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매듭씩 묶어 두기.
또 한 매듭짓는다. 어느덧 올 한 해도 이틀이 채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만을 살며 매듭지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조금 더 큰 단위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기도 하니 더 큰 매듭을 묶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며 폐 속에 한 해를 가득 머금어 본다.
시간에 단위가 있어서 다행이다. 단위가 있든 없든 사람은 현재의 순간만을 살아갈 수 있을 뿐이지만, 단위가 있기 때문에 각 시간 단위가 변할 때마다 한 매듭지으며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이라는 구분이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만 한다면 어떨까. 해가 뜨고 지는 일, 하루를 지내고 잠자리에 드는 일, 새 아침을 맞는 일이 없다면 삶은 어떤 모양이 될까. 매듭이 없는 한 묶음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풀릴 것 같이 위태롭다. 뜨고 지는 매일의 태양이 하루하루를 견고하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처럼 여겨진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하루를 매듭짓고, 눈 떠서 펜을 뽑을 때마다 새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이 365번이 되니 꼬박 1년이 되었다. 매일매일 매듭지었던 수많은 하루들을 모아서 한 데 매듭을 잘 짓고 내년으로 가야겠다.
이번 한 해는 변화의 해였고, 삶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해였다. 아내와 함께 가정을 이루어 가족이 되었고,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 끝에 의미와 보람을 찾아 모험을 택했다. 결혼과 퇴사, 그리고 이직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 삶의 방식을 재정립하게 되었다.
이전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뻔히 보이는 삶.’이었다. 이 삶을 길에 비유하자면 수많은 사람이 다니는 대로일 것이며,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삶이었다. 내가 원하고 바랬던 삶이라기보다 다 같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걸었던 길이었다. 사회가 정해 둔 표준을 따라 살았고, 거절보다는 승낙하는 삶이었다. 남과 다르더라도 나만의 길을 가는 일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남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중요했다. 지켜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NO’라는 말보다는 ‘YES’라는 말을 많이 하며 살았다. 환경이 나를 이끄는 대로 살았다. 점차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꽤 열심히 순응하며 살았다. 무리 속에 나는 꽤나 나이스한 사람이었고, ‘보통 사람’의 대열에는 어렵지 않게 합류해 살아갈 수 있었다.
삶에는 표준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대량 생산된 상품은 한 두 가지 주요 지표로 평가할 수 있다. 왜냐면 그들은 같은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은 고유하지 않기 때문에 표준을 만들 수 있다. 상품은 인격이 아니며 그것들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
인생은 이와 다르다. 표준이 적용될 수 없다. 절대적으로 나은 삶이 무엇인지도 말하기 어렵다.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와 명성을 얻고,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고급 자동차가 되는 데는 몇 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삶이라는 건 애초에 정의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나는 잘못된 출발점에 서서 내 인생을 타인이 만들어 둔 틀 속에 욱여넣고자 했다.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은 무리를 찾는다. 단지 수많은 사람과 같은 길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저마다 바라는 이상적인 삶이 적당히 분배되어 사회적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허나 이는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무지개를 좇는 것과 같아서 수많은 이의 저마다의 표준은 각 개인에게는 신기루를 좇는 것 같은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살아볼 만한 인생은 여러 사람이 가는 인생길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그럴싸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살아볼 만한 인생은 나로서 살아가는 인생이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수평선을 좇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인생이다. 삶에 있어서 진정 실패는 평생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고위 직책에 오르지 못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 실패는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 남이 살았더라도 전혀 다르지 않았을 인생이라면 내가 그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나는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먹고사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되면 삶은 빛을 잃어버린다. 흔히들 ‘배가 부르니까 그런 소리를 한다.’ 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순서이다. 저마다 먹고살만해지면 꿈도 찾아보고, 자신을 찾아 나서겠노라 다짐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먹고살만해져서 꿈을 찾아 나서는 사람은 보기가 어렵다. 지금 자신답게 살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먹고살고 난 뒤에 라고 생각하면 아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러는 동안 두 부류 간의 인생은 교차하는 대각선처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인생이란 곧 시간이며,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려 있다. 두 부류의 시간은 전혀 다른 방향에 투자되며, 그러는 동안 각 인생에게 허락된 시간은 점차 줄어든다. 때문에 훗날 길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이미 살아버린 시간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도 돌아오기 힘든 것이다. 평생 무지개를 좇아 다니다 허락된 시간을 모두 사용한 다음에 무지개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겠는가.
