 뒤적이는 둘을 제외하면 모두 대학생인 것 같다. 평소라면 같은 그림에 낄 수 없었을 테지만, 카페라는 공공의 상업시설 속에 한번 끼어 앉아 잠깐이나마 대학생 시절을 떠올려 본다. 


잠시나마 나의 힐끗거림의 대상이 되어주신 대학생 세분 덕에 글도 한 편 쓰고, 옛 생각에 잠겨 보기도 했다. 보답할 길은 없지만, 과제 열심히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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