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가면 잘못 간다. 젊은이의 특성인지, 아니면 몽상가적인 특질이 발휘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으면, 마치 그것을 이미 체화한 듯 여기곤 한다. 또한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당장이라도 그 일에 착수하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여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흔히 이상적인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때로 공상 속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실생활과 괴리가 얼마나 있건 간에, 이상이 현실에 실현되지 않는 상황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장기간이 걸리는 과업도 금세 착수하여 성과를 이루고 싶어 한다. 안 좋게 이야기하면 금방 뜨거워졌다가 식어버리고 마는 냄비 기질이 있다고도 할 것이고, 좋게 봐주면 추진력이 있으며 열정이 남다르다고 평가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첫 직장인 대기업에서 자발적으로 퇴사한 후 4개월 하고 절반 정도가 지났다. 삶과 일이 맞닿아 있다는 고민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일에 대한 고민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그러던 중 지금 일터의 채용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기회가 되어 진로지도와 취업, 창업 교육을 주로 하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절박하게 일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일선에서 이들을 위해 애쓰는 동료들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금세 끓는점에 도달한 나는 그간 덮어두었던 책을 쓰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시시각각 발행되는 작가님들의 왕성한 활동을 보며 나도 어서 책을 써야지 마음먹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묻어두었던 것을 이제는 다시 꺼내어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열심히 썼다. 그간 읽었던 진로, 삶의 방향, 목적성에 관한 책을 다 꺼내 훑으며 내 책의 목차를 적어 내려갔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챕터를 구성하고, 글을 하나 둘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기획 단계부터 후다닥 급하게 써 내려간 내 책은 곧 고비를 맞게 되었다.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만 가득했고 내용에 대한 고민은 얕았다. 금방 떠오르는 몇 마디 말로 적당히 포장해 둔 마음이 진짜 동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책을 씀으로써, ‘책을 쓰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였다. 좋은 글로 여러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기보다는 ‘책을 쓴 사람’이라는 이름을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진짜 마음을 마주하니 더 쓸 수가 없었다. 젊은 날의 비전, 좋은 삶에 대한 고찰, 진로탐색, 나다움 같은 주제는 쉽게 쓰일 수 있는 글은 아니다. 긴 호흡을 갖고 한 문장씩 써 내려가야 하는데, 나는 너무 급한 나머지 결과만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흥분해서 시작했다.
책을 쓸 때뿐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명백한 범죄 행동이나 악의가 보이는 행위가 아닌 이상, 어떤 일에도 합당한 이유는 있다. 어떤 일에 착수할 때,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겉면에 붙어 있는 명분이 아니다. 조금 더 안쪽에 있는 내면의 동기를 살펴야 한다. 정말 그것이 내 것인지 물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훌륭한 일도 내 옷이 아니면 내게 맞지 않는다. 포장지는 곧 벗겨질 것이다. 가면은 언젠가 벗어야 한다. 남의 것은 언젠가 돌려주어야 한다.
흥분해서 마구 써내려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툭툭 털어 버린다. ‘에이, 그럼 그렇지. 무슨 책을 쓴다고.’ 하지 않는다. 다시 고민으로 돌아가고, 매일 3시간씩 글을 쓴다는 다짐은 변치 않는다. 다만 급한 내 마음을 내려놓을 뿐이다. 내 안에 날뛰는 마음, 시끄럽게 울려대는 북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기로 했다. 조금 더 마음을 들여다보니 잔잔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이 있었다. 질서 없는 소리가 아닌 정교하고 부드러운 음악이 있었다. 내가 춤추어야 할 장단은 표면에 있는 큰 소리가 아니라,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잔잔한 소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실력도 경험도 없는 내가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근거는 진실성이라 생각한다. 글을 배운 적도 없고, 관련한 지식도 전무하다. 엮이지 않은 구슬처럼 흩어진 단편적인 지식이 내 삶의 밑거름의 전부이다. 없는 지식을 뽐내려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깡통 소리만 울려댈 뿐이다. 내가 써야 할 글은 화려한 글이 아니다.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물방울 하나는 억수처럼 쏟아지는 빗방울 사이에서 아무 존재도 아니다. 그러나 이 물방울이 밀림 속 고요히 숨은 호수에 떨어지면 깨끗한 소리를 내며 동심원을 만들어 나간다. 빗속을 뚫고 귀도 막고 눈도 반쯤 감은 채 질주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만, 글을 쓰는 일이나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더 자주 잠잠한 호숫가에 떨어지는 물방울일 때가 많은 것 같다.
마음속에 내리던 소나기가 그쳤다. 하늘이 개고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온갖 소리로 요란했던 마음속에 소리가 그쳤다. 고요한 중에 귀 기울이면 잔잔한 선율이 들려온다. 앞으로는 다른 장단에 맞춰 춤을 출 생각이다. 이 모든 것이 조급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급히 먹은 마음은 여러 소리로 둔갑하여 나를 정신없게 만들고, 급히 달리게 만든다. 아직 젊고 경험이 모자라기 때문에, 혹은 멀리 내다볼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에 불안이라는 녀석은 종종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모양을 바꾸어 찾아오는 불안의 모습을 꽤 많이 가려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가만 보니 불안은 삶의 필수 요소가 아닌가 싶다. 불안이 없고 조급함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던가. 우리 모두 짧고도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흔들리는 마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나침반도 제 방향에 가까워 갈수록 늘 흔들리지 않는가? 불안을 인정하고 잠잠히 바라봐 주되, 나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인생을 살아야 하리라 다짐해 본다.
급히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앞선 성취를 이룬 사람을 보며 조급해한다. 직장 동료의 성공이나 이름 모를 누군가의 멋진 글 혹은 강연 같은 것이 때로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나도 어서 나만의 것을 찾고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나를 보챈다. 너무 급할 때는 앞도 안 보고 달린다. 그러나 이내 깨닫는다. 그렇게 빨리 달려서는 제대로 된 길로 갈 수도 없을뿐더러,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걸어서 산책하는 사람은 이정표를 쳐다보고 바른 길로 갈 수 있지만,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은 올바른 길인지 아닌지 따지며 달릴 수가 없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삶은 결국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결정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방향을 찾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달리는 방향으로 무작정 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나만의 길을 찾는 것이다. 시끄럽게 울리는 소음 속에서 자신이 춤춰야 할 선율을 한 가닥 찾아내는 것이다.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전혀 불안하지 않은 삶이 아니라 때때로 흔들릴 때도 나만의 길을 갈 수 있는 용기이다. 여럿이 뛰는 마라톤 경기에 합류하지 말고 나만의 모험을 떠나자. 마라토너에게 요구되는 것은 끈기와 인내, 그리고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 달리는 일이지만 모험가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지구상의 유일한 개체이며, 개성 있는 존재이다.
책을 쓰다 막혔다. ‘급히 가면 잘못 간다.’는 말이 퍼뜩 떠올라 적다 보니 한 편 글이 되었다. 글이 안 쓰일 때에도 쓸 수 있는 것이 글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쓰는 사람에겐 글이 남을 테니, 쓰다 보면 책도 남지 않겠는가 생각하면서. 큰 불꽃이 되려 애쓰진 않겠다. 다만 나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결론은 ‘그래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오늘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오늘의 최선이다. 급히 가면 잘못 간다. 한 걸음씩 내딛으면 언젠가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어디에 다다를지 몰라도 오늘 분량을 사는 것이 인생이다. 끝 그림은 완성해 봐야 아는 것이다. 글과 인생이 참 많이 닮았다. 내 글도 인생이 끝나는 지점에 가서야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까. 그때까지 열심히 쓰고, 살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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