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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Oct 10. 2023

삶을 위한 최대치의 다정함, 글쓰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보태어..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학창 시절 A학점을 받았던 답안지처럼 기가 막힌 답이 나올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평생 안정될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글도 많이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왜?”라고 끊임없이 묻거나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울 정도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종이 위에 쏟아붓도록 해야 한다. ‘이건 글을 쓰기에 좋고, 저것은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라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뭔가 말하려 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 먼저 글로 풀어놓아라. 교훈이나 메시지보다 감정이 먼저다. 나를 풀어놓지 못한다면, 무슨 교훈을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작가가 쓰는 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이다. 만약 우리 인생의 작고 평범한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당장 원자폭탄에 의해 전멸당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글 일부입니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난 후에, 으레 그렇듯 글쓰기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책들을 훑어보다 보면 어김없이 첫 번째나 두 번째 책쯤에서는 꼭 만나게 되는 책입니다. 저도 그 시기쯤 이 책을 처음 접한 후에, 꼭 이 책을 소개해주었던 사람의 마음처럼 되었습니다. 저도 누군가가 글을 써 보고 싶다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소개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 글을 쓰기 어려울 때, 이 책을 펼쳐 몇 꼭지를 읽다 보면 어느새 글을 쓰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은 ‘글 잘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글을 쓰게 하는 글’에 가깝습니다. 글을 좀 써보고 싶다고 여기면서도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장담컨대 곧 글을 쓰게 되실 것입니다.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좀처럼 쓰지 못하는 분들은,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맞춤법이 틀리면 어떡하지?’, ‘내 생각이 너무 유치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반대에 부딪히면 어쩌지?’와 같은 걱정을 하기 때문에 쉽사리 글을 쓸 수 없는 것입니다. 글을 쓰려면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꺼내 놓아야 하는데,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거나 누구나 동의할만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글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글도 부분적인 것을 설명할 때가 많기 때문에, 독자들이 글을 보고 자신을 단정 지어 버릴까 봐 두렵기까지 한 것입니다.


사실은 제 얘기입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 ‘읽을만한 것.’이라는 기괴한 기준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글은 써 본 적도 없으면서, 정확한 문법으로 글을 써야 하고, 성숙한 생각을 담아야 하면서, 대부분 동의할 수 있는 일반론에 대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표현은 아름다워야 했고, 적은 글로도 저의 생각이나 저 자신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을 정도여야 했습니다. 조건들을 열거하고 보니 글이 안 써지는 게 당연합니다. 지금도 이런 글을 쓰려고 작정하고 앉으면 단언컨대 단 한 줄도 쓸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쓴 글의 제1 애독자는 저 자신입니다. 제일 먼저 읽는다는 점에서 그렇고, 제일 많이 읽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자신만큼 자기 글을 읽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처음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 브런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이 많지만, 1차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글은 남기고 공유하고 보여주는 것이어야 하지만, 글쓰기 연습이 안된 상태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타인이 내 글을 정성스럽게, 혹은 눈에 불을 켜고 읽는 일도 정말 드물긴 한 일이지만, 만약 처음부터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먼저 의식하게 되면 제대로 나를 꺼내 놓을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자신을 잘 꺼내 놓을 수 없다면 진실된 글이 될 리 만무하여, 그저 일반론이나 몇 마디 쓰거나 지식을 조합한 글 정도 외에는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 보는 글을 쓰시면 좋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육필로 써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웬만하면 방해받을 일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서, 그 시간만큼은 자신만의 글을 써 보시는 겁니다. 누가 볼 일도 없으니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해 보는 겁니다. 다시 읽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나를 지면에 꺼내놓는 것,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이렇게 한 달만 해 보셔도 글을 쓰는데 꽤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글 쓰는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자신만 볼 수 있는 글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도 보고 고치지 말고, 그냥 쓰는데 집중해 보는 겁니다. 


