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만년필을 샀는데 벌써 11월이 되었다. 아침에 글을 쓰지 못한 날이 열흘쯤 되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에 글을 썼다. 아침은 나를 살리는 시간이다. 아침 첫 2시간은 나의 24시간을 움직이는 힘을 공급해 주는 시간이며, 나아가 인생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시간이 되었다. 내 안에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작은 어린아이는 어느새 조금 자라서 이제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있게 되었고, 누군가 조금 싫은 소리를 해도 끄떡없을 만큼 여유로움을 가지게도 되었다.
글을 쓰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오래 묵혀 두었던 내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늘 외면해 왔던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인생이 무한히 반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점차 깨달아가게 되었다. A5 노트 두 권을 다 썼다. 그러고도 온라인에도 글을 써서 올리고 컴퓨터 안에만 저장해 둔 글도 수십 수백 편이 된다. 내 안에 이만큼 많은 말이 있고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다들 사는 대로 살자.’ 고 생각하고 누르며 살아왔는데, 내 안에 이만큼 많은 말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때의 충격은 놀랍다는 말로는 이루 다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글로 내 인생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게 없는 능력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대신 내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진정한 힘은 자기 자신을 궁금해하는데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세상에 있는 수많은 능력을 다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탐구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이미 출간된 책 종류만 3억 1천만 권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마저도 십 년 전의 통계이니 지금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만 1년간 약 7만 권의 책이 발간되고 있다고 한다. 책뿐인가? 수많은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말과 글, 정보는 수도 없이 많다. 사회는 각종 능력을 요구한다. 코딩과 동영상 편집 바람이 불어오니 너도 나도 IT에 관심을 갖는다. 유행하는 것들은 끝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밖에 없고 유한한 인생 속에 그런 저런 것들을 다 채워 넣는다고 한 들 얼마나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인가. 세상에 퍼져 있는 지식을 책 발행 권 수로만 생각해 보기로 하더라도 그 많은 책들 중에 몇 권이나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쓰이지 않은 주제는 없고, 시도되지 않은 사업은 없다. 이미 누군가 했던 것이며 해 아래는 단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다.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은 세상에 좋다는 것을 다 그러모아 놓은 인생이 아니다. 유한한 인생에 더하기를 아무리 해 본들, 그것이 얼마나 커질 수 있겠는가. 정말 가치 있는 삶이란 더하는 삶이 아니라 빼는 삶이다. 빼고 또 빼서 단 하나만 남은 인생, 아니면 몇 가지만 남아 있는 인생, 그 인생이야 말로 살아있는 인생이며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루에 24시간,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인생이 무한정하지 않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해 준다. 열심히 살면 살수록 더 오래 살거나 하루가 늘어난다면 이것저것 채워 넣는 삶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충실하게 하루를 살아도 24시간은 모두 흘러가고, 언젠가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계속 더하기를 하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 인생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정말 멋진 인생은 돋보기가 모아내는 햇빛처럼 한 점에 몰입된 인생이다. 만능형처럼 보이는 사람도 한 점에 몰두한 후에 저변을 확대해 간 것이지 처음부터 여러 우물을 파지 않았다. 이도 잘해야 하고 저도 잘해야 한다고 하지만 단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내게 중요한 한 가지, 내가 나 일수 있는 그 한 가지면 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내게 없는 것을 갖추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있던 것이지만 딱 하나 새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라는 인생 그 자체이다. 내 인생은 아직 쓰이지 않은 책과 같다. 세상에 단 하나, 오직 내 인생만이 아직 시도되지 않은 새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내 그 삶을 살아야 한다. 저마다의 인생은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무목적으로 신음하는 현대사회에 퍼진 질병도 그 근원에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공허함과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다. 끊임없이 사회적 표준을 좇아 살아본들, 우리는 남이 됨으로써 자신을 채울 수 없다. 길가에 피어있는 하찮아 보이는 들풀은 화려한 해바라기나 코스모스를 시샘하지 않는다. 들풀은 들풀이고,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이다. 인간인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나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표준, 보이지 않는 가치가 아닌 나만의 삶의 이유를 찾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상품처럼 같지 않다며 스스로 상품이 되고자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에 단 한 점도 같은 미술 작품은 없는 것처럼, 나도, 우리 모두도 그러하다. 모든 사람은 상품으로써가 아니라, 작품으로써 고유한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
글을 쓰면서 내가 되어 간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굉장한 관종인 내가 온라인에 쓰는 글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습관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쓰는 글이다.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이, 의식 저편의 글들을 손으로 받아 적어 내려 간다. 이 글들은 ‘나’라는 사람 그 자체이며, 내 안에서 울리는 나의 소리인 것이다. 지우고 또 지워서 희미해졌던 나라는 사람이 아침마다 사각이는 만년필 소리와 함께 선명해지고 살아났다. 글로 자신을 표현해 내는 능력은 덤이다.
