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nish Modern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머쇠(Vilhelm Hammershøi)의 그림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 흔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창가에 앉은 여인의 뒷모습이지만, 정작 나를 오래 머물게 한 건 그녀를 둘러싼 집 안의 풍경이었다. 정적이고 차분한 빛, 닫힌 듯 열린 문, 무채색 벽면의 단정한 질서 속에서 마치 손을 뻗어 문고리를 돌리고 싶을 만큼 묘한 끌림을 느꼈다. 그 고요한 실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을 미학적 주제로 끌어올린 함머쇠만의 세계였다.
함머쇠가 활동한 19세기 말 ~ 20세기 초는 덴마크가 아직 농업 중심 사회에서 산업화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본격적인 디자인 부흥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찾아오지만, 그의 그림 속 공간미학에는 이미 덴마크 특유의 감수성이 배어 있다. 절제된 색채, 빛과 여백이 만드는 긴장감, 사소한 생활 풍경에 담긴 진중함 같은 요소들은 훗날 덴마크 모던 가구가 보여준 실용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닮아 있다.
덴마크 모던(Danish Modern)은 특정한 가구 양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복지국가의 제도, 전후 경제 재건을 위한 전략, 북유럽 특유의 생활 습관과 문화 철학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총체다.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적인 디자인의 기준을 만들어냈는지 그 맥락을 더듬어 보면, 시대와 사회가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세 유럽 전역에 뿌리내린 길드 제도는 장인을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존재로 만들었다. 덴마크 역시 이 전통 위에 18~19세기 공예학교와 왕립예술아카데미를 세워 장인 정신을 제도화했다. 이 과정은 도제식 기술 전수에 그치지 않고, 공예와 예술이 동등하게 다루어지는 토양을 만들었다. 한스 J. 웨그너(Hans J. Wegner)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어린 시절 목공 수업을 시작으로 평생 나무와 함께했는데, 수백 종의 의자를 설계하면서도 언제나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기능적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Y Chair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나무의 물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몸을 섬세하게 감싸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By Hans Wegner - Nasjonalmuseet for kunst, arkitektur og design, CC BY 4.0
20세기 중반 덴마크는 복지국가 모델을 구축하면서 사회 전반에 “좋은 디자인은 소수의 사치품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라는 인식이 퍼졌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교육, 정책, 산업 전략에 실제로 반영된 합의였다. 보르게 모겐센(Børge Mogensen)은 그 대표적인 실천자다.
그는 값비싼 재료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와 합판을 활용해 튼튼하고 간결한 의자를 만들었고, ‘국민의 의자(J39 People’s Chair)’라는 별명은 우연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디자이너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공유하는 문화가 있었기에, 덴마크 디자인은 민주적 가치를 품고 성장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지점은 지금도 특히 부럽게 느껴진다.
*AI 이미지 참고: J39 Mogensen Chair
2차 세계대전은 덴마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자원은 부족했고 내수 시장만으로는 경제 재건이 불가능했다. 선택지는 명확했다. ‘작은 나라가 만들 수 있는 고품질의 제품을 세계에 수출하자.’ 이 전략의 중심에는 장인과 디자이너가 설계한 가구와 조명이 있었다.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의 PH Lamp 시리즈는 전후의 에너지 부족 속에서 빛을 효율적으로 확산시키는 실용적 해법이자 심미적 혁신이었다. 그리고 1954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개막해 북미를 순회한 Design in Scandinavia 전시는 덴마크 디자인을 미국 시장에 각인시킨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시기를 거치며 “Danish Modern”은 단순한 국가 브랜드가 아니라, 전후 경제 재건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PH 램프는 결코 만만한 가격대가 아니지만, 소비 패턴 측면에선 해외 직구에 대한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져서 국내에서도 모던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계층에게는 이미 대중화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By Holger Ellgaard - Own work, CC BY-SA 3.0
1950~60년대 미국 중산층의 거실을 상상해 보면, 내부를 채운 의자와 조명, 수납장 중 상당수가 북유럽에서 왔다. 미국식 모더니즘 건축은 개방적이고 단순한 구조를 제시했지만, 그 빈 공간을 채운 따뜻한 살결은 덴마크 가구였다. Case Study Houses 같은 프로젝트가 북유럽 가구 없이 완성될 수 없었던 이유다.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Egg Chair와 Swan Chair는 미국 잡지와 광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기능성과 조형미가 동시에 소비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이 ‘덴마크 모던’을 자기 집 거실에 들여놓았을 때, 그것은 단순히 가구를 사는 행위가 아니라 모던한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선택이었다.
나는 몇 년 전 대구미술관에서 연 전시 'POP-Corn'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김승현 작가가 지극히 개인적 취향을 반영해 전시관 내에 자신만의 공간을 재현해 둔 섹션이 인상적이었다. 북유럽의 디자인 철학을 투영하는 의자와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앤디 워홀 등 미국의 팝아트로 혼합 구성하여 전시한 이미지가 마침 찰떡같이 맞아떨어져서 가지고 왔다.