오로지 쓰는데 집중하는 이 한 달간의 기간을 통해 우리는 매일매일 자신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글쓰기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글도 써본 사람이 잘 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훈련하는 운동선수가 점차 자신의 몸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해 가듯 매일 글로 자신을 꺼내는 연습을 하는 사람도 점차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유의미한 기술이나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훈련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아무리 보석같은 재능이라 할지라도, 훈련 없이 재능이 개발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히려 보석 같은 재능일수록 훈련에 몰두하는 법입니다. 공부에 두각을 보이는 아이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재능 있는 운동선수, 예술가가 더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재능이 있다는 뜻이고,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훈련을 통해 이 재능이라는 원석을 갈고닦아 보석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글을 쓰고 싶다.’ 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에 재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그냥 쓰면 됩니다. 그 이후에 글을 써 가면서 훈련의 과정을 얼마나 이어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하지요. 이후로는 이 과정의 반복인 것입니다. 글을 쓰는 데에는 천재가 없다고 합니다. 많은 글을 읽으며 생각을 다져야 하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뭔가를 발견해야 하며, 실제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어쩌면 한 두 가지 기술을 연마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이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 길을 가는 도중에는 눈에 보이는 것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돈도 안됩니다. 오히려 돈을 써 가며 글을 써야 하는 판입니다. 많은 조상 작가들은 글을 쓸 기회를 얻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는데 계속 글을 쓰고 계시다면, 아니면 뻔히 알지만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분명 글쓰기에 재능이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분명 자신 안에 글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음을 믿으시고, 다만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한창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여러 작가님들의 강연 영상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강원국 작가님의 두 가지 조언을 떠올려 봅니다. 첫 번째는 조금 가슴 아픈 말일수도 있으나, “어차피 내 글 아무도 안 읽는다.”는 것입니다. 강연은 주례사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주례할 사람은 밤을 지새워 가면서 무슨 말을 해 줄까 고심하지만 정작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신랑 신부조차도 주례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객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신랑 신부도, 하객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례사, 아마 주례를 한 본인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강원국 작가는 대통령 연설 비서관실에서 연설문 작성하는 일을 했습니다. 온 국민이 주목하는 대통령 연설문은 어떻습니까? 아마 지금 여러분 머릿속에 한 두 문장이라도 스쳐 지나간다면 대단한 기억력일 것입니다. 이처럼 대통령 연설문조차도 마음에 남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니 일단 편하게 쓰십시오. 표현이 좀 서툴러도, 비유가 진부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잘 모릅니다. 마음을 담아 쓰면 그걸로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쓰다 보면, 한 두줄쯤은 누군가에게 가 닿을 것입니다. 최소한 내 마음에는 남을 것이니 그걸로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와는 좀 다른 것입니다. 근거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글을 잘 쓸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 글이 쓰레기 같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니 첫 줄을 쓰기가 어렵고 자기 글을 보면서 이걸 글이라고 썼나 싶은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다면, 자신의 재능을 좀 더 믿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전문가의 기준이 일반사람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감정을 느끼는 분들은 아마도 이미 글을 많이 읽어왔기 때문에 글 감각이 있어서 자신의 글을 보며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 것입니다. 내 글이 좀 이상하다고 느껴지신다고요? 오히려 잘됐습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그 글은 훌륭할 것이며, 더 훌륭해질 가능성이 높은 글입니다. 기준을 높은데 두었기 때문에 글은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쓰십시오. 백 번 양보해서 졸작을 좀 쓰면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진부한 표현을 좀 쓰면 어떻습니까? 여러분께는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 같은 사람도 열심히 쓰고 있지 않습니까. 