글을 쓰면 자신을 알게 된다. 남들처럼 살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쓰려면 읽게 되고, 읽으면 생각이 바뀐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뀌게 된다. 당장 펜을 꺼내서 단 한 줄이라도 글을 써 보라. 어떤 주제든 좋다. ‘나’에 대해서 한 줄을 써보는 건 어떨까. 쓰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23.10.29 아침에 쓴 글.
나의 하루는 22시간이다. 매일 2시간은 따로 떼 둔 일에 사용한다. 누군가 시간을 내어달라고 요청하거나 왠만큼 몸이 아픈 경우에도 이 따로 떼 둔 시간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아니, 애초에 내어줄 수 없다. 타인에게 이 시간은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고, 심지어 새벽이기 때문이다. 내 삶은 여기서 시작된다. 새벽녘, 동트기 전 가장 고요한 시간을 누리고 아름다운 고요 속에 머문다. 만년필을 꺼내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간밤에 꾼 꿈, 며칠간 고민하고 있는 사안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 그것도 아니면 무엇이든 쓴다. 일종의 청소 작업이라고나 할까. 씀으로써 정신을 청소하고 깨운다. 생각지 않고 쓰기 때문에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되고, 보여주고자 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가감 없이 솔직하게 쓸 수 있다. 나만의 글감 창고이며 원고가 모이는 것이다. 나의 역사가 기록되는 것이며 모든 고민의 흔적이 남는다. 그날그날 생각하지 않고 써나가기 때문에 항상 귀중한 것, 마음속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글이 되어 나온다. 시간이 흐른 후에 글을 다시 읽으면 새롭다. 나의 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의 모양이 보인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안 보이지만, 얼마간 애쓰면 다음 내디딜 걸음 한 발 정도는 보이기도 한다. 글 쓰는 이 시간이 참 좋다. A5 노트 한쪽을 빼곡히 메우고, 어떤 날은 두장이 되기도 한다. 연간 400쪽 정도 되는 것 같다. 10년이 모인다면.. 그야말로 나의 대 서사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날짜별로 예전 기록을 보는 일도 새로운 즐거움이다. 한쪽을 채우는 데는 30분 남짓 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는 경우에는 30분간 두 페이지 가까이 쓰기도 한다. 쓰고 나서 남은 1시간 30분은 읽는다. 성경, 문학, 실용서 등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읽는다. 독서의 질도 시간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에는 첫 시간의 독서가 가장 효율이 높다. 긴 호흡으로 읽어나간다. 읽은 내용이 하루 종일 또 다른 생각을 만들고, 거기서 또 다른 행동, 다른 결과가 생겨난다. 첫 시간을 읽고 쓰는 시간으로 두어서 그런지, 일과 중에도 내 머릿속은 읽는 일과 쓰는 일로 가득 차 있다. 틈나는 대로 읽는다. 전자책으로 읽는다. 점심시간에 20분, 중간중간 5분씩, 그러다 보면 더 읽게 되고 어느새 나의 핸드노트에도 생각거리와 성장의 기록이 생긴다. 나의 아침 2시간은 ‘나’라는 배가 항해하는 데 필수적인 방향타 역할을 한다. 하루를 이끌고, 나아가 삶 전체를 끌어가는 시간이다. 나는 아침을 잃는 것이 무섭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긴긴 술자리에 간다든지, 새벽까지 깨어있는다든지 새벽에 방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새벽이 없으면 망가진다. 삶이 흘러내린다. 누구도 나의 단순을 방해하지 못한다. 내 하루는 22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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