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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Oct 06. 2023

걷는 도중에 새똥 맞아 보셨습니까?

특별한 경험도 글쓰기의 소재가 됩니다.

특별한 경험은 당연히 글쓰기 소재가 됩니다.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하루도 글로 쓰기 시작하면 글쓰기 소재가 됩니다. 그런데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을 겪는다면요? 이는 당연히 글쓰기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게는 특별한 '처음' 이 있었습니다. 이녀석을 어서 잡아다가 한 편 글로 요리를 해 보았습니다. 




목덜미에 뜨뜻한 감각이 느껴졌다. 꽤나 선선해지긴 했지만 아직 벌레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추운 겨울은 아니다. 평소에 벌레를 만지는 것도, 벌레가 날 만지는 것도 무척 싫어한다. (라고 쓰지만 사실 무서워하는 편이다) 마침 나무 밑을 지나고 있던 터라, 벌레님께서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지나가고 있는데, 목덜미에 따스한 감촉이 툭 들었다. 거의 동시에 본능적으로 목을 털어냈다. 곤충의 딱딱한 피부가 만져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따뜻한 점액질의 액체가 손에 묻어 나왔다. 이걸 액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벌레 님이 아니었다. 새 님의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목덜미에 묻은 끈적한 것을 털어 내려 보도블록 위에서 퍼덕거리느라 정작 이 액체의 주인은 보지 못했다. 멀리서 날 본 사람들은 나무 밑에서 퍼덕이는 한 남자가 벌레 때문에 퍼덕이고 있겠거니 생각하지 않았을까. 근데 여러분, 벌레가 아니라 새똥입니다. 벌레가 목덜미에 앉았어도 퍼덕거렸겠지만, 새똥이라 좀 더 호들갑을 떨었던 것뿐입니다.라고 해명이라도 하고 싶다.


문서 한 장을 인쇄할 일이 생겨서 카페에 있다가 주변 주민센터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연거푸 마신 커피 덕분인지, 인쇄물을 출력한 후에 나도 한 차례 화장실에 들르긴 했었다. 인쇄물을 스캔하여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내 장이 보내는 신호도 무사히 처리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량이 주차된 곳까지 걷고 있었다. 길에 멈춰 있던 것도 아니고, 새 화장실 밑에 내가 서 있었던 것도 아니다. 차에 떨어져 있던 것도 아니고, 어떻게 걷다가 새똥을 목덜미에 맞을 수 있지?


벌레인줄 알고 후다닥 털어내다가 새똥임을 감지하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벌레가 몸에 붙는 거야 꽤 흔한 일이니 글감으로 쓰기 어려워도 새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싶었다. 그 와중에 글로 쓸 생각을 하다니 나도 이미 중증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순간 ‘이 새가 내가 글 쓰는 사람인 줄 어떻게 알고’라는 생각이 스쳤다. 쓰다 보니 이거 진짜 병인가 싶다. 


새똥 묻은 손을 어쩌지도 못한 채 주차된 차를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카페 근처에 세워 둔 터라 500m 정도 거리였다. 똥 묻은 손으로 다시 주민센터에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주민센터 입구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하는 분들이 늘 계셨기 때문인데, 손에 똥범벅을 해서는 “아 저 손만 씻고 가려고요.”라고 말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일단 목에 묻은 걸 후다닥 털어내고 손에 다 묻힌 채로 차로 돌아왔다. 물티슈를 꺼내 손이며 목을 박박 닦았다. 살짝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고약한 냄새는 안 났다. 그대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재밌다. 길 걷다가 나무 아래서 새똥을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싶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구나. 이런 일에서 이유를 찾는 건 정말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냥 너털웃음 한 방에 웃고 말아야 한다. ‘새도 뭐 가끔 배탈이 나는 가보다.’ 하고 말아야지 별 수 있나. 


집에 돌아와서 손과 목을 여러 번 비누로 문질러 씻었다. 아까는 별로 안 나던 냄새가 왜인지 스멀스멀 나는 것만 같다. 코가 가려워 긁었는데 평소와 다른 냄새가 묻어있다. 


흰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에 안 떨어져서 다행이고, 머리에 안 떨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을 얼마나 빼고 다니면 위에서 떨어진 똥이 목덜미에 묻었나 싶기도 했다. 목을 좀 집어넣어야겠다. 신경 쓴다고 노트북 받침대도 쓰고, 틈날 때마다 목을 괜히 뒤로 잡아당겨보곤 하지만 평소 걸어 다닐 때는 영락없는 거북목인가 보다. 목을 빼고 다녔기에 목에 맞았지, 아니었으면 옷이나 머리카락에 똥 묻히고 다닐 뻔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허허 웃고 만다.


좀 여유가 생긴 덕분인지 화가 나거나 언짢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왕 맞은 거 글감으로라도 써먹어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어디 이런 일이 한 둘인가 싶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사사건건 다 이유를 찾겠답시고 덤비면 머리만 더 복잡해지지 않을까. 새똥 안 맞는 방법이나 새똥 맞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어딨 나. 그러려면 밖에 나다니지도 못할 것이다 아마. 살다 보면 내가 불러들이지 않은 일도 날 찾아올 것이다. 잘 구슬려서 보낼 수 있으면 보내고, 때로는 맞아들일 여유도 갖고 살고 싶다.


똥 한 방 맞더니 철학을 하고 있다. 이거야 말로 개똥철학이 아닌 새똥 철학이다.


그만 써야겠다. 글에 새똥 묻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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