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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yton Dec 10. 2017

비너스와 큐피드

Venus with Cupid Stealing Honeycomb




Lucas Cranach the Elder (c. 1472-1553), Venus with Cupid Stealing Honey, 1530. 58x38 cm



이 작품은 독일의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가 고대 그리스의 목가시인 테오크리토스(Theocritus)의 시 '꿀을 훔치는 큐피드'의 우화를 차용해 그린 그림이다. 벌에 쏘여 따가움을 호소하는 큐피드는 평소의 장난기와 익살스러움을 잊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어머니 비너스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 표정만 놓고 보자면 여느 인간의 아이보다 더 인간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벌에 쏘이는 와중에도 여전히 손에 든 벌집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보면 신의 자손이 맞긴 한가보다. 가만히 웃으면서, 어떻게 보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들의 아픔에 전혀 공감해주지 않는 비너스의 표정은 무심하게까지 보인다. 아들이 아닌 우리를 향하는 비너스의 시선과 정제된 자세에서는 시기심 많고 도도한 원래의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 평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많은 해석에서 비너스가 사랑의 여신이라 도발적이고 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아이의 어리광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모성 특유의 감정이 엿보인다.


테오크리토스의 시는 큐피드가 사랑의 여신인 어머니 비너스에게, 꿀을 얻으려 벌집을 훔치다 벌에 쏘인 것을 불평하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큐피드는 벌침 때문에 피부가 부어올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호기심이 발동해, 어떻게 그렇게 작은 생물이 이렇게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줄 수 있냐고 어머니에게 묻는다. 비너스는 담담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벌의 침은 네가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쏘아대는 화살이 낳은 상처에 견줄 수 있단다, 아들아."

비너스의 대답은 꽤 의미심장한데, 마치 비너스 자신이 나중에 큐피드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 프시케를 되찾기 위해 그가 겪을 괴로움과 불행을 예언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화가는 전면부의 인물 묘사뿐 아니라 배경에도 공을 들였다. 한치의 틈도 없이 빽빽한 올리브 나무로 채워진 왼쪽의 숲과,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붉은 지붕의 마을과 절벽 위의 성채가 밀도감에서 큰 대조를 이루며 비현실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짧은 사랑의 환각은 곧 쓰디쓴 이별의 고통으로 뒤바뀐다는 시인의 글귀가 그림의 왼쪽 위에 새겨져 있다. 달콤한 꿀과 따가운 벌침처럼 인간이 겪는 기쁨과 쾌락은 항상 슬픔과 고통을 동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에도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은 유효기간을 가진 화학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근대의 이론이 어김없이 적용되었던 모양이다. 그 어느 시대에도 고전과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격정적인 사랑과 으레 다가오는 이별의 순간, 또 긴 후유증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음유시인과 작가들이 버무리기 좋은 소재였을 테니 말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은 1759년에 독일 고토르 성(Gottorp Castle)의 박물관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코펜하겐의 스태튼 박물관(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으로 이전되었으며, 소장된 컬렉션(Royal Collection)은 독일어권 국가를 제외하고 크라나흐의 작품이 가장 많다고 한다.  





François GÉRARD (Rome, 1770 - Paris, 1837) Psyche and Cupid, Salon of 1798, 1.86x1.32m


온갖 역경과 신들의 훼방을 극복하고 마침내 사랑을 되찾은 프시케가 큐피드의 첫 키스를 받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루브르에서는 이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전시 자체가 워낙 방대해서 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는 아마 다시 방문한다 해도 지나치는 그림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이상적으로 그려진 신들의 뒷동산을 배경으로 다소곳이 앉은 프시케 뒤의 나비 외에는 두 인물에게서 어떤 이야기도 읽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제라드(François GÉRARD)의 작품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The Louvre)에 전시되어 있다.




크라나흐는 테오크리토스의 시가 던지는 메시지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같은 주제로 여러 버전을 그렸는데, 아래 작품이 상당히 도발적인 분위기의 비너스를 그린 작품이다. 아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에서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한 눈매와 입모양이 명백히 드러난다. 나체의 여신이라는 점은 같지만, 비너스가 화려한 모자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고, 가만히 서있는 듯하지만 한 손으로는 사과나무의 가지를 잡고 왼쪽 다리를 든 자세에서 곧 동세가 변화할 것만 같은 역동성이 느껴진다.   


Lucas Cranach the Elder (c. 1472-1553), Cupid complaining to Venus, about 1525, 56.4x81.3cm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히틀러가 개인 컬렉션으로 소장하고 있던 작품으로 판명되었고, 지금은 런던의 국립 미술관(The National Gallery, London)에 있다. 런던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보고 싶은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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