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yton May 24. 2018

별은 나를 위해 빛나지 않는다.

도우루 강의 다리 위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나선 산책길의 밤바람은 그리 차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 도우루 강위의 철교를 이따금씩 지나가는 전철에도 단지 몇 사람만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지만, 1996년 구도심인 역사지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어 오고 있기에 긴 역사를 가진 유럽 소도시의 예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도시의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밤하늘의 별이 온전히 드러났다. 오후에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뒤라 가을밤의 공기는 더 맑고 투명해졌다. 저 멀리 까만 산의 구릉이 하늘에 닿는 짙푸른 경계와 달과 구름이 서로 비껴 지나는 길목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주 화려하진 않지만 하늘을 향해 뻗은 작은 조명들이 구석구석 설치되어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달빛에 일렁이는 도우루 강을 등지고 철교 난간에 기대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스카프를 고쳐매며 종종걸음을 옮기는 아주머니의 장바구니 속이 궁금했고, 멋스러운 베레모를 쓴 할아버지의 소매 끝을 붙잡고 이 마을에 얼마나 사셨는지 묻고 싶었다. 그들을 보며 다른 사람이 그리웠던가 하고 돌이켜 보라 하면.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나는 포르투의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달무리를 일으키던 바람의 흐름 말고는 아무것도 그날밤의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Dom Luís I Bridge, Porto. Portugal
Episcopal Palace, Porto. Portugal


DNA에 각인되어 있는 원시의 수렵과 채집 본능 때문일까.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굳이 사냥을 할 필요가 없는 지금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이따금씩 주변에 남겨지는 체취를 지워버린다. 인식하지도 못한 채 카멜레온의 피부 같은 보호색을 띠고 환경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리하여 같은 공간에서도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각자의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할 수 있게 된다. 거창하게 말하면 사색의 시간, 위대한 생각의 발원지가 될 수도 있겠으나 내게는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하는 과정에 찾아오는 잠깐동안의 안온함일 뿐이다. 마법같이 찾아오지만 정작 그 순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역설의 시간.


Douro River, Porto. Portugal
Douro River, Porto. Portugal


숙소에 도착하자 오랜 기차 여행의 피로로 일찍 잠자리에 든 친구가 일어나 있었다. 포르투의 밤하늘에 이끌려 그도 한참을 창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 강가의 야경은 좋았는지 물었다. 다리 위에 홀로 서 있던 그 시간은 쓸쓸했지만 충만했으며 낭만적이었으나 구슬펐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일상의 언어로 바꿀 방법을 찾지 못해 그저, 특별하진 않았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했다.


우연히 닿게 된 장소에서 홀로 오롯이 '발가벗은 나'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 그러면 내가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 소중히 하라- 속삭이지. 가만히 토닥여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


Funicular dos Guindais, Porto. Portugal


일상에 부여하는 특별한 일탈, 현상을 보는 다른 시각, 세상의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는 평범한 이유 아래 가려져 있던 나머지 절반의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의 영혼을 진정으로 보듬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오늘 여름휴가 비행기표를 찾아보면서 문득 왜 때가 되면 이 엄청나게 귀찮고 신경 쓰이는 여행의 과정을 다시금 반복하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에 대한 답을 빈약한 단어의 조합으로나마 정의해본다. 낯선 곳에서 맞는 처음의 밤마다 별은 나를 위해 빛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에, 스스로 빛나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강을 지나는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