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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yton Dec 30. 2017

뒤돌아선 여인

Interior with Young Woman from Behind


Interior with Young Woman from Behind, oil on canvas, 60.5x50.5cm, 1904



조용한 방 한 편. 뒤돌아 서있는 여인에게서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큰 액자가 걸려있는 회색의 벽을 향해 선 여인의 시선은 그녀를 바라보는 이에게서도, 스스로에게서도 벗어나려는 듯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액자 속의 그림도, 장식장 위의 도기도, 입고 있는 옷조차 여인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한다.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방의 왼편에는 창이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리창 너머로 들어온 햇살은 실내의 어둠 속으로 무심히 발을 내딛는다. 빛은 도기의 굴곡만큼이나 부드러운 여인의 목선을 따라 흐르지만 공간은 냉담한 채로 남아있다.

 

덴마크 랜더스 미술관 (Randers Museum of Art)
https://www.randerskunstmuseum.dk/samlingen/highlights/






티타임에 맞춰 방문한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응접실에 작은 체구의 한 여인이 들어와 모든 창의 문을 열었다. 오후의 햇살이 소란스럽던 공간을 저 알아서 잠재우기 시작했다. 여인은 소리도 잠을 잔다고 생각했다. 햇살이 자신도 소리 없이 잠재워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두어 번 찻잔과 접시를 부엌으로 나르고 다시 들어왔다. 여기저기 크림 자국으로 얼룩진 탁자 위에서 떨어진 비스킷 부스러기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여인은 테이블부터 닦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창문을 닫으러 창가로 다가갔다.


주말 오전을 방해하는 번잡함을 피해 서재로 달아났던 남자는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막 여인을 보았다. 응접실로 들어가려다 문 앞에 잠시 서서 작게 내쉬는 그녀의 한숨도 지켜보았다. 어머니의 보수적이고 수다스러운 손님들이 막 떠난 참이었다. 남자는 그 손님들을 피할 수 있었지만, 여인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응접실로 발길을 옮겼다.


구름이 걷힌 후에도 지난밤부터 아침 내내 내린 비로 눅눅한 비의 냄새가 스민 가을의 바람은 싸늘했다. 두 뺨에 와 닿는 서늘한 냉기에 여인은 숱한 혈관 아래 흐르고 있는 자신의 체온을 느꼈다. 습기로 이마에 달라붙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손등으로 차가워진 뺨을 눌렀다. 정원 모퉁이에서 낙엽을 쓸어 모으는 늙은 정원사의 느릿한 몸짓이 보였다. 어린 시절 비에 젖은 낙엽을 밟고 미끄러졌을 때, 팔꿈치로 바닥을 디뎌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흉터는 남았고, 그녀를 목욕시키던 어머니가 꼭 접은 우산 모양 같다고 한 뒤로 여인은 그것을 비의 표식이라고 생각했다.

   

벽에 기댄 채 남자는 조용히 서 있었다. 여인은 정원을 향해 미동도 않고 바람을 맞고 섰다. 남자가 기척도 없이 들어왔기에 여인의 눈은 그대로 감겨있었다. 창을 통해 곧게 뻗어 내린 빛이 여인의 창백한 피부 위에서 산란했다. 근처 숲에서 지저귀는 굴뚝새의 소리,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낙엽을 쓸어내는 갈퀴 소리, 주방에서 작게 들려오는 설거지 소리와 대화 소리, 창고에서 장작을 패는 소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오후의 정적을 방해하지 않았다. 여인은 자신이 선택한 고독 속에서 빠져나와 눈을 떴다. 한쪽 창문을 닫다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알아채고는 화들짝 놀라 벽 쪽으로 옮겨 섰다.


남자는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는 이미 여인이 그어놓은 시간의 선을 넘어섰고, 정적은 너무나 간단히 깨어졌다. 여인은 여전히 시선을 맞추거나, 그를 향해 몸을 돌리지 았았다. 남자는 여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øi)의 그림은 그것이 인물이든 풍경 이든 간에 관계없이 늘 정적과 고요를 담아내고 있으며,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무채색 배경의 차분한 실내에 검을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있다. 함메르쇼이는 젊은 여성을 그릴 때 그의 아내 아이다(Ida Ilsted)를 모델로 하곤 했는데, 작품 속 여인 역시 그의 아내가 모델인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전반적인 색채는 차갑고 건조하다. 돌아선 여인의 뒷모습은 남겨진 우리에게 그녀의 내면이 어디론가 도망치려 한다는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여인의 옷차림이 간소하고 간략하게 묘사된 것에 비해 장식장 위의 도기에 새겨진 문양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 화가의 취향을 알 수 있다. 화가는 남녀를 막론하고 인물화 대부분에서 대상이 검은 옷을 입은 것으로 묘사한다. 화가가 단순히 외로움, 고독 등 인물의 심리 상태만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을 선택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깊은 우물 속을 내려다보면, 우물의 바닥이 아닌 그곳을 향해 고개를 뻗고 있는 내 모습이 반사된, 거울같이 검은 물의 표면만이 보일 뿐이다. 예술가의 개성은 인간적인 성향과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는 아마도 인간 대 인간으로, 타인의 인격과 품성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예술가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서로에게 내면의 '전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개인적 약속과 사회적 계약으로 맺어진 남편과 아내는 물론, 혈연관계로 연결된 부모와 자식이나 형제자매간이라 해도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언어와 비언어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시각을 통해 다른 사람과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장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검은 옷의 여인, 등을 보인 채 말없이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는 자세. 거의 모든 작품에 나타난 절제된 미학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화가의 겸손한 태도가 아닐까.



Self-portrait, oil on canvas, 33.4x28.2cm, 1895

코펜하겐 출신의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øi, 1864 - 1916)는 인물, 건축, 인테리어, 풍경 화가로 명성을 쌓았는데, 이후 실내에서의 일상을 정제된 화풍으로 그려내는 화가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스튜디오로 코펜하겐(Strandgade 30, Copenhagen)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이용했으며,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다양한 실내 소품을 작품 속으로 옮겨놓았다. 자주 교외로 여행을 다녔던 그는 시골의 한적한 자연과 목가적인 풍경도 즐겨 그렸다. 또한 절제된 화풍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럽의 다른 국가로 여행을 다녔는데, 영국 특유의 안개 낀 날씨와 급격한 산업화로 오염된 런던의 대기환경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의 급격한 산업혁명의 이면과 대기 오염으로 사망한 인구를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평범한 일상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화풍으로 극찬받았으나, 파리 기행 후에 특유의 간결함과 정제된 스타일에서 보다 장식적으로 변모한 기법 때문에 일부 평론가들은 '기술만 남고 마법은 사라졌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인후암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인 51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과 함께 작품들도 자연스럽게 잊히는 듯하다가, 무려 100년이 지난 2001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개최된 전시로 다시 되살아났다.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화풍을 간직한 그의 작품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절제된 미학을 찾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주고 있다.


작품의 특성과 화가의 성향은 2000년대에 열린 그의 전시 타이틀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 침묵의 시가(The Poetry of Silence) 런던, 동경, 2008
- 고요를 그리다(Painting Tranquility) 토론토 2016



Woman reading a letter, oil on canvas, 46.5x39cm, 1663

여담)

이 그림을 본 순간, 함메르쇼이보다 200년 앞선 화가인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편지를 읽는 여인'이 연상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남긴 감상을 보니 베르메르의 작품을 떠올린 건 나만이 아니었다 싶어 웃음이 지어졌다. 그의 작품들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번 글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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