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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yton Jun 06. 2018

검은 옷의 신사숙녀

Madame X and The Skating Minister


색채와 형태의 유사성에 의해서 전혀 다른 두 개의 작품이 쌍으로 기억될 때가 있다. '마담 X의 초상'과 '스케이트를 타는 목사'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마담 X의 초상은 사전트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화가의 명성뿐 아니라, 정형적인 미인과는 다소 거리가 먼 기묘한 매력을 가진 모델로도 유명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인 화가의 대담함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작품이기도 하다. 스케이트를 타는 목사는 2006년 스코틀랜드 여행 중 알게 되었는데, 미술관 순환 버스 홍보물에 인쇄된 그림을 보자마자 반해버려서 여정에 없던 에든버러 국립미술관을 찾아갔다. 이후로는 스코틀랜드 하면 떠오르는 초상화가로 각인되었다. 실제로도 스코티시 아트의 아이콘으로 상징성이 높은 작품이기도 하니, 나와 같은 인상을 받은 사람이 꽤나 많았나 보다.


Sir Henry Raeburn, Oil on canvas, 76.2x63.5cm, 1795


버스 팜플릿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고 있어서 색이 많이 바랬다. 이 녀석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스코틀랜드에 다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기대감이 무럭무럭 피어났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그 기대감은 실체화될 생각을 않고 있다. 여름이 끝난 직후여서 한산하던 미술관의 복도가 아직 눈에 선하다. 육중한 목재 액자로 가득 찬 미술관의 서늘한 공기에서 오래된 나무와 마른 물감 냄새가 났다. (왜 나는 공간을 냄새로 기억하는 걸까!)






Portrait of Madame X


사전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고 스스로 자신을 격찬했다고 한다. 작품의 모델이었던 고트로 부인(Virginie Amélie Avegno)은 원래 미국인으로, 프랑스인 은행가였던 피에르 고트로(Pierre Gautreau)의 결혼으로 프랑스의 사교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녀는 파리 사교계 데뷔 이전부터 뛰어난 패션 감각과 사교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스스로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이를 효과적으로 발산하는 방법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파리인들이 미인의 조건이라고 여기던 일반적인 통념을 과감히 무너뜨린 그녀의 스타일이 파리의 많은 예술가들과 사교계 인사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고토르 부인에게 매혹된 사전트는 그녀와 친분이 있던 그의 친구(Castillo)에게 뛰어난 실력을 보장하는 화가로 자신을 추천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기까지 했다. 사전트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뮤즈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지만, 고트로 부인은 대부분 거절했다. 아마도 자신의 이미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왜곡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실제로 사전트가 살롱전에 이 작품을 출품하자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이방인의 신분으로 시작해 파리의 최상위 계층에 진입하려 했던 두 이주자의 갈망이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일까. 1883년 로트로 부인은 사전트의 제안을 받아들여 훗날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 초상화의 모델이 되기로 한다.


John Singer Sargent, Oil on canvas, 235x110cm, 1884

*The Met Fifth Avenue, New York, US

*출처 :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러나 초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사전트는 수많은 포즈와 구도를 고민했으나, 고트로 부인은 활동적인 기질로 인해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 모델 역할을 하는 것을 굉장히 지루해했다. 그녀는 고집이 세고 완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이미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있어서는 완성된 원칙을 가진 까다로운 안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사전트는 초상화의 완결성을 위해 여러 장의 습작을 거듭할 정도로 섬세한 연출을 원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장신구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의견이 어긋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그려내기 위한 집념으로 사전트는 거의 일 년 동안 초상화에 전력을 다해 매달렸다.






