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과 인생

자투리 시간에 관한 단상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

by 정필

비는 시간이 없었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남는 시간이 생긴다. 물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종도 있다. 그리고 평소에는 바쁘지 않은 직종이라 할지라도 특별히 바삐 움직여야 하는 때가 있다. 몇 가지 예외를 인정하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비어있는 시간이 생기게 된다.


흔히 '자투리 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시간에 뭐라도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시간을 한 톨도 남김없이 잘 사용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다. 일을 하다가 잠시 짬이 나는 10분간 다음 주 예정사항을 한 번 더 검토한다든지, 아니면 기존 보고서를 한 번 더 본다든지 하는 것이다. 혹은 점심 식사 후 휴식 시간에 책을 읽는 등의 행동을 통해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최근에 자주 언급되는 '갓생' 살기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출근길 대중교통에서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강의를 수강한다든지, 자격증 시험공부를 한다든지 하는 행위가 이에 포함된다. 또는 번잡한 출퇴근 시간을 피해 출근 몇 시간 전에 회사 근처에 도착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의 행위도 포함될 수 있다. 나 또한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간 사용에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게 된다. 진정 문제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이 자투리로 존재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 따르면, 직장인의 평균 집중시간은 단 3분이라고 한다. 세상에 3분 만에 끝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일을 할라치면 3분 안에 또 다른 일을 누군가 요청하거나, 전화를 받거나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업무에 진득이 달라붙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평균 집중 시간이 3분이 된 것일 테다. 그 무수한 3분들 사이에서 잠깐 짬이 나는 시간을 자투리 시간이라 부르고, 그동안의 나는 이 자투리 시간에 '뭐라도' 하기 위해서 애써왔다. 그러나 오늘은 과연 이것이 바른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본다. 쪼개진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시간을 덩어리로 확보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판을 뒤집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주의력은 제한된 자원이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흔히 요구되는 사회이지만,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실제로는 이 일에서 저 일로 옮겨 다니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상당 부분의 주의력이 옮겨 다니는 데 소모되어 버린다. 그래서 집중해서 하나씩 차근차근했더라면 더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을 수 있을 일도, 그보다 낮은 수준인 어찌어찌 처리되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수많은 3분'들 사이를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 나면 퇴근할 때쯤 드는 기분이 이렇다. '하루 종일 바빴는데 도대체 뭐 했지?' 하는 것이다. 주의력이라는 힘이 한곳에 집중되어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사용되지 않고 다 흩어져 버린 결과이다. 힘을 썼으니 피곤하기는 한데, 힘이 한 곳에 모이지 않으니 결과가 없다. 내가 바라는 삶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삶이 아니라, 단 한 가지를 하더라도 몰입하는 삶이다.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이다. 하루 24시간을 수십, 수백 개의 단위로 쪼개어 놓으면 어느 한 곳에도 쌓이지 않고 모두 흩어져 버린다. 집을 짓는다고 생각해 보자. 한 곳에 기초 공사를 하고 돌을 하나씩 하나씩 올려 가야 시간이 지나 집이 완성될 것이 아닌가? 만일 기초 공사 한 삽을 뜨고 또 다른 데 가서 한 삽을 뜨는 식으로 계속 한 삽씩 뜨러 돌아다니면, 어느 세월에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대중매체에 나오는 전문가들을 보아도 그렇다. 모두 자기 분야를 파고 또 파내려 간 결과로 전문가가 된 것이지, 여기저기 기웃거려서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니다. 흔히 다방면의 전문가로 불리는 분도 한 번에 하나씩 정복해 나간 것이지 동시에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다. 한평생 보내는 시간이 모두 조각나 있는 시간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삶이 모두 흩어져 버린 것이라는 무서운 증거가 아닐까. 내 삶엔 그런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가 끝날 때쯤 바쁘게 살았던 하루를 돌아보며 '아 오늘 바쁘긴 했는데 뭐 했지?' 하는 생각을 인생의 막바지게 하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큰일이다. 지나간 하루는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지나가버린 인생은 두 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다 조각나 있다. 이게 문제다. 도무지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다. 한 가지 업무를 하는 와중에도 전화를 받아야 하고, 여러 사람의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1시간 정도 집중하면 끝낼 수 있는 일인데, 중간에 곁가지로 들어온 일을 하나둘씩 받아내다 보면 이도 저도 끝내지 못하게 된다. 한 가지에 집중하고 싶다. 돋보기로 모은 빛도 한 점에 모일 때 종이를 태울 수 있는 것이다. 빛을 자꾸 흩으면 어느 것도 태울 수 없을뿐더러, 데울 수조차 없다.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일에 아무리 몰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투리 시간은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아무리 알차게 보내려고 애쓴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주의력을 해치는 결과만 불러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일하기에는 일반 사무직이 부적합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이 조각나는 일은 일터 외에서도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비단 일에만 국한시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삶 전반이 조각나 있다. 멀티 태스킹을 장려하기까지 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만 떠올려도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영상을 보면서 웹툰을 보는 사람도 있다. 카카오톡을 보내다가, 웹 서핑을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핸드폰을 확인하는 일 자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서 주의력을 뺏아가는 것은 당연하고, 핸드폰을 하는 도중에도 이 일에서 저 일로 뛰어다니며 주의력을 소모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 상태다. 핸드폰에는 역기능뿐 아니라 순기능도 많이 있으니 무작정 사용하지 않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다만 기술의 방향이 사람들의 집중력을 흩어놓는 형태가 된 것이 문제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대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확실한 나의 전문성을 갖고,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해야겠다. 당장 조각난 시간을 모두 덩어리로 뭉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되, 뭉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덩어리로 확보하여 한 두 가지 중요한 일에 쏟아붓는 연습을 해야겠다. 단번에 이상적인 상태로 갈 수 없다면, 현 상황에서의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이 현명할 것이다. 근무 중에 여러 사람의 요청을 무시하고 귀에 헤드셋을 꽂고 일할 수는 없으니, 집중이 필요한 경우에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는 시간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넘나들며 주의력을 쓰기보다는 한 두 가지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겠다.


몰입된 힘, 한 점으로 모이는 에너지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 잘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 욕심은 단 한 톨도 없다. 나는 그저 내게 있는 것에 순수하게 몰입하고 싶을 뿐이다.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 있다. 일과 삶을 고민하며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가고자 한다. 흩지 말고 모으자. 열 가지를 기웃거리기보다 지금 하는 한 가지에 빠져들자.


사실 오늘은 좀 조용하다. 짬이 나는 시간에 몇 자 끄적여 볼까 하다가 글을 쓰게 되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덩어리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중간에 전화가 몇 통 오기는 했지만 일단 한 편을 쓸 수 있었다. 가만 보면 글 쓰는 일과 나의 욕망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몰입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에 몰두하고 싶다'는 욕망 두 개를 모두 충족하는 것이 글쓰기인 것 같다. 글쓰기가 좋아서 삶도 글쓰기처럼 살고 싶어진 건지 아니면 몰입하고자 하는 열망이 글쓰기라는 도구를 만나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렴 그런 건 중요치 않다. 확실한 하나의 사실은, 앞으로도 나는 중요한 한 두 가지를 생각하고 에너지를 쏟아붓는 인생을 살 것이라는 점과 호흡이 있는 한 글을 계속 쓸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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