*이미지 출처: 전시 POP-Corn에서 직접 촬영, 2019, 대구미술관
21세기 들어 이케아는 전 세계 가구 시장을 장악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과 조립식 구조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케아(IKEA) 가구는 보통 소모품으로 소비되고, 소장 가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이케아 제품 내에서도 오래전에 한정판으로 생산된 일부 가구나 램프는 단종된 후 빈티지 시장으로 편입되는 제품이 있긴 하다.)
반대로 전후 시대에 대량 생산되었던 덴마크 모던 가구는 생산이 중단되면서 희소성과 역사적 가치가 더해졌다. 피터 비드(Peter Hvidt)와 올라 뫼르고르(Orla Mølgaard-Nielsen)가 설계한 모듈형 선반 시스템은 조립과 운송에 특화된 합리적 디자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중고 시장에서 빈티지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여기에 더해 폴 카도비우스(Poul Cadovius)의 로열 시스템(Royal System)은 벽을 수납공간으로 확장하는 혁신을 통해 “시스템 가구”라는 개념 자체를 정립했다. 단순한 선반을 넘어 공간 활용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례로, 덴마크 모던의 구조적 독창성을 상징한다. 민주적 디자인의 대중화는 이케아가 이뤄냈지만, 역사와 심미적 가치는 여전히 덴마크 빈티지가 대표한다. 두 흐름은 오늘날 소비자의 선택을 가르는 두 갈래의 축으로 공존하고 있다.
나 역시 서재 한쪽 벽에 로열 시스템의 금속 행어 기법이 적용된 2단 선반을 달아 두었다. 오래전 단종된 오리지널은 서구의 빈티지 시장에서 만만치 않은 값에 거래되고, 국내에서는 중간 딜러를 거쳐야 하기에 좀처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중고 시장에서 우연히 들여온, 원목 시스템 선반은 묵직한 티크의 질감과 단정한 구조를 품고 있어, 덴마크 모던이 지향했던 생활 속 질서와 균형감을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맞은편에는 이케아 책장이 마주 서 있다. 두 가구가 서로를 비추는 풍경 속에서, 민주적 대중성과 역사적 희소성이 한 공간 안에서 겹쳐지는 방식을 실감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By Ramblersen2 - Own work, CC BY-SA 4.0
덴마크 사람들에게 집은 긴 겨울을 버티는 삶의 중심이었다. 해가 짧고 추운 계절이 길수록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아늑한 분위기는 생활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여기서 나온 개념이 바로 ‘휘게(Hygge)’다. 그저 촛불을 켜고 담요를 덮는 풍경이 아니라, 공간과 관계가 주는 심리적 안정을 중시하는 문화적 코드였다. 작은 모임에서의 식탁, 따뜻한 조명, 담백한 목재 가구, 과장되지 않은 장식은 모두 휘게를 구성하는 요소였다.
이 철학은 자연스럽게 가구 디자인에도 녹아들었다. 핀 율(Finn Juhl)의 Chieftain Chair와 Pelican Chair는 단순한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몸을 감싸는 곡선을 통해 인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휘게적 사고의 결과물이었다. 의자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몸을 기댈 수 있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 안정을 누리고 대화를 나누는 매개체로 기능한 셈이다. 덴마크 가구와 조명은 나무와 패브릭, 따뜻한 색조를 통해 생활 속의 휘게를 시각화했으며, 이는 전 세계가 덴마크 모던을 ‘인간적인 미학’으로 기억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 되었다.
*이미지 출처: House of Finn Juhl
덴마크는 국토의 약 15%만이 산림지대라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목재가 넘쳐나는 조건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국의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는 오랫동안 덴마크 가구 제작의 뼈대를 이루었다. 새하얀 벽과 세로로 긴 창, 밝은 색의 군더더기 없는 원목 가구와 생활감이 느껴지면서도 정갈한 장식품이 북유럽의 가정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나는 특히 너도밤나무의 따뜻한 노란 색감을 좋아하는데, 우리 집의 바닥재가 무려 멀바우에 가까운 색이라서 너도밤나무 원목 가구를 들이는 건 내게 너무 큰 도전에 가깝다. 한스 웨그너(Hans J. Wegner)의 초기 의자들 다수는 이 너도밤나무로 만들어졌고, 이는 덴마크 디자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었다. 산업이 성장하면서는 고품질 오크와 자작나무, 티크 같은 목재를 인근 스웨덴·핀란드·발트해 연안에서 적극적으로 수입했다. 풍부하지 않은 자원 조건 속에서도 나무를 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필요하다면 외부 자원을 들여와 장인적 기술로 완성도를 끌어올린 태도가 덴마크 모던의 독창성을 뒷받침했다. 카이 크리스티안센(Kai Kristiansen)의 NV31 Chair와 같은 작품은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결과물로, 자원 조건과 장인정신이 만나 세계적 유산이 된 사례다.
*이미지 출처: By A.Savin - Own work, FAL
덴마크 모던은 전후 자원 부족과 경제 재건이라는 시대적 조건, 복지국가와 민주적 합의라는 사회 제도, 휘게 문화와 목재 중심 생활이라는 문화 습관이 교차하며 탄생한 총체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덴마크 디자인은 일시적인 유행이나 미적 지향을 넘어,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