글쓰기에 대해서 그만 알아보셔도 됩니다. 우선 쓰기 시작하면, 글쓰기가 그다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근육 속에, 감정과 추억 속에, 그리고 주변에 있는 수많은 물건 속에 글이 담겨 있습니다. 대단한 글, 깊은 생각, 이런 고민들은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일단 쓰기 시작하십시오. 글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았던 아름다움, 나만이 경험한 세상, 내게 특별한 어떤 물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 기분, 생각 같은 것을 쓰는 일입니다. 어쩌면 잘 써야 한다는 생각 속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혼자만 보는 글을 써 보는 것과 자기 자신만의 견해를 갖는 것이 글 쓰는 데에도 좋은 연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사회적인 가면, 페르소나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장소나 직책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은 다를 수 있지만, 어쩌면 여러 모양의 가면을 바꿔 쓰면서 그 안에 있는 본래 얼굴을 점차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 결과로 가면 너머에 있는 ‘나’에 대해서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래서 내 말을 해 보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가 누구여야 하고 여기서는 어떤 가면을 요구하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지요. 직장에서는 팀장, 팀원, 가정에서는 아빠, 부모에게는 아들, 아내에게는 남편, 다 좋습니다. 저는 사회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가면서도 변치 않아야 하는 나 자신과 그 인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타인이 요구하는 나, 그들이 원하는 나가 아닌, 변하지 않는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지요. 인류가 남긴 문학도 결국은 ‘나’에 대한 탐구가 아니었던가요. 글을 써 보십시오. 그동안 사회적인 요구에 맞춰서 살아오느라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표현되지 못한 채 아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는 마음이 자라고 성숙해갈 것입니다. 


하루에 단 20분이라도, 글을 꼭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못 써도 괜찮고, 어디 발행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나의 글이면 됩니다.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당장 30분, 1시간이 어려우시다면 5분은 어떻습니까? 5분 동안 그냥 써 보는 겁니다. 주제를 구상하고 생각을 묵히고 그런 과정 없이, 딱 5분만 시간을 내서 앉아 보십시오. 펜을 들든 노트북을 펼치든 핸드폰을 꺼내든 뭐든 좋습니다. 다만 5분간만 집중해서 써 보시는 겁니다. 옆에 보이는 물건, 사람에 대해서 쓰셔도 좋고 그 순간 스치는 생각이 있다면 잡아와서 써도 됩니다. 점심때 먹은 밥이 맛있었다면 거기에 대해서 써도 좋고, 출근길 날씨에 대해서 써도 좋고, 오늘 입은 옷에 대해서도 좋고, 뭐든 좋습니다. 5분인데 뭐 어떻습니까. 한번 써 봅시다.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뭘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번 글로 잡아와 봅시다.


이제 읽고 쓸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저는 평생 동안 읽고 쓰는 ‘품 많이 드는’이 일을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대작이 안 남으면 어떻습니까. 씀으로써 제 인생의 기록이 남는 것입니다. 짧은 한평생을 두 번 세 번 사는 것이며, 제가 누군가의 글을 통해 도움을 얻듯, 제가 남긴 글도 어딘가에 가 닿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경제 논리는 보이는 것, 결과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본이 투여된 곳에는 반드시 가시적인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돈을 들여 행사를 했으면 매출이라는 결과가 나야 하고, 공부를 했으면 자격증이라는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이라는 결과로 보답을 해야 하고, 일을 했으면 급여라는 것으로 보답을 받아야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삶을 진정 풍요롭게 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너무 익숙합니다. 그것도 경제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얻는 기쁨은 누군가 빼앗아 갈 수도 없으며,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당장 버는 월급이 저의 몇 개월보다 중요했다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고민보다 중요했다면 직장을 나올 수 없었을 것이고, 글 쓰는 시간보다 당장 먹을 밥이 중요했다면, 조금이라도 더 축적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제가 얻은 것은 누가 산다고 해서 팔지도 않을 것이며, 이 방법이 아니었다면 결코 돈 같은 것으로는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글을 쓰시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글을 쓰는 순간부터, 나 자신을 얻으실 것이며 그 결과로 이전과는 모든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삶에 해줄 수 있는 최대치의 다정함을 선물하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잘 쓰는 글이라고 절대 할 수 없는 이런 글이라도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또 저 자신에게 주고 싶은 단 한 문장은 꼭 글을 쓰시라는 말 뿐입니다. 마음을 담아 글을 써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이런 말을 함으로써 저도 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다만 한 분이라도 더 글을 쓰시게 되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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