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과 인생

외부 활동이 있는 날, 버스 안에서

버스 안에서도 써 봅니다.

by 정필

전 직원 외부 행사가 있는 날이다. 대절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거리를 간다. 좌석 여유가 있는 편이라 두 개가 붙어 있는 좌석 한 줄을 고스란히 차지하게 되었다. 오히려 자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면 교육생들이나 직원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자리도 넓고 편히 가는 분위기라 제각각 따로 앉게 되었다. 문득 신영복 선생님의 옥중서신 중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겨울에는 좁은 감방 내에 죄수들이 인간 난로가 된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길고 긴 겨울을 이겨낸다. 여름에는 반대로 서로의 체온이 감방 내를 지옥으로 만든다. 이 대목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옆 사람을 증오하게 되는 것이 지옥이라고 하셨다. 과연 맞는 말씀이다. 겨울을 나는 것처럼 체온을 나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해 본다. 편리와 편안함이 때론 사람 사이를 더 멀게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아무튼 같이 붙어서 대화도 나누고 좁은 좌석 내에서 부대끼며 갔으면 좋으련만, 널널한 좌석 상황 덕에 두 자리를 독차지하며 가게 되었다. 저마다 에어팟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유난을 떨었지만 나는 태연했다. 책을 보아도 좋고, 글을 써도 좋았기 때문이다. 뭘 좀 읽을까 하다가 글을 쓰고 싶어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 몇 자 쓰고 있다. 글로 쓴 기억만이 추억이 된다고 했던 강원국 작가님의 말을 떠올려 보며, 두 번째 직장 첫 야외행사의 소감을 적어 보고 있는 것이다. 기록이 추억이 되고 또 다른 의미를 낳게 될 것도 기대하고 있지만, 그전에 내게는 쓰는 일 자체가 놀이이며 즐거움이다. 흘러가 버리고 마는 시간을 글로 잡아둘 수 있음에 뭐랄까 나는 일종의 경건한 기분까지 든다.


진로 지도 교육 기관이라 그런지 교육생들은 사회 초년생들이 많고 이제 막 졸업한 대학생, 그리고 심지어는 청소년도 있다. 언뜻 보면 학생 같은 느낌도 든다. 내 앞에 앉은 두 교육생은 의자를 최대치로 뒤로 젖히고 앉아 롤 게임 방송을 보고 있다. 최근 고속버스에서 의자로 시비가 붙었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글을 쓰는 데 딱히 방해가 되는 건 아니라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몇몇은 잠을 자고 있고, 몇몇은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삼삼오오 앉은 사람도 있고, 홀로 앉아 가는 이들도 있다. 저마다의 인생 여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이제까지의 삶 속에서 꽤 길고 험난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일 테다. 나는 이들의 감독관도 아니고, 사무일을 도와주는 행정관도 아니다. 내게 허락된 이 시간 동안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 청년의 진로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거리이다. 최전방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새로운 만남 속에 서로에게 유의미한 도움을 주고받는 일터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앞 두 분.. 은 나중에 좀 친해지면 남을 배려하는 것부터 좀 알려 주어야 하나 싶다.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다. 취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다른 이를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창 밖으로 제주의 가을 날씨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자연경관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다. 제주의 오름들 사이에 아파트 산이 솟아 있으면 아름 다울 수 없다. 자연 속에 살며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 또한 자연스러운 인생을 꿈꾸며 내 인생을 살아 가리라 생각해 본다.


교육생들과 함께 지역을 방문하여 쓰레기도 줍고, 현장도 둘러볼 예정이다. 공식적으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음에 기대된다. 보고 듣는 것을 통해 또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목적지에 가까워 온 듯하다. 자, 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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