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명함 한 장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미리 명함에 담아 보았다. 남이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고, 조직의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스스로 내가 누구인가 고민했고, 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아 명함을 한 장 만들었다.
내가 되고자 하는 나의 첫 번째 모습, 내게 주고 싶은 또 다른 이름은 ‘작가’이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이다.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점점 더 글을 쓰기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점점 그 삶이 한 권의 책이 되어가는 사람이다.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수한 가능성이다. 젊은이에게는 많은 문들이 모두 열린 채로 ‘가능성’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은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어린 시절, 힘이 넘치는 청년 시절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젊음은 가능성의 시기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러나 영원한 젊음은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을 열어 둔 채 살아가는 사람은 가능성이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길로도 나아가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만다. 청년은 가능성을 마음껏 탐색하고 누릴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어느 문으로 들어갈지 결정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퇴사를 결심했던 이유는 이 길이 내가 들어가야 할 문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임과 동시에 나도 나만의 문을 찾아 들어가야겠노라 다짐했기 때문이다.
청년은 가능성 자체로 아름답지만, 가능성은 용기를 만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모든 문을 열어 두는 것은 얼핏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인생이다.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기가 없다는 뜻이다. 확실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가능성을 그대로 가능성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으면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때가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내가 살아야 할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삶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용기 있게 선택한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참 아름다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살아갈 수도 있었을 수많은 삶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단 하나, 자신이 선택한 인생만이 자신의 인생인 것이다. 이는 글을 쓰는 것과도 매우 닮아 있다. 쓸 수 있었을 모든 글이 나의 글이 아니며, 내가 쓴 글만이 나의 글임을 생각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모든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평생을 산다면 그는 작가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가능성조차 잃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글을 쓰면서 삶도 이와 유사하다는 것을 배웠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삶을 찾기 위해서는 가능성의 문들을 하나씩 닫아야 했다. 여전히 문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선택한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 그 길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삼십여 년간 글을 멀리 하고 살았지만 어쩐지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이라는 이름이 적힌 문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이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길로 쭉 가보려고 한다. 이 길이 어느 길과 맞닿아 있는지 어느 곳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내가 써야 할 한 문장이 어떤 것인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알 수 없다.
원석 상태의 보석은 그저 돌멩이로 보일 뿐 무슨 보석인지 알 수 없다. 원석을 제련하여 다듬어야 비로소 어떤 보석이었는지 알 수 있고 그때서야 값어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삶도 이와 매우 유사하다. 모든 가능성을 그대로 남겨 두면 원석의 인생을 사는 것이지만 몇 개의 가능성을 선택해 용기 있게 살아간다면 언젠가 보석의 인생을 살게 된다. 내게 있는 재능이 무슨 보석이 될지는 모른다. 모두가 잘 아는 다이아몬드일 수도 있고 별로 알려지지 않은 보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만 내 몫의 원석을 가공할 수 있을 뿐이다. 가공하기 전에는 알 수도 없고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만이 내 것이다. 잘 가공하면 이는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써, 제련이 완성된 보석은 유일무이한 가치를 갖는다.
‘글’이라는 이름이 적힌 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다’는 원석 한 덩어리를 손에 쥐었다. 이 문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 중이며, 원석을 갈고 다듬어 보려 하는 중이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써야만 하는지는 글에게 물을 것이다. 보아하니 이 길은 쓰면서만 나아갈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내 삶이 한 편의 글이 되면 좋겠다. 내가 선택한 이 삶보다 더 오래 글이 남아서 세상에 널리 기여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작년 이맘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삶의 갈증을 만났고, 무엇이라도 써야 했다. 출근하기 전 카페에 앉아 썼고, 밤늦게 썼다. 불안할수록 더 열심히 썼다. 쓰면 쓸수록 희석되어 있던 나라는 존재가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전엔 물 같은 존재였다면, 지금은 만년필 잉크같이 진한 존재가 되었다. 표준의 인생, 평균의 인생을 좇아 살지 않을 생각이다. 어차피 남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남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나만이 살 수 있는 인생, 나만이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찾고 있으며, 글로써 내가 써야 하는 한 문장을 찾고 있다.
실은 퇴사 직후부터 명함을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내면의 검열관이 나를 막아섰다.
‘글 쓰는데 명함이 왜 필요해?’
‘명함이란 건 결국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건데, 만들어서 누구 줄 건데?’
‘돈도 안 벌고 있으면서 괜히 돈 아깝게.’
‘사람들이 널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겠어?’
글 쓰는 데는 명함이 필요 없다. 다만 글 쓰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는 데는 명함이 필요하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에 맞는 사람이 되어 가기 위해서 명함이 필요하다. 나는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으로 정의했고, 작가가 되고자 한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미래는 오늘 글을 쓰는 내 삶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나의 명함은 내가 나아갈 길의 이정표 역할을 해 주며 지금 속에 와 있는 미래를 붙잡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타인이 부여한 울타리가 아닌 내가 정의한 나의 모습이 바로 내 명함이 되었다. 누구에게 건넬 일은 없을지 모른다. 제일 먼저 내게 건넬 것이라 생각하며 만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건넬 일이 얼마나 있을지. 실제로 명함을 만들 때는 누구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최근에 몇몇 분에게 나눠 드릴 기회가 생겼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나는 내가 그리는 모습대로 살아갈 것이다.
명함을 만들고 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작가’ 놀이하는 거냐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비웃는 사람에게는 놀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습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의견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우습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명함을 수정하여 새로 만들 예정이다. 문 하나를 골라 초입에 들어섰으니 내가 가진 원석의 형태도 점차 보석의 모양이 되어갈 것이다. 변하는 모양에 따라 나도 더 구체적으로 나를 정의하게 될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살고자 하는 인생은 무엇인가 물으며 이 문 너머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보려 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서도 바라는 미래를 미리 명함 한 장에 만들어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