올 한 해 나의 삶은 교차점에 있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아내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흐르는 대로, 환경이 나를 이끄는 대로 살아갈 수만은 없었다. 아내와 나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해 보이는 대로를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이 아득한 터널에 들어섰다. 자기를 찾는다느니, 꿈이라느니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모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우리 부부의 꿈은 다르게 사는 것이다. 다름이란 곧 고유함이며, 삶은 고유하기 때문에 빛나는 가치를 갖는다고 믿는다.
때로는 긴 터널의 초입부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지금에라도 원래 대로로 돌아가야 하는가 싶은 생각도 종종 든다. 그러나 점점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우리는 돌아나갈 길조차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돌아간다는 선택지마저 지워질 것이다. 때로 어둡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고 주변에는 함께하는 사람도 적어 두렵겠지만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이 길 끝에 있는 또 다른 출구로 나가보려 한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면 끝나는 마라톤과는 달리, 모험의 여정은 모험한 만큼만 자신의 여정이 되기 때문이다.
‘정답’ 이라든지 ‘표준’은 없지만, 지금 삶을 살면 살수록 더 선명해지는 나를 느낀다. 이 길 위에서 나는 글을 만났고, 기존의 일터를 떠나 새롭게 기여할 수 있는 곳을 만나게 되었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글은 또 다른 글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걷고 있다. 함께 대로를 걷던 사람과 이별하기도 했고, 새 길에서 동료를 만나기도 했다. 새로 걷게 된 이 길이 퍽 마음에 든다. 이쪽 길로 들어서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선택의 기로에서 다수의 길이라고 불리는 정답을 요구하지 않고 나를 믿어준 아내에게 고맙다. 믿어줄 뿐만 아니라 함께 이 길을 걸어 주어 감사하다. 우리 가족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만큼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모험의 길에는 때로 위험도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만 좀 괜찮아지면.’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현재를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나아질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티듯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감으로 미래를 빚어 나가고 싶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고통스럽지 않게 편리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곧 삶이다. 지금 속에 영원으로 향하는 통로가 있음을 알고, 이 순간을 전념하여 살아가고 싶다.
새 길에서 만난 나의 동료, 글쓰기도 함께 할 것이다. 글 쓰는 미래를 현재 속에 넣어두기 위해서 오늘도 글을 쓴다. 내일의 재료는 오늘이며, 바라던 미래는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이라고 부르는 시간 속에 내가 바라는 삶의 모양이 없다면, 원하는 미래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글 쓰는 내가 참 좋다. 지금 쓰는 글이 내일의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믿으며 글을 쓴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좋다. 가장 바보는 모든 일에 대해서 다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답은 별로 못 갖고 있어도 질문을 품고 사는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새해에는 아내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날 것이고, 글도 하나 둘 쌓여갈 것이다. 많은 만남이 있을 것이다. 나는 24학번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코치가 될 것이다. 또 글쟁이로 살아갈 것이며, 아빠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년 이 맘 때는 올해보다 더 많은 글을 가지고 있겠지 기대가 된다. 오랜 기간 글을 멀리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 글을 다시 만나니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이 즐겁다. 글쟁이로서 대단한 재능까지는 못 되어도 글 쓰는 즐거움이 있으니 되었다. 그리고 작은 재능이라도 그것을 갈고닦는 것만이 내 몫임을 알기에 남이 가진 보석을 부러워하기보다 나의 것을 잘 갈고닦아보려 한다. 분명 나만이 써야 하는 글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얼기설기 한 해를 매듭지어 본다. 시간과 시간의 경계에 서 있을 때면 늘 떠올리는 한 단어가 있다. ‘끄트머리’라는 말이다. 끝과 시작은 맞닿아 있다. 오늘 맺고 내일부터는 또 새 국면이 시작된다. 올 한 해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잘 매듭짓고 모레 시작될 한 해를 새로 맞는다. 뻔히 예측되지 않지만 가고 싶은 길이 있음에 기분 좋은 설렘이 나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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