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년 9월 날씨 좋은 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분을 만났다. 정확히는 그분의 물방울을 만났다. 입구에서 표를 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그분을 만났다. 물방울 그림을 남기신 그분, 계속해서 그린 집요한 물방울, 그분은 어떤 걸 남기고 싶으셨던 걸까.
김창열 화백은 6.25 때 많은 친구를 잃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씻어내기 위해 평생 물방울을 그리셨다고,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 그분의 나이도 모르고 심지어 돌아가신지도 모르고 갔다. 생년월일을 보니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는 것을 입구에서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그린 그 물방울이 이렇게 돌아가신 후에도 이렇게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구나. 내가 남긴 어떤 것들이 존재가 살아진 후에 어떤 이의 마음속에, 눈에 넣을 수 있구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 정적과 고요 그날 흔적도 없이 살아지신 할머니,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할머니, 할머니를 통해 죽음을 알았다. 죽는다는 것은 존재했었던 어떤 이가 지구에서 보낸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남은 건 금니 몇 개 과 무릎에 있던 철, 살은 타고 뼈는 가루가 되어 그렇게 할머니는 사라지셨다.
할머니의 죽음 후 밀려오는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에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을 보고 나서 죽음 후에 남는 어떤 것이 있으면 이렇게 많은 이들의 눈과 마음에 생각에 남아있을 수도 있겠구나.그렇게 아팠던 기억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물방울도, 내가 살았던 곳에 남아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남길까.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내가 살았던 이곳의 작은 흔적하나 남기고 나란 사람이 있었다는 증명을 하고 싶었다. 삶에 어떤 의미를 만들고 싶었다. 인간은 어차피 다 죽는다. 하지만 아주 작은 발자취하나 남기고 싶었다. 그것이 내 삶의 이유가 될까.
초등학교 때 일이었다. 책상에 앉으면 수업에 집중이 되질 않고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가득했다.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나무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 있지?, 나는 어디서 왔지?, 이 친구들은 다 누가 시켜서 이 곳에서 나랑 같이 앉아있을까. 어쩌면 모든 이들이 다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 거짓이 아닐까. ' 초등학교 1, 2 학년 때 기억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몇 개가 되지 않지만, 그중 제일 기억나는 것이 내가 멍 때린 이 기억이었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진짜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뭔지, 이제야 그것을 아주 천천히 실마리 정도 찾아가는 중이다. 내 나이 사십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찾아가고 있다. 나는 남기고 싶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김창열 화백이 쌓아갔을 아픔의 결과물이 물방울이듯 , 내가 겪은 모든 것을 쌓아가고 싶다.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도 아주 작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