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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yton May 16. 2018

강을 지나는 봄

낡은 배에 스미는 물이 바닥에 차서 찰박거리는 것도 모르고 아이는 강 너머로 흐드러진 벚꽃을 보고 있었다. 대지를 향해 몸을 떨구던 꽃잎이 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마지막으로 날아올라 산과 들을 적시며 사그라지는 전경. 그 계절을 새까만 눈동자에 빼곡하게 채워 넣는다. 어느 고목의 몸통에는 제법 깊은 구멍이 있고 정수리가 붉은 둥지 주인이 연신 입구를 들락날락한다. 아이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점처럼 보이는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조바심을 내며 봄의 향취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사내는 아이의 정신이 먼발치로 달아날 때의 눈을 마주하면 바로 옆에 있던 아이가 한순간 둘로 쪼개진 세상 저편으로 넘어가 버린 것 같았다. 제 자식을 가져본 적 없는 사내는 그 또래의 다른 계집아이들도 원래 그러한가 궁금하였으나, 엉겁결에 집에 들이게 된 식솔 아닌 식솔이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 부담스러워 주변에 따로 묻지는 않았다. 여식을 가진 아비들은 그네들을 출가시키기 전까지, 시시때때로 이런 심정이 되는지 의아해했다. 그리고 짐작 끝에 정말 그렇다면 그 아비들은 정말로 동정할만한 처지라 여기게 되었다.



“산천은 인간 보기에 고우라 그리 생긴 게 아니다.”


“… 예?”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제 아홉 살을 넘겼다는 아이의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사내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강 건너로 눈길을 던진 아이의 둥근 이마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아이의 무구함이나 그런 아이의 처지를 모른 척해야 하는 자신의 무심함이 야속해 불쑥 속이 끓어올랐다.


'약초꾼이 화병에 걸려 제 발로 산을 타고 약초를 뜯어 약을 달이면 병이 나을까 도질까?'


칠 년 전 역병이 돌았을 때, 오래된 위병 때문에 잘 먹지 못했던 홀어머니는 증세가 나타나고 보름을 앓다가 세상을 등졌다. 며느리 들이는 것도 못 보고 떠났다고 이웃 진안댁은 말 없는 상주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해 가을에 혼인하기로 말이 오가던 약방 조 씨의 둘째 딸은 역병을 피해 남원 고모네로 피신 갔다가 중매가 들어와 그곳에서 머리를 올렸다 했다. 사내는 크게 마음 쓰지 않았기에 그 일 이후로도 평소처럼 약방을 다녔다. 조 씨는 사내가 캐온 약초를 의원에 들이면서 매번 값을 올려 쳐주려고 했으나 사내는 묵묵히 제값만 받아갔다. 사내는 그런 조 씨가 점점 불편해져서 다른 약재상에 거래를 텄다. 중국까지 약재를 내다 파는 큰 상단에 줄이 있던 약방 어른이 한 날은 산삼을 구하는 지체 높은 양반이 있다며 마을 심마니들의 근황을 물어왔다. 집안에 다 죽어가는 피붙이가 있어 멀리까지 수소문을 해서 좋다는 약재가 있으면 흥정도 없이 사들이고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사내는 어머니의 세 번째 제사를 치르던 해 장마철에 지리산에서 길을 잃고 닿은 계곡에서 우연히 어린 삼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너무 작아서 근처에 은밀히 표시만 해두고 자리를 떠났었기에, 그 일대를 다시 찾아가 며칠을 헤맸으나 산신이 삼을 품은 땅을 또다시 열어주지는 않았다. 평생 업으로 삼을 찾아다니는 심마니들에게도, 산삼은 치성과 정성을 들여 업보를 씻고 산신령의 보살핌을 받아도 만나기 힘든 영물이었다. 사내는 약초를 캐면서 자신의 것이 아닌 재물에 대한 탐욕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수십 년 넘게 산을 탄 노련하고 발이 단단한 약초꾼들이 사소한 욕심에 목숨을 팔아 영영 저승길로 떠나버리곤 했다. 진안댁도 그렇게 과부가 되었다. 사내는 욕심을 부리기에는 끈기가 부족하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대한 체념이 빨랐기 때문에 약초로 밥과 고기를 벌 수 있었다. 전해 듣길 지체 높은 양반은 결국 초상을 치렀다고 했다. 얼마 뒤 한양에서 온 상단 행수가 그를 직접 불러 청을 넣었는데, 시절에 따라 이산 저산을 떠도는 약초꾼으로서는 영 내키지 않는 약조가 딸려 있었다.