사전트가 마담 X의 초상화의 완성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린 습작들


John Singer Sargent, Watercolor on paper, 35.5x25.2cm, 1883

*Harvard Art Museums © President and Fellows of Harvard College

*출처 : Harvard Art Museums



John Singer Sargent, Pencil on paper, 29.2x21cm, 1882

*Private Collection © Public domain

*출처 : WikiArt





1884년, 파리 살롱전을 통해 마침내 마담 X가 세상으로 나왔을 때, 파리 예술계와 대중은 큰 충격을 받았다. 미술가들은 날카롭게 작품을 비판했고,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인물을 묘사하는 대담한 기법과 특별하고 고혹적인 모델이 선사하는 관능미가 결합하여, 기존의 그 어떤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화가의 독특한 천재성이 세상에 드러났지만 시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종종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보편적으로 따르는 관습과 사회적 통념에 익숙한 대중이 낯설고 새로운 예술 세계를 수용하기 위한 진통이 거부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충격은 무방비로 서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거대한 의식의 파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트로 부인은 완성된 초상화를 보기도 전에 작품을 극찬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화가는 물론 자신에게도 일생일대의 걸작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현실은...


초상화가 전시되기도 전에 평론계에서는 작품의 비정형성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반응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고트로 부인은 자신의 초상화가 살롱 벽에 걸리자마자 곧바로 사교계의 스캔들 메이커가 되어 버렸다. 상심한 고트로 부인과 화가 난 그녀의 가족은 전시 첫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전트에게 출품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화가로서의 자존심과 작품에 대한 확고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전트는 이 요청을 딱 잘라 거절했고, 원래 고트로 부인의 초상이었던 작품명을 더 드라마틱하고 신비감이 가미된 마담 X로 변경하였다. 또한 처음에는 어깨에 반쯤 흘려내려 있던 오른쪽 어깨끈(모델 기준)을 끌어올리는 형태로 수정했다. 이는 전체 구도와 균형감을 맞추어 작품이 더 단단하게 보이길 바랬던 것일 수도 있고, 세간의 이목이 인물의 선정성에만 집중되는 것을 피해 고트로 부인과 그 가족들의 불편한 심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한 번 추락한 화가의 평판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져 내렸고, 심지어 아무도 그의 작품 속 모델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고트로 부인의 초상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가 기꺼이 제2의 마담 X가 되려고 했겠는가. 그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었겠지만 고트로 부인 역시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각종 루머에 시달렸다고 한다. 등 돌린 대중과 평론단의 계속된 혹평을 견디지 못한 사전트는 결국 짐을 꾸려 런던으로 떠나버렸다. (파리에 남아 사교계의 팝콘이 된 고트로 부인은 그저 황당할 뿐...)






The Skating Minister

Reverend Robert Walker (1755 - 1808) Skating on Duddingston Loch

Sir Henry Raeburn, Oil on canvas, 76.2x63.5cm, 1795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Edinburgh , UK

*출처 : Scottish National Gallery


내게는 영원한 마담 X의 메이트인 '스케이트를 타는 목사'이다. (원제는 더딩스턴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로버트 워커 목사) 공식적으로는 초상화가 핸리 래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국립미술관에서도 그의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왜 '공식적으로'라는 수식어가 붙는가 하면, 2013년 BBC를 통해 이 작품의 실제 작가가 따로 있다는 의혹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기사가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아래가 이 작품의 작가인 핸리 래번의 기법과는 다른 점이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발견되었다는 기사 내용의 일부다.


The X-rays failed to show lead-white paint in the face, making it inconsistent with Raeburn's other work. (...) Raeburn was known to use lead-white paint to underpaint the faces of his portrait subjects, which should have shown up clearly in the X-ray.

엑스레이 촬영 결과, 래번이 그린 모든 작품에서 발견되는 백연 물감이 발견되지 않았다. (중략)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에 색을 입히기 전에 늘 백연을 칠했다.


연구원들의 조사에 따르면 1000여 점에 달하는 래번의 작품 중 백연이 사용되지 않은 작품은 이 작품 단 하나뿐이다. 에든버러 대학의 학자들은 엑스레이 촬영의 연구 결과에 따라, 이 작품의 진짜 작가는 앙리 피에르 당루(Henri-Pierre Danloux)라고 주장한다. 당루는 18세기 말, 파리에서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최상위 계층의 귀족 가문에 의뢰받은 초상화를 그렸던 화려하고 섬세한 기법을 가진 화가였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신변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되자, 그는 1792년 런던으로 건너와 에든버러에 정착했다. (반면, 작품을 소유하고 있었던 로버트 워커의 가족은 핸리 래번의 작품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가 알겠는가. 래번이 수많은 작품 중 딱 이 작품에만 흰색 칠을 하는 과정을 실수로 빠뜨렸을 수도 있고, 또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많은 전문가와 미술사학자들이 의구심을 품고 작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으나, 알려진 진실을 뒤집을 만큼 타당성이 높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여전히 이 그림은 핸리 래번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진짜 작가가 누구든 간에 한겨울, 이렇게 경쾌한 몸짓과 단정한 옷차림으로 하얗게 언 호수의 빙판을 가르는 목사의 모습은 언제 봐도 참 즐겁다.


*기사 인용 : BBC Scotland






이후 사전트와 고트로 부인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한 사람은 런던에서 또 다른 화풍을 선보이며 거장으로서의 새로운 명성을 쌓아나가기 시작했고, 다른 한 사람은 파리에서 같은 포즈로 다른 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7년 후 구스타브 쿠르투아(Gustave Courtois)의 손 끝에서 고트로 부인은 새로 태어난다. 그림 속 그녀의 드레스 오른쪽 어깨끈은 여전히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고, 다시는 수정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Madame Gautreau


Gustave Courtois, Oil on canvas, 62x58.5cm, 1891

Musée d'Orsay © Public domain

출처 : ArtHistory


사전트의 작품을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원석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바깥에서 안으로 조각해놓은 대리석 조각에 비유한다면, 쿠르투아의 작품은 신체의 각 부위를 따로 조각해 접합부를 정교하게 다듬어 조립한 것 같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불균형의 조화라고 부르고 싶다. 얼굴에는 기품과 교양이 넘쳐흐르도록, 쇄골 아래의 가슴과 어깨로는 창백한 피부를 노출시켜 성적 매력을 부각했다. 드레스를 잡은 팔의 어깨에서부터 손가락까지 떨어지는 곡선은 물 흐르듯 부드럽고, 철저한 계획에 따라 걸친 듯한 상아색 진주 팔찌와 은은하게 빛나는 반지는 여신의 장신구 같다.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는 고트로 부인의 사회적 계층과 정제된 태도가 완벽한 여성상에 가깝게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신화 속 나체의 여신처럼 신격화되어 풍만한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관능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쿠르투아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사전트의 작품이 물리적인 노출도가 더 낮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성적 매력(나는 마력이라고 부르고 싶다)을 물씬 풍긴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여인의 도도한 턱에서부터 코르셋으로 조여 꼿꼿이 세운 가는 허리. 긴 다리를 덮은 검은 드레스를 지나 반짝이는 구두코 끝까지 내달린 여과되지 않은 도발. 만약 사전트가 고트로 부인의 초상을 Madame이 아닌 Sir로 성별을 바꿔 그렸어도, 그 관능미는 내 오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여성성이 아닌, 피사체만이 가진 인간성을 작품에 투영하는 방식이다. 공동체로서의 인간은 여러 집단에 속해 동일한 정체성과 목소리로 신념을 외치고 이를 하나 된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고유한 인간성은 단 하나뿐이며 다른 인간의 그것과 섞일 수 없기에 때로 화가는 섬세한 공학자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피사체를 발견할 때마다 그 인물의 인간성을 작품에 대입하는 공식을 찾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공식에 따라 그들이 가진 유일무이한 개성이 작품에 투영되고, 어떤 개성은 복잡한 공식을 반복해서 거치면서도 분해되지 않고 본래의 원형(Archetype)을 간직한다. 이 원형이 온전히 보전된 작품일수록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들의 발걸음을 묶어두는 흡입력이 강하다. 야망을 가진 초상화가가 오직 자신만이 아는 공식에 따라 작품에 설치한 수학적 장치. 굳이 이름을 붙여 '시선의 덫'이라고 부른다면 너무 낯간지러우려나. 그러니까 내가 사전트와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숱한 고트로 부인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제목의 시를 써서 그녀에 대한 흠모의 감정을 드러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오….  마담 X, 영원한 나의 시선 강탈자!'



[참고 자료]

Madame X Story-Theme / Artble.com

Debauched: Atypical Depictions of Female Agency and Gender Roles in Madame X by Khali Coulter / Arthitory.us

Reverend Robert Walker (1755 - 1808) Skating on Duddingston Loch / Scottish Nationa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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