“아저씨, 내려서는 또 해지기 전에 재를 넘어야 하는 거예요?”


아이의 물음에 저 나름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오늘은 주막에 묵고 내일 새벽에 떠날 거다. 곧 나루에 도착할 테니 잠들지 마라.”


아이의 눈에 얕은 안도감이 스치고 지나간다. 십수 년을 고된 산행과 채집에 단련된 사내가 부러 아이를 배려해 걸음을 늦췄어도, 걷다 보면 아이는 한참을 뒤처져 숨을 몰아쉬며 따라오고 있었다. 길이 험해지면 표정은 가히 좋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밖으로 불평을 꺼내거나 제멋대로 주저앉지도 않았다. 사내가 쉬어가려 잠시 걸음을 멈출 때가 아니면 아이도 멈추는 일이 없었다. 그는 마을에 들렀을  작은 수통을 구해 아이의 허리춤에 달아주었다. 아이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리에 작은 들꽃 송이를 엮어 오목한 수통 입구에  두었다. 짧고 몽땅  손가락이 야무지게도 움직였다. 지난 겨울 온종일 싸락눈이 내린  저녁, 산에서 돌아온 사내는 아이의 새까만 손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아이가 말린 약초를   종이를 펴다가 숯을 쪼개 온갖 들꽃을  아름 그려 놓았는데, 무향 무취의 종이꽃에  나비며 벌이 달려들  같이 생기가 흘러넘쳤다. 사내는 문득 아이의 비상한 손재주가 바깥으로 드러날까 무서워 그린 종이는 따로 포개 장에 넣어 두라 일렀다.  낯빛이 어두워 보인 아이는 자신이 말려둔 약초를  헤집어 두어서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아궁이를 뒤지지 않았다. 며칠  사내는 지전에 들러 약방에서 부탁받았다고 둘러대고는 세필붓  자루와 한지를  왔다. 벼루에 먹을 갈아주자   붓을 쥐어본 아이의 손에 먹이 마르지 않아서 사내는 괜한 짓을  것이 아닌가 내심 후회했다. 아이가 바닥에 달라붙어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쓰던 안방은 하루가 다르게 먹물 자국이 늘어갔다. 사내는 봄이 되어 날이 풀리는 대로 아이를 한양으로 보낼 작정이었기  역시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담을 타고 들어온 얼룩 고양이와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까지 그려 놓았다. 엉성한 사내의 눈에도 아이가 보이는 손재주가 여간한  아니었다. 사내는 아이에게 약초를 그리게 하여 잡다한 서책을 들여다보는 지전 주인에게 보여줄까 하다, 무슨 오지랖인가 싶어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글도 모르는 아이의 작은 봇짐 속에 종이와 붓이 들어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고 사실이 그러했다.


“딸자식이 아닌가 보오?”


얼굴에 검버섯이 송송히 맺힌, 일흔은 넘겼을 법한 사공이 물었다.


“… 먼 친척 아이요.”


사내는 짧게 끊어 대답하여 그 사연까지는 전하기 싫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이는 너울거리는 강물 위로 부서지는 봄볕에 한참을 넋을 빼앗겨 있다가, 마른눈이 부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입술을 당겨 샐쭉 웃었다.


“아저씨가 절 주웠어요, 할아버지”


아이의 말간 목소리가 절간 처마 밑에서 흔들리는 풍경같이 울렸다. 사내의 시선을 마주치는 입꼬리에 장난기가 묻어있었다. 그는  뜻을 짐작했지만 말로 대꾸하지는 않았다. 사내는 봇짐 끈을 다잡아 매며 속으로 기침 삼켰고, 사공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허허로운 웃음을 내뱉었다.


“묘한 아일세, 그려.”





*경상